주간동아 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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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면 누구와 어떻게 살겠습니까?

은퇴 후 30년

  • 김동엽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 dy.kim@miraeasset.com

    입력2012-07-30 09: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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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라면 누구와 어떻게 살겠습니까?
    “자, 지금부터 눈을 감고 은퇴 후 살 집을 떠올려보세요.”

    흔히 노후준비라고 하면 돈만 많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돈만큼 중요한 것이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지 결정하는 일이다.

    먼저 은퇴 후 자녀와 함께 살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요즘 부모를 모시고 살겠다는 자녀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자녀와 함께 살겠다는 부모도 드물다. 지난해 서울시가 65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희망하는 주거형태’를 물었더니, ‘자녀와 함께 살고 싶다’고 응답한 사람은 22.1%에 그쳤다.

    결혼한 자녀와 함께 살다가도 부모가 먼저 분가를 제안하기도 한다. 경기 분당에 사는 김현희(70) 씨는 최근 15년간 함께 지낸 아들네 식구를 분가시키기로 결정했다. 지금까지 맞벌이하는 아들 부부가 안타까워 함께 살며 손자손녀를 돌봐줬는데, 김씨 나이가 일흔이 넘어서면서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김씨는 “아들은 지금 네 살인 둘째 손녀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함께 살자고 했지만, 그러면 내 나이가 팔십 가까이 된다”며 “자식을 위해 사는 것도 좋지만, 그럼 내 인생은 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들네를 분가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대가족과 스크럼 가족의 차이



    김씨와 반대로 따로 살던 자녀들과 살림을 합치는 경우도 있다. 서울 마포에 사는 최성환(63) 씨는 2년 전 아들이 결혼할 때 전셋집을 얻어줬다. 그런데 2년 만에 집주인이 전셋돈을 5000만 원이나 올려달라고 하자 어쩔 수 없이 아들네와 합가했다. 최씨 경우처럼 경제적 이유로 자녀가 결혼한 후에도 부모와 함께 사는 가구가 늘면서 ‘스크럼(Scrum) 가족’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스크럼 가족이 대가족과 다른 점은 자녀가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게 아니라, 노부모가 장성한 자녀를 데리고 산다는 것이다.

    자녀와 함께 살지 여부를 결정했다면 그다음엔 적정 주택 규모를 따져봐야 한다. 자녀와 따로 살기로 결정한 경우에는 식구가 줄어든 만큼 주택 규모도 줄이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먼저 큰 집을 팔고 작은 집을 사서 이사하거나 전세로 옮기려고 하면, 당장 주변에서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온다. 그래서인지 남의 눈을 의식해 은퇴 후에도 쓸데없이 큰 집에 사는 사람이 많다. 그러면서 남들이 두 사람이 사는데 집이 너무 넓지 않느냐고 물으면 “가끔씩 아들네가 놀러 오면 재워야 해서 그렇다”고 핑계를 댄다. 정말 그럴까. 며느리에게 자고 갈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기는 했는지 모르겠다.

    큰 집을 팔고 작은 집으로 옮기면 목돈을 쥘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요즘처럼 주택경기가 좋지 않으면 집을 쉽게 팔 수 없다. 집을 쉽게 팔더라도 그동안 정든 이웃과 헤어져야 하는 것도 문제다. 은퇴하면서 직장동료와의 관계가 소원해진 마당에 이사로 지역사회에서의 소통마저 차단된다면 자칫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런 위험성을 막는 측면에서 은퇴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주택연금이다. 주택연금은 현재 사는 집을 담보로 다달이 연금을 받는 제도로, 생활 근거지를 옮기지 않으면서 생활비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어디서 살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다. 은퇴자들은 종종 새로운 인생을 산다는 명목으로 시골이나 외국 같은 낯선 곳으로 이주하는 것을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행동으로 옮기려면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다. 집이란 게 단순히 물리적 거주공간으로서만 의미를 갖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흔적이 묻어 있는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주거공간에 잘 적응할지도 미지수다. 은퇴 후 귀농·귀촌 생활을 꿈꾸거나 해외 이민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에 생활환경을 바꾸는 것보다 점진적으로 이주하는 편이 실패 확률을 줄이는 길이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은 은퇴하기 5~6년 전부터 시골에 집과 텃밭을 사두고 주말마다 오가며 자신이 정말 전원생활에 적합한지 시험해보는 것이 좋다. 해외에서의 삶을 꿈꾸는 사람도 은퇴 후 바로 이주하는 것보다 ‘롱스테이’ 여행상품 등을 활용해 해외에 장기 체류하면서 해외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당신이라면 누구와 어떻게 살겠습니까?

    은퇴 후 해외 이민 및 투자 관련 설명회에 모인 사람들.

    선진국 노인복지는 재가보호 중심

    은퇴 후 혼자 또는 부부만 생활하는 가구가 늘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간병이다. 따라서 간병기가 도래했을 때 어디서 생활하며 치료받을지도 생각해둬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전문시설이나 요양병원에 머물며 치료받거나 실버타운에 입주하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많지만, 선진국 사례를 보면 은퇴자들은 대부분 지금까지 살던 곳에서 계속 거주하기를 바란다. 미국의 경우 55세 이상인 사람 가운데 약 84%가 은퇴 후 요양원 같은 은퇴자 전용 주거공간으로 이주하기보다 평생 살았던 집에 계속 머물기를 원한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이사하더라도 63%는 같은 도시에 머물기를 원했고, 11%만이 다른 도시로 이주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이유로 선진국의 장기 간병 시스템은 시설보호에서 재가보호 중심으로 완전히 방향을 틀었다. 재가보호 시스템은 자기가 살던 집에서 나이 들어간다는 의미에서 ‘Aging in Place’라고 부르는데, 신체적·정신적 장애가 있는 노인에게 시설에서 생활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살던 집에서 계속 생활할 수 있도록 적절한 보호와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령자에게 집은 단순한 거주공간이 아니라 그들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영역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은퇴 후 무엇으로 소일할지도 거주지를 결정할 때 영향을 미친다. 수명과 함께 노후생활 기간도 늘어나면서 덩달아 여가시간까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이 때문에 골프 치고 등산을 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해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고령자가 증가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이렇게 평생교육에 관심이 많은 시니어들이 대학교 주변으로 몰려들면서 새로운 은퇴자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UBRC(University Based Retirement Community)다. 대학교가 직접 사업주체로 나서 은퇴자 커뮤니티를 운영하기도 하고, 반대로 은퇴자 커뮤니티가 대학교의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도록 파트너십을 구축하기도 한다.

    이처럼 은퇴 후 주거형태를 결정하려면 은퇴 전부터 이것저것 점검해야 할 것이 많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뒤로 미뤄두면, 정말 인생이 어떻게 될 수도 있다. 예순 살에 은퇴해 아흔 살까지만 살아도 30년이다. 당신은 이렇게 긴 시간을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지낼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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