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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미드’에 밤새우고 ‘팝’에 열광했었다

AFKN 올 중반부터 케이블TV 방송 중단 미국 문화의 통로, 훌륭한 영어교재 추억 속으로

그땐 ‘미드’에 밤새우고 ‘팝’에 열광했었다

그땐 ‘미드’에 밤새우고 ‘팝’에 열광했었다

AFKN 마니아였던 DJ 이종환 씨(위)와 인기 영어강사 이보영 씨.(아래)

올해 중반부터 더는 AFKN(American Forces Korea Network. 2001년부터 AFN-K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겐 AFKN이 더 익숙하기에 여기서는 그냥 AFKN이라 부르겠다)을 볼 수가 없다. 주한미군 측이 “미국 제작사에서 제공받은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AFKN을 케이블TV에서 재송신할 경우 저작권 문제가 발생한다”면서 재송신 금지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 우리 국민을 ‘미국화’한다는 이유로 정부가 AFKN의 프로그램을 규제하려 했을 때는 미군 측이 ‘정보의 자유로운 소통’을 내세우며 맞선 것과는 상황이 뒤바뀌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지금은 “한국 내 ‘미드(미국 드라마) 열풍’을 보며 이제 공짜로 보여주는 게 아까웠던 모양”이라고. 어쨌든 한때 AFKN에 빠져 살던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더는 AFKN을 볼 수 없다는 게 적잖이 아쉽다.

AFKN의 역사는 19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25전쟁 중이던 1950년 10월4일 12시41분, AFKN의 전신인 미군 라디오 서비스 AFRS(Armed Forces Radio Service)는 맥아더 장군이 김일성 사령관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메시지 뉴스를 첫 방송으로 내보냈다.

AFKN에서 본격적으로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한 것은 1957년, KBS보다 4년 앞서 첫 전파를 탔다. 1983년 위성방송망인 SatNet(Satellite Network)이 개통되면서부터는 미국에서 방송되는 주요 프로그램을 같은 시간대에 국내에서도 볼 수 있었다.



KBS와 MBC, TBC 세 방송만 존재하던 1960~80년대 사이 AFKN은 그야말로 최고의 인기 채널이었다. AFKN은 당시 한국에서는 접할 수 없는 영화, 드라마, 만화, 다큐멘터리, 토크쇼, 스포츠 등을 ‘24시간’ 방영해 당시 젊은 층에서 인기가 높았다.

1950년 첫 방송…60~80년 최고의 인기 채널

스스로를 ‘AFKN 키드’라 말하는 유재용(44·MBC·보도국· 재정금융팀장) 씨. 얼마 전 ‘AFKN 키드의 미국 들여다보기’(나남)라는 책을 펴내기도 한 그는 AFKN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미국 문화를 이해하게 됐다. 그는 특히 영화와 드라마 마니아였다.

“제가 처음 AFKN을 본 게 중학교 무렵, 그러니까 1970년대 후반인 것 같아요. 당시엔 공중파 방송들이 주말에 방영하던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 같은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었죠. 하지만 AFKN을 접하면서 점점 ‘주말의 명화’를 보는 횟수가 적어지더니 대신 AFKN 영화에 빠져들었어요. 성우를 통해서는 전해지지 않던 배우들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또 AFKN 영화는 ‘주말의 명화’에서 방영되는 영화보다 최신작이었고, 비주류 영화나 현실적 스토리의 영화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죠.”

유씨는 처음 AFKN 영화를 접할 당시 성우의 더빙이 없어 적잖이 애를 먹었다. 그러나 방송을 계속 접하다 보니 차츰 내용을 이해하게 됐고, 전체 줄거리를 상상하는 재미도 느꼈다. 간혹 국내 방송에서는 삭제되는 남녀간의 뜨거운 에로 장면을 덤(?)으로 볼 수 있다는 점도 AFKN이 주는 기쁨이었다.

“방학 때는 하루 종일 AFKN을 보면서 살았어요. 특히 드라마를 즐겨 봤죠. ‘Ryan’s Hope’와 ‘General Hospital’ 같은 낮 연속극에서부터 저녁에 방영하는 경찰 드라마까지 진종일 봤어요. 원조 ‘미드족’이었던 셈이죠. 제가 미국 드라마를 좋아했던 것은 동시대 미국의 현실을 잘 보여줬기 때문이에요. 드라마에 비친 미국은 저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죠. 예를 들면 ‘General Hospital’에서는 유부녀 여의사가 버젓이 다른 남자와 연애하는 것이 방송에 나오는 거예요. 지금이야 흔한 일이 됐지만 당시 우리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죠. 그뿐인가요. 남녀가 키스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동작과 소리가 얼마나 리얼하던지 아직도 당시 아찔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웃음)”

AFKN 키드들 우리 사회 문화 중심으로

영화 ‘괴물’의 봉준호(39) 감독 역시 AFKN 영화 마니아였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극장에서 영화를 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가 영화감독의 꿈을 키운 것은 AFKN 덕분이라 할 수 있겠다.

“어릴 때는 영화를 보고 싶어도 극장에 가지 못했어요. 어머니가 ‘지구상에서 가장 세균이 많은 곳이 극장과 지하다방’이라고 엄포를 놓으셔서(웃음) 극장 근처는 얼씬도 못했죠. 대신 텔레비전이 저의 유일한 시네마테크였죠. AFKN에서 방영하는 영화들을 주로 봤는데 영어 대사라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봤죠. 알아들을 수 없으니 비주얼에 더 집중하게 되고, 다음 스토리가 어떻게 될지 멋대로 상상하고 이야기를 구성해보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경험들이 제가 지금 영화를 만드는 데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AFKN 키드’는 음악 분야에도 있다. ‘영원한 DJ’ 이종환(71·TBS·교통방송 ‘이종환의 마이웨이’ 진행) 씨가 대표적이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영화 ‘모정’과 ‘상류사회’를 본 이후 팝 음악에 심취했다고 한다.

‘모정’의 주제곡 ‘Love is a Many Splendored Thing’과 ‘상류사회’의 주인공 빙 크로스비와 그레이스 켈리가 부른 주제곡 ‘True Love’가 그를 매료시킨 것이다.

이씨가 학창시절 팝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AFKN뿐이었다. 당시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빌보드 차트 100위에서 1위까지의 곡을 순서대로 들려주는 쇼를 했는데, 밤새 그것을 듣다가 아버지에게 매를 맞은 적도 있다고 고백한다.

“아버지는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밤에 라디오를 못 듣게 하셨어요. 라디오가 눈에 띄면 바로 뺏었죠. 그래도 음악이 듣고 싶었던 저는 청계천에서 ‘광석 라디오’라는 걸 사다가 이불 속에서 몰래 듣곤 했어요. 전깃줄에 철사를 한 가닥 매달고 콩알보다 조금 큰 이어폰을 귀에 꽂고 듣던 라디오였죠. 그마저 아버지에게 들키는 바람에 효창공원으로 끌려가 ‘다시는 라디오를 안 듣겠습니다’라고 말할 때까지 매를 맞았어요. 그래도 음악은 계속 몰래 들었답니다.(웃음)”

1957년 AFKN이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하면서 주말 저녁 8시에는 ‘팝송 TOP 10 쇼’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당시 그의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어 충무로의 한 호텔에 들어가 이 프로그램을 꼬박꼬박 챙겨 봤다고 한다.

“마음의 친구·좋은 스승 보내는 기분”

1964년 MBC 라디오 PD로 입사한 이후 AFKN은 그의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신곡 팝송을 찾아내기도 힘들었던 당시, 그는 이전 경험을 살려 AFKN에서 나온 음악을 자유자재로 구하고 편집해 방송했다.

이렇게 AFKN은 늘 그의 음악 인생과 함께했는데, 언젠가부터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AFKN이 더는 팝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달려가면 항상 그 자리에 있던 마음의 친구를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단다.

영어 교재라고는 카세트테이프와 문법책 몇 권이 전부이던 시절, 원어민의 유창한 영어를 직접 들을 수 있는 AFKN은 가장 훌륭한 영어 교재였다. 유재용 씨나 이종환 씨도 AFKN을 꾸준히 시청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어 실력이 향상된 경우다. 외국에 나가지 않고 국내에서 영어를 마스터한 ‘토종 영어강사’ 이보영(42·EBY아카데미 소장) 씨도 AFKN을 가장 큰 스승으로 꼽는다.

“세 살 무렵부터 부모님이 틀어줘 AFKN을 보기 시작했어요. 특히 토요일 아침이면 이른 시간부터 만화가 연이어 방송됐는데, 부모님과 만화를 보면서 계속 질문했던 기억이 생생해요. 예를 들면 ‘엄마, 지금 뭐라고 하는 거예요?’ ‘아빠, 저기가 어디예요?’라는 식으로 제가 물으면 부모님은 알기 쉽게 설명해주셨죠.”

만화로 영어 기초를 익힌 뒤 나중에는 드라마와 뉴스, 토크쇼까지 보면서 실력을 길렀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드라마 덕을 톡톡히 보았다고.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아 표현해내는 드라마를 보면 실제 그 나라에 가서 생활해보지 않고도 가장 ‘원어민다운’ 표현법을 익힐 수 있었다고 한다.

AFKN을 통해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하고 실력을 쌓은 경험은 이씨에게 더없이 좋은 자산이 됐다. 그래서 이씨는 정말 좋은 스승을 한 분 떠나보내는 기분이다.

이제는 AFKN을 보며 밤을 지새우던 일도, ‘AFKN 청취반’ 동아리 학생들이 AFKN 방송을 보며 영어를 공부하던 모습도 모두 추억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 추억의 진한 여운만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주간동아 2008.01.29 621호 (p58~60)

  • 백경선 자유기고가 sudaque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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