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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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의 시네+아트

철학 교수가 라스콜리니코프의 범죄를 꿈꿀 때

우디 앨런 감독의 ‘이레셔널 맨’

  •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입력2016-07-29 17: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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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미디영화 전문인 우디 앨런 감독은 간혹 범죄영화를 만든다. 웃음기는 거의 빼고, 범죄의 속성에 집중하는 작품이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누가 범죄자인가 하는 점이다. 그 부분에 우리 사회의 모순이 압축돼 있어서다. 우디 앨런 식 범죄영화의 선구작인 ‘범죄와 비행’(1989)에서는 부와 명예를 누리는 유명 의사가 살인자였다. 살인 이유는 몰래 사귄 여성 때문에 명예를 잃을 것 같아서였다. 말하자면 우디 앨런의 범죄자는 권세를 누리는 사회적 강자다.  

    ‘이레셔널 맨’(2015)은 오랜만에 발표된 우디 앨런의 범죄영화다. 미국 동부지역 한 대학의 철학 교수 에이브 루카스(호아킨 피닉스 분)가 주인공이다. 활기 넘치던 젊은 교수 에이브는 친구가 이라크전쟁에서 죽는 바람에 매사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인물로 변해버렸다. 그는 알코올 중독에 공부에도 집중하지 못할뿐더러,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성적 불능’의 무기력증 환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성’을 설명할 때 한 문장 안에 칸트부터 키에르케고르, 하이데거까지 철학자 이름을 줄줄이 풀어대는 해박한 지식 덕에 학생들 사이에선 여전히 인기가 높다. 그에게 유난히 집중하는 학생이 질(엠마 스톤 분)이다. 영화 전반부는 이들 사이의 가벼운 로맨스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전환점은 식당에서 두 사람이 다른 손님들의 대화를 들은 뒤 찾아온다. 양육권과 관련해 재판 중인 어느 여성이 동료들에게 울면서 하소연한다. “나쁜 판사 때문에 재판에서 질 것 같아요.” 남편의 변호사와 판사는 서로 아는 사이 같고, 심지어 재판 도중 눈빛을 교환하며 웃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한 동료는 “일부 판사는 돈만 먹는 나쁜 놈”이라고 욕하며 여성을 위로한다. 남편은 아이들을 데려가도 방기할 것이 뻔하다며 여성은 한숨짓는다. 같이 이야기를 들은 질은 에이브에게 “나쁜 판사가 암에나 걸렸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매사 시무룩하던 에이브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갑자기 활기를 되찾는다.

    이 영화에서 에이브가 유난히 좋아하는 작가가 도스토옙스키다. 특히 ‘윤리적 범죄’라는 질문을 던진 그의 소설 ‘죄와 벌’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제자 질도 도스토옙스키의 팬이고, 이런 공통점이 두 사람을 친해지게 만들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리를 뜯어먹는 수전노 노파를 죽이는 게 공동체를 위해선 선(善)이라는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고민을 에이브는 십분 이해한다. 그래서 에이브는 공동선을 위한 완전범죄를 꿈꾼다.





    ‘이레셔널 맨’이 이전 우디 앨런 범죄영화와 다른 점은 이번엔 범죄 대상도 사회적 강자라는 사실이다. 철학 교수가 계획한 살인의 대상이 판사라는 점이 긴장을 유발한다. 에이브는 ‘비이성적(irrational)’ 생각에서 빠져나오기는커녕 점점 더 몰두한다. 어떡하다 판사는 자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에게 살인의 대상이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라스콜리니코프와 동일시하는 철학 교수의 이야기가 허구라는 게 그나마 다행일 정도다. 우디 앨런에 따르면 사법부의 꽃인 판사마저 이젠 ‘비이성’의 위기에 놓였다는 뜻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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