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천재들은 계속 진화하고 있어요. 제가 대학에 들어가던 시절에는 수학 본고사에서 20점대만 맞아도 ‘잘했다’는 얘기를 들었죠. 그런데 요즘 아이들한테 똑같은 문제를 주면 아마 ‘너무 쉽다’며 금세 다 풀어버릴 겁니다.”
77학번인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7월 홍콩에서 막을 내린 제57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 한국대표단 단장이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의 어린 수학천재들은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로 종합 2위를 차지했다. 특히 참가자 6명 중 3명이 만점을 받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IMO에서 한국인 만점자가 나온 건 1995년 이후 21년 만이다. 바로 그해부터 IMO 한국대표단을 인솔해온 송 교수는 “문제의 정답뿐 아니라 풀이과정까지 꼼꼼하게 평가하는 IMO에서 여러 명이 동시에 만점을 받는 건 매우 힘든 일”이라며 “이번 성과는 한국이 2012년 IMO 당시 세계 1위를 차지한 것 못지않게 의미 있다”고 평했다.
초등학생 때 발견되는 아이들
IMO는 널리 알려졌듯 세계 수학천재들의 경연장이다. 매년 개최지를 옮겨 여름방학 기간 중 약 열흘 동안 진행되며,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20세 미만 학생이 국가별로 최대 6명까지 참가할 수 있다. 올해 한국대표단은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간 2000년생 주정훈 군을 제외하면 모두 1999년생 동갑내기였다. 송 교수는 “올림피아드 한국 대회를 해보면 고등부 입상자의 절반 정도가 중학생이다. 수학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이는 학생은 대부분 일찌감치 눈에 띄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국인 최초로 2012~2014년 3년 연속 IMO 금메달을 받은 김동률 군도 첫 금메달을 받을 때 만 15세에 불과했다.이런 학생들이 자신의 재능을 처음 확인하는 장소는 대부분 동네 보습학원이라고 한다. 송 교수는 “한국 교육환경 특성상 아이들이 보통 초등학교 3~4학년 무렵 처음 수학학원에 발을 들인다. 그리고 한두 달 만에 일반 교육과정을 뛰어넘는 성취를 보여 자연스럽게 올림피아드 준비를 권유받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학교 담임교사가 아이의 수학적 재능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수학천재’는 대부분 중학교 진학 전 자신의 남다름을 발현한다는 게 송 교수의 설명이다.
이후 이들은 주로 학원에서 이른바 ‘수학올림피아드 대비반’ 수업을 들으며 수학을 공부한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수학올림피아드가 사교육을 부추긴다”고 비판한다. 고액 사교육을 받아야만 대회 입상이 가능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에서는 수학올림피아드 입상자, 일명 ‘수올러’를 꾸준히 배출하는 유명 학원에 들어가려고 별도의 사교육을 받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들 학원이 가진 교육시스템이 ‘수올러’를 만들어낸다는 믿음에서다. 그러나 송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IMO 한국대표로 뽑히고 메달을 받는 건 수학 분야에서 세계인 중 ‘1억 분의 1’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특별한 강의나 반복적인 문제 풀이 훈련만으로 이러한 경지에 오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면 타고난 지능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일까. 이에 대해서도 송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밝혔다. “아이의 지능이 100명 또는 1000명 중 1등 수준만 되면 얼마든지 IMO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수학적으로 말하자면 그 정도 지능이 IMO 수상을 위한 ‘필요조건’인 셈이죠.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안 돼요. IMO 참가자는 이틀 동안 총 여섯 문제를 푸는데, 그중 두 문제는 천재들도 3시간은 들여다봐야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 만큼 어렵습니다. 그걸 끝까지 풀어내려면 일반적인 수학 실력을 넘어서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필요해요.”
송 교수에 따르면 그것은 집중력, 경쟁심, 그리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을 때 느껴지는 쾌감을 즐기고 이를 위해 점점 더 어려운 문제에 도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송 교수는 IMO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내는 한국 학생은 공통적으로 이런 덕목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 강남 일부 학원에서 IMO 입상자가 계속 배출되는 건 그 학원의 교육시스템이 특별히 뛰어나서라기보다 그곳에 이런 실력자가 계속 모여들기 때문이라고 봐요. 어린 천재들은 경쟁심이 매우 높아서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경쟁자가 있으면 능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거든요.”
송 교수의 얘기다. 그는 “IMO 한국대표단 선발을 위한 예선을 치러 보면 학년당 300~400명은 매우 우수한 실력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이 쟁쟁한 또래 친구들과 지적 자극을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덕에 요즘 수학천재들은 더 빠르게 진화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수학에 몰두하고, 그 과정을 통해 자기 능력을 키워나간다는 뜻이다.
“수학교사에게 채점 시간을 주자”
송 교수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몇 번이나 “이 아이들에게도 수학은 어려운 과목이고 끝없는 도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최근 일부에서 ‘수포자’를 줄이려면 수학 교과과정을 쉽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이는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고도 했다. “수학을 아무리 쉽게 포장해도 결국은 어려운 본질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중요한 건 수학이 분명 어렵지만 동시에 매우 재미있다는 점이에요. 그 재미에 흠뻑 빠지면 나중엔 어려움을 즐기게 되죠. 자연스럽게 논리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 등이 자라고요. 종종 ‘수학은 정답이 있어 좋다’는 얘기를 듣는데, 이는 수학을 잘못 이해하는 겁니다. 진짜 수학의 매력은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에 있어요.”
그래서 송 교수는 우리나라 수학교육을 정상화하려면 일선 학교에서 모든 문제를 서술형으로 출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와 동시에 교사에게는 학생의 문제풀이 과정을 들여다보며 평가할 수 있을 만한 충분한 채점 시간을 줘야 한단다. IMO가 바로 그런 방식으로 치러진다. 참가자들은 답안지에 정답뿐 아니라 풀이과정까지 모두 적고, 채점자들은 그 전체를 보며 문제당 7점의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점수를 준다. 정답을 맞히고도 감점을 당할 수 있고, 반대로 답을 알아내지 못해도 상당한 수준의 점수를 받는 경우가 있다. 송 교수는 “현재 한국 교육환경에서 이런 방식으로 수학시험을 치르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그런 시도를 통해 ‘수포자’가 줄어들고, 더 많은 학생이 수학의 재미를 알게 된다면 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나”라고 했다.
“지금 우리 현실을 보세요. 과거에 비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학문제가 매우 쉬워졌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수학을 싫어하잖아요. 상위권 학생은 아는 문제를 틀리지 않으려고 반복훈련을 거듭하고, 중·하위권 학생은 점수를 올리려고 사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고 있죠. 더 늦기 전에 아이들에게 훨씬 어려운 문제를 풀면서도 수학을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송 교수의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