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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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평화협정 논의 수용 워싱턴의 딜레마

로켓 발사 인정해주고 ICBM 중단? 때마침 나온 김정은의 승부수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입력2016-03-11 17: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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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하순 미국과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에 합의한 직후 떠오른 뜨거운 화두는 단연 평화협정 문제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비핵화와 함께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논의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게 그 골자. 북한이 그동안 반복적으로 제기해온 이슈를 중국이 편들고 나섰고, 이에 미국이 한 발 물러서는 자세를 취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그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뜻이 사실상 배제됐다는 점은 가장 뼈아픈 대목이었다.
    언뜻 복잡해 보이지만 핵심은 하나다. 그간 미국 측이 견지해온 ‘평양이 비핵화에 성의 있는 태도를 보여야만 6자회담을 포함한 대화 재개가 가능하다’는 태도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 다만 이에 얽힌 워싱턴의 속내가 무엇인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분석이 엇갈린다. 단순히 대북제재 결의안 협상과정에서 중국 측 동의를 끌어내기 위한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원칙주의적인 태도로는 점증하는 위협을 통제할 수 없다는 계산이 선 것이라는 판단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평화협정 문제가 이후 진행될 회담의 의제에 포함된다 해도 이는 장기과제일 뿐이다. 북한이 완벽한 비핵화 조치를 끝낸 뒤에야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는 미국 측 태도에는 변함이 없다. 이름하여 ‘선비핵화 후평화협정’론이다. 다만 미국 측 당국자들은 이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핵 능력 강화와 미사일 기술 발전을 일단 중단시키는 단기적인 목표를 따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북한이 미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실전에 배치하는 상황을 저지하기 위해 협상 테이블을 연다는 게 워싱턴의 진짜 속내인 셈이다. 이를테면 ‘평화협정 논의 가능’은 이를 위한 미끼다.



    로켓 신경 쓰느라 ICBM 놓쳤다

    이렇게 보면 워싱턴이 그리고 있는 향후 로드맵은 한결 간단해진다. 2005년 9·19공동성명의 복원을 먼 거리에 두고, 2012년 2·29합의를 되살리는 것을 가까운 과제로 두는 방식이다. 이 경우 당장 떠오르는 쟁점은 2·29합의가 붕괴된 원인이 아직 고스란히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로켓 발사 문제다.
    요약하자면 2·29합의의 골자는 ‘북한은 ICBM 발사와 우라늄 농축을 중지하는 대신 미국은 경제적 지원을 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두 달도 지나지 않은 그해 4월 13일 은하3호를 발사한다. 미국은 탄도미사일 기술을 원용한 사실상의 ICBM 개발 작업이므로 합의 위반이라고 비판했고, 북한은 위성발사용 로켓이므로 합의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끝내 좁혀지지 않은 차이가 결국 2·29합의 붕괴로 이어지면서 북·미 두 나라는 끝없는 대립으로 빠져든다. 이 차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6자회담 재개나 비핵화-평화협정 연계 논의 같은 최근 기류는 모두 공염불이 되고 만다.
    눈여겨볼 것은 이를 둘러싼 최근 미국 내부의 논의가 점진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2월 7일 북한의 광명성 4호 발사 이후 제기되기 시작한 전문가들의 분석이 대표적이다. 원론적으로는 당시 발사가 탄도미사일 기술을 사용한 것이므로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게 맞지만, 이를 고스란히 ICBM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예컨대 2월 10일 미국 존스홉킨스대 한미관계연구소가 운영하는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에 올라온 글을 보자. 북한이 공개한 ICBM인 KN-08과 은하 위성발사체를 정밀하게 비교 분석한 이 글은, 언뜻 흡사해 보이는 두 ‘물건’이 사뭇 다른 구조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위성을 발사하기 위한 로켓과 ICBM은 기본적으로 궤도가 다르므로 각 단의 엔진 추력 구성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 위성발사용으로 쓰이던 로켓에 탄두를 달면 미사일로도 쓸 수 있긴 하지만, 이 경우 비행거리는 4000~6000km에 불과해 미 본토에 닿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차라리 이미 공개한 KN-08의 성능을 강화하는 게 워싱턴을 위협할 훨씬 빠르고 경제적인 길이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번 대북제재 결의를 포함해 그간 미국의 대응조치가 상당 부분 북한의 위성발사체 문제에 집중돼 있었다는 사실. 그러는 동안 미 본토에 진짜 위협이 될 개연성이 훨씬 큰 KN-08 개발에 대해서는 전혀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는 게 미국 측 전문가들의 우려다. 2월 19일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 공개한 글에서 제프리 루이스 미국 제임스마틴 비확산연구센터(CNS) 동아시아 비확산국장은 아예 “로켓 발사는 인정해주고 그 대신 KN-08 발사 중단을 받아내자”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다. 2012년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KN-08 초기형과 달리 2015년 10월 공개된 개량형은 3단에서 2단으로 설계가 변경되는 등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평양은 꿰뚫어보고 있다

    단순히 민간 전문가들의 주장일 따름일까. 2월 7일 광명성 4호 발사 이후 나온 미국 측 공식 언급에서 눈에 띄는 부분 중 하나는 이를 ‘로켓(Rocket)’ 또는 ‘위성발사체(SLV)’라고만 지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를 막론하고 모두 마찬가지. 한국 정부와 언론이 대부분 ‘장거리 미사일’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한 미국 측 당국자는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지만, 정부 차원의 공식성명에서 로켓과 미사일이라는 용어를 구분해 사용하라는 원칙이 정립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차이가 2·29합의를 붕괴시킨 원인이었고, 상황을 되돌리려면 여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걸 워싱턴도 인지하고 있다는 취지였다.
    이쯤 해서 대담한 그림을 그려보자. 최근 거론된 것처럼 평화협정 체결과 완전한 비핵화를 최종목표로 설정하고 6자회담을 재개하는 경우다. 이 테이블에서 미국이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우주개발을 위한 주권적 행동’으로 인정해주는 대신 KN-08을 비롯한 장거리 미사일 개발작업을 중단하라고 요구한다면? 여기에 추가 핵물질 확보 작업 중단과 경제적 반대급부 제공을 맞교환한다면?
    평양은 그간 인공위성 발사를 국내외적으로 ‘우주강국’의 자부심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왔고, 다른 국가의 위성을 위탁 발사해줌으로써 외화 획득을 노리는 부수적인 효과도 기대해왔다. 중국으로부터 반복적으로 ‘대화재개’ 압력을 받고 있는 평양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크지 않은 셈. 워싱턴으로서도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미 본토에 대한 위협을 성공적으로 묶어둘 수 있다는 점에서 솔깃한 그림일 수 있다. 다만 남는 것은 오바마 행정부의 난처함이다. ‘미국이 당초 원칙에서 물러나 북한의 논리를 수용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지기 때문. 반대급부를 줘서라도 ICBM 개발을 중단시키자니 그간 만들어두었던 논리와 대응방식이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평화협정 의제 수용을 시사하면서까지 대화 필요성을 검토하게 된 오바마 행정부의 최근 흐름이 단순한 중국 달래기용 제스처가 아니었음은 이렇게 명확해진다. 가시화되는 ICBM 위협을 간과하기 어려운 곤혹스러운 처지의 결과물인 셈. 때마침 3월 9일 ‘노동신문’은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핵무기 연구 분야의 과학자, 기술자들을 만나 KN-08 탄두 설계도와 소형화된 핵탄두 모형을 살펴보는 사진을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평양 역시 미국의 곤혹스러움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게, 게임은 다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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