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0

2016.01.06

사회

“4대 보험? 안 돼! 57시간 10분만 일해!”

노동 선진화 역행 한국마사회 꼼수…단시간 근로자 6000여 명 4대 보험 보장 못 받아

  • 김유림 채널A 기자 rim@donga.com

    입력2016-01-05 16: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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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리빨리 마권 달라고! 야! 너 뭐하는 거야!”
    성난 사내의 성화는 계속됐다. 오전 내내 하나도 따지 못했나 보다.
    “네, 네. 잠시만요.”
    대답은 나오지만 속에선 천불이 난다.
    ‘자기가 돈 잃은 게 내 탓이람?’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줄은 끊길 기미가 안 보인다. 다음 경주는 창구를 내리고 쉬는 ‘휴게시간’이지만 점심도 제대로 못 먹고 눈치 보며 입안에 과자 하나 털어 넣는 동료를 보니 쉴 마음도 나지 않는다.



    6000여 명의 1년 근로시간 똑같아

    경기 과천시 서울경마공원(렛츠런파크서울)에서 근무하는 송은순(40·가명) 씨는 마권 발권 업무를 맡은 단시간 근로자. 10년 넘게 매주말마다 근무했다. 주말 아침에 부랴부랴 아이들 식사를 챙겨놓고 머리도 못 말리고 나와서는 밤에는 별을 보며 들어간다. 하지만 하루 근로시간은 실질 근무시간(9시간)에 훨씬 못 미치는 7시간 10분으로 책정된다. 한 달 근로시간은 57시간 10분. 60시간을 채우지 못해 국민건강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다. 퇴직금도 언감생심이다.
    정부는 2010년부터 공공기관으로 하여금 주 40시간 미만 근무하는 ‘단시간 근로자’를 고용하게 했다. 육아와 가사 등 전일제 근무가 어려운 여성 직원에게 효율적이면서도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것. 일자리를 나누면 공공기관 정원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단시간 근로자 채용 실적을 기관 경영평가에 반영했다. 이 덕에 2015년 공공기관에는 총 2만5084명의 단시간 근로자가 근무했다.
    단시간 근로자도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다. 주 15시간, 월 60시간 이상 근무하면 국민건강보험, 국민연금 등 4대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그런데 일부 공공기관은 법의 틈바구니를 비켜나가는 ‘꼼수’로 이들의 4대 보험 가입을 제외시키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단시간 근로자 제도를 들여다봤다. 가장 많은 단시간 근로자를 고용한 공공기관은 한국마사회(마사회). 마사회는 2015년 단시간 근로자 6527명을 고용했다. 대부분 경기 과천시 및 전국에 흩어져 있는 화상경마장에서 발권 업무를 하는 근로자(PA)다. 마사회 정규직(1076명)보다 단시간 근로자가 6배 이상 많다.
    눈에 띄는 것은 근무처도, 업무도, 경력도 다 다른 이들 6000여 명의 1주일 근로시간이 모두 똑같이 57시간 10분이라는 점. 모든 사람의 출근시간은 10시 20분이고 퇴근 시간은 6시 30분, 휴게시간은 1시간이다(표 참조). 결국 하루 근로시간은 7시간 10분으로 4대 보험 가입 의무 시간에 20분 모자란다. 이에 따라 이들은 산재보험을 제외한 3가지 보험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근무자들은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근무한다고 입을 모았다. 20년간 근무한 김모 씨는 “오전 9시 40분이면 대부분 PA가 다 출근해 있다. 심지어 오전 10시가 넘어서 오면 관계자에게 ‘왜 지각하느냐’고 꾸지람을 듣는다”고 말했다. 서울 모 화상경마장에서 근무하는 장모 씨 역시 “오전에는 친절교육, 소방교육 등이 이어진다. 업무가 끝나면 시제정산, 청소 등도 한다”고 말했다.
    마사회는 정해진 근로시간을 맞추라고 지시한다. 근로시간을 조절하기 위해 정상 출근시간보다 50분 늦게 출근하는 ‘시차출근제’를 도입한 적 있고, 근로자가 시간을 초과할 것을 걱정해 ‘의무 휴게시간’도 정해뒀다. 하지만 대다수 PA는 “경마가 지연되면 쉬지 못하고 밥도 못 먹는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쉬는 시간에도 외출이 어려워 대부분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고, 심지어 근무 도중 자리에서 음료수를 마시는 것도 제지당하기 일쑤다. 하루 근무시간이 기준 시간(8시간)에 50분 못 미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휴게시간(1시간)도 보장받지 못한다.
    2년 전, 20년 넘게 PA로 근무했던 김모 씨 등 17명이 마사회를 상대로 퇴직금 지급 소송을 냈다. 이들은 “하루에 사실상 8시간 반~9시간 근무했다”며 “주 15시간 이상 근무했기 때문에 퇴직금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실제 출퇴근시간과 관계없이 근로 및 인사규정에 명시된 원고들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이라 퇴직금 지급 의무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17명은 모두 2010년 이후 근무분에 대한 퇴직금은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마사회에서 나와야 했다.


    “4대 보험 요구하면 전자매표소 늘릴 것”

    마사회보다 단시간 근로자 수가 적긴 하지만, 단시간 근로자 179명을 고용한 그랜드코리아레저 역시 같은 방식을 쓴다. 그랜드코리아레저 단시간 근로자의 근로시간은 주 14시간으로 고정돼 있다. 4대 보험 의무가입 시간보다 1시간 적은 것. 그랜드코리아레저의 단시간 근로자는 고용,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지만 국민건강보험에는 가입돼 있지 않다.
    정부 역시 이런 ‘꼼수’에 문제가 있다는 걸 파악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인력정책과 측은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가입을 늘려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것이 정부의 노동정책 방향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힘줘 말했다. 그렇지만 마사회 등의 계약 조건에 대해 고의성을 찾아 대놓고 문제 삼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고용노동부가 행정지도를 내릴 수 있지만 법적으로 제재할 방안은 없다.
    노동계 역시 답답하긴 마찬가지. 문제 제기를 하고 싶어도 마사회 측이 “4대 보험 가입으로 비용이 늘어난 만큼 인력을 줄이고 전자매표소를 늘리겠다”고 하면 문제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마사회가 고용한 단시간 근로자는 2010년 7160명에서 2015년 6527명으로 줄었는데 그사이 전자매표소는 눈에 띄게 많아졌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관계자는 “마사회가 적극적으로 단시간 근로자를 해고하지는 않지만 결원이 생겨도 신규 인원을 충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인원을 줄여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무소속 유승우 국회의원은 “한국 노동구조를 이끌어야 할 공공기관에서 대놓고 ‘꼼수’를 부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2015년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같은 지적을 했으나 마사회 측은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또한 유 의원을 통해 한 서면 질의에 대해서도 마사회 측은 “만약 전체 인원을 정규직화할 경우 절대 근로자 수가 약 1700명 감소하고 대학생 등 청년층은 주 3일 근무가 불가능해 청년 일자리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렇게 되면 법정 비용만 142억 원이 추가 발생해 농어촌 복지에 사용하는 재원 100억 원을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답변했다. 2014년 한 해 마사회 정규직 직원의 평균 연봉은 8500만 원. 정규직의 20%인 192명이 억대 연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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