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80

2019.03.15

특집 | 국내 ‘페이’는 영 파이

‘페이’ 오프라인 결제금액 하루 평균 6500만 원 불과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9-03-18 11:3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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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관광객이 한국서 페이로 결제한 액수에도 못미처

    • 유인책 없다면 전통 결제수단 대체 어려워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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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페이 서비스를 사용하는 손님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서울 마포구 서교동 인근의 한 옷가게 직원 이모(25·여) 씨의 말이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 제로페이’라며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고 있는 서울시의 제로페이까지 언급할 필요도 없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인지도를 가진 ‘삼성페이’는 물론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도 아직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전통 강자인 신용카드나 현금, 체크카드를 넘기는커녕 지급수단 통계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할 정도로 거래량이 미미하다. 

    그렇다고 국내에서 간편결제서비스를 아예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인 관광객이 자주 찾는 상점가의 가게는 대부분 알리바바의 간편결제시스템인 ‘알리페이’ 가맹점이다. 간혹 카카오페이 가맹점이나 QR코드 표시를 걸어놓은 가게도 있다. 하지만 직접 들어가 점원에게 물으면 사용하는 손님이 거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한국의 간편결제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 중이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국내 간편결제시장(전자지급서비스) 규모는 2016년 11조7810억 원에서 2017년 39조9900억 원으로 1년 만에 3배 이상 커졌다. 하루 평균 결제 건수도 2016년 85만9000건에서 2018년 2분기 362만7000건으로 4배가 됐다. 일부 카드시장을 넘어섰다는 평가까지 보인다. 카드사들은 경영 부진으로 희망퇴직 규모를 늘려가는데 간편결제 회사는 신규 채용에 나섰다는 얘기도 나온다.

    연일 잘나간다던 페이, 매장에선 본 적 없어

    하지만 정작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간편결제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3월 10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번화가의 가게를 찾았다. 주말이라 사람은 많았지만 간편결제서비스를 이용하는 손님은 드물었다.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젊음의 거리에서는 카카오페이를 지원한다는 가게 앞 노란 팻말과 QR코드를 종종 볼 수 있었다. 카카오톡에서 페이 화면을 켜도 바코드로 돈을 내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다. 맞은편 연남동도 상황은 마찬가지. 



    직장인 이모(27·여) 씨는 “지난해 하반기에는 카카오페이가 매일 결제자 가운데 7명에게 1000만 원을 준다는 식의 이벤트를 해 재미로 잠시 사용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별다른 이벤트가 없어 원래 쓰던 체크카드를 쓰고 있다”고 밝혔다. 간편결제서비스의 보급을 가장 빨리 피부로 느끼는 것은 소상공인이었다.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43) 씨는 “주말 이틀 동안 카카오페이나 삼성페이로 돈을 내는 손님은 많아야 서너 명뿐”이라고 밝혔다. 옷가게에서 일하는 조모(25·여) 씨도 “대다수 손님은 계산대에 오면 자연스레 카드(체크카드나 신용카드)를 꺼내지 휴대전화로 결제하겠다는 손님은 드물다”고 말했다. 

    통계와 시장의 온도 차이는 간편결제시장의 범위 때문에 생긴 일. 흔히 알고 있는 간편결제는 스마트폰을 통해 오프라인에서도 카드나 현금 없이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다. 하지만 한국은행 집계에서 간편결제로 분류되는 산업의 폭은 이보다 훨씬 넓다. 한국은행의 ‘2017년 전자지급서비스 이용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전자지급서비스는 크게 △전자지급결제대행 △결제대금예치 △선불전자지급 △전자고지결제 △직불전자지급 등 5개 분야로 나뉜다. 이 중 직불전자지급이 구매자의 계좌에서 판매자의 계좌로 직접 연결하는 방식이다. 흔히 알려진 오프라인 환경의 ‘페이’가 이 분야. 한국은행 집계에 따르면 2017년 직불전자지급서비스로 하루에 쓴 금액은 6500만 원. 2016년 3500만 원에 비해 2배 가까이 늘긴 했다(표 참조). 

    전자지급결제대행은 판매 실적 관리 서비스라고 생각하면 쉽다. 영세 판매자를 대행해 구매자에게 대금지급서비스나 해킹 방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대금 정산을 해주며 수수료를 받는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이 대표적인 예. 

    선불전자지급은 전자상품권이다. 모바일 상품권, 쿠폰 등이 이에 속한다. 전자고지결제는 채권·채무 성격의 고지서를 온라인, 모바일 같은 전자적 방식으로 송달하는 일이다. 핀테크(금융+기술) 서비스가 대부분 전자지급결제대행, 즉 통계상의 간편결제시장으로 둔갑해 있는 것.

    페이 잘 된다고? 눈 가리고 아웅

    삼성페이(왼쪽)와 카카오페이로 결제하는 모습. [사진 제공 · 삼성전자, 지호영 기자]

    삼성페이(왼쪽)와 카카오페이로 결제하는 모습. [사진 제공 · 삼성전자, 지호영 기자]

    현재 사용액은 적을지라도 사용자가 많다는 통계도 있다.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은 2017년 12월 서울과 6대 광역시에 거주하는 25~64세 성인 2530명을 대상으로 간편결제서비스에 관한 인식 조사를 시행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51.7%가 간편결제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한국의 간편결제시장은 이미 자리를 잡은 듯하다. 하지만 어떤 서비스를 사용하는지를 확인해보면 현실과의 간극이 드러난다. 간편결제서비스를 이용한다는 응답자의 77.8%는 카드사의 앱카드 서비스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국내에서 ‘◯◯페이’라는 이름의 간편결제서비스는 총 30여 개. 그중 카드사의 앱카드 서비스는 8개다. 일부는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앱카드 서비스는 가맹점이 많지 않아 편의점에서나 겨우 사용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앱카드 사용 대부분이 온라인쇼핑 결제다. 카드사가 앱카드 이용을 강권하니 어쩔 수 없이 사용량이 나오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온라인몰의 포인트 서비스가 간편결제서비스로 묶인다. 하지만 대부분 포인트로 결제할 수 있고, 현금을 포인트로 바꿔 일부 할인을 받는 정도다. 오프라인에서도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간편결제서비스는 현재 삼성전자의 ‘삼성페이’와 네이버의 ‘네이버페이’, 카카오의 ‘카카오페이’ 등이다.

    신기술 도입해도 카드 아성 넘기 어렵다고?

    이 중 현재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삼성페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에 기본 탑재돼 있으니 일단 가입자가 많다. 삼성전자에서 자체 조사한 결과 지난해 기준 누적 가입자는 1000만 명, 누적 사용액은 18조 원에 달한다. 18조 원이라는 금액만 보면 많은 듯하지만 누적 가입자 수로 나누면 인당 총 18만 원을 삼성페이로 결제한 셈이다. 2015년 8월 출시된 서비스니 만 3년이 넘었다. 해마다 인당 6만 원을 채 쓰지 못한 것. 

    네이버와 카카오의 페이 서비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누적 사용 실적 등을 발표하지는 않지만 오프라인에서 쓰이는 금액은 미미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3월 12일 서울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합정역, 신림역 인근 번화가에 자리한 상점 20여 곳을 돌아본 결과, 하루에 2팀 이상 카카오, 네이버페이를 사용해 결제하는 손님을 만난 곳은 2곳뿐이었다. 이 중 7곳은 페이 사용이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었지만, 점원이 페이 결제 방법을 몰랐다. 

    핀테크업계 관계자는 “두 서비스 모두 양대 포털사이트와 메신저에서 주로 사용된다. 네이버페이는 네이버의 예약 및 온라인 마켓, 카카오페이는 카카오 선물하기 서비스, 온라인 마켓에서 거래량이 많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페이시장이 성장하지 않는 이유를 한국 결제 환경의 특수성에서 찾는다. 신용카드와 체크카드의 점유율이 공고해 이를 깨기 쉽지 않다는 것. 지난해 3월 한국은행 금융결제국 결제연구팀이 ‘2017년 지급수단 이용행태 조사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전국 19세 이상 남녀 2511명을 설문한 것으로, 지급수단별 이용률에서 현금이 99.3%(복수응답)로 가장 높았고 신용카드(79.1%), 계좌이체(64.1%), 체크·직불카드(56.7%)가 뒤를 이었다. 간편결제서비스를 포함해 모바일 앱을 통한 결제는 16.9%로 비교적 저조했다(그래프 참조). 

    페이 서비스를 사용하려면 각 매장에서 전용 단말기를 구비해야 한다. 페이 서비스는 대부분 NFC(근거리무선통신) 단말기를 이용해 결제한다. 하지만 간편결제서비스 사용자가 적은 만큼 매장에서 단말기 도입을 망설인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불편을 막고자 QR코드 방식이 도입됐다. 각 매장 계산대에 있는 QR코드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으면 휴대전화에 간편결제서비스가 작동해 대금 지불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번거롭자 삼성페이는 카드 단말기로도 간편결제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휴대전화에 내장된 안테나에서 마그네틱 신호를 생성하는 방식. 앱을 켜고 지문인식이나 패턴으로 본인인증 절차를 거친 뒤 카드 단말기에 휴대전화를 대면 결제가 이뤄진다. 하지만 여전히 카드의 아성을 넘지는 못하고 있다. 핀테크업계 관계자는 “당장 카드만 꺼내면 결제 할수 있는데,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QR코드를 찍거나 앱을 켜는 번거로움을 감수할 소비자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선두주자인 삼성전자마저 간편결제서비스 확장을 접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핀테크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삼성페이를 사용하면 일정 적립금을 주거나 사은품 이벤트를 열었지만 하반기부터는 관련 행사가 크게 줄었다. 내부에서도 페이 담당 팀을 애물단지 취급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돈을 벌기 어려우니 예산 쓸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현상 유지만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같은 의혹에 대해 “금시초문이다. 적립금 같은 이벤트가 줄어든 것은 삼성 모바일 서비스 통합을 위해 잠시 멈춘 것”이라면서도 “사실 삼성페이 자체가 삼성전자 휴대전화 사용자의 편의성을 높이려는 것이지 이익을 내려고 시작한 서비스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가게는 대부분 알리페이 가맹 마크가 붙어 있다. 3월 12일 중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서울 명동 중심가를 찾았다. 서울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서 명동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가게들 앞에는 중국어 입간판이 한국어 입간판보다 자주 보였다. 음식점과 옷가게, 화장품 가게가 대부분 알리페이 가맹점이었다. 문 앞에 가맹 마크가 붙어 있지 않은 가게도 막상 들어가 계산대 앞에 서면 알리페이 QR코드나 가맹 마크가 보였다. 

    명동의 가게 직원들은 입을 모아 “알리페이로 결제하는 손님이 많다”고 말했다. 화장품 가게에서 일하는 정모(26·여) 씨는 “내국인 손님은 보통 카드를 꺼내는데, 중국인 손님은 십중팔구 알리페이를 사용한다”고 밝혔다. 옷가게에서 일하는 박모(24) 씨도 “중국인 손님이 많은 만큼 점원이 알리페이 사용법을 익히지 않으면 판매가 어려울 지경”이라고 말했다. 

    알리페이의 국내 사용 금액도 국내 간편결제서비스를 압도하는 수준. 2월 19일 알리바바그룹은 2월 4~10일 춘절 연휴에 중국인 관광객이 전 세계 관광지에서 알리페이로 사용한 금액을 발표했다. 한국은 전체 국가 가운데 9위로 관광객 1인이 하루 평균 4860위안(약 82만 원)을 썼다. 2017년 하루 평균 18만 원인 국내 간편결제서비스 결제액과 비교하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

    시스템보다 사용자 늘리는 게 먼저

    서울 명동 지하상가의 알리페이 광고(왼쪽).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에서 알리페이로 결제하는 모습. [뉴시스]

    서울 명동 지하상가의 알리페이 광고(왼쪽).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에서 알리페이로 결제하는 모습. [뉴시스]

    알리페이를 비롯한 중국의 간편결제서비스는 승승장구 중이다. 그 비결은 바로 간편결제업체가 제공하는 결제계좌에 있다. 이 계좌에 돈을 넣으면 은행 금리보다 높은 금리를 준다. 알리바바의 투자서비스 ‘위어바오’가 대표적인 예. 알리페이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사용이 불편했다. 알리페이에 일정 금액을 입금하고 체크카드처럼 사용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고자 알리페이는 자사의 간편결제시스템을 시중은행보다 이율이 높은 예금 계좌처럼 만들었다. 

    위어바오는 머니마켓펀드(MMF) 같은 단기 상품을 구조화한 금융상품이다. 저위험-저수익 상품이지만 예금보다 높은 이익을 낼 수 있다. 현재 위어바오는 금융 채권, 미국 재무부 채권을 포함해 각국 재무부에서 발행하는 채권, 비과세 지방세 같은 상품에 주로 투자한다. 최근 연평균 수익률이 6%를 넘어섰다. 중국 시중은행의 예금 금리 상한선이 3.3%이니 2배 가까운 수익률을 내는 셈. 현재 중국 시중은행의 평균 예금 금리가 1% 남짓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높은 수익률이다. 게다가 단돈 1위안도 투자가 가능하니 저소득층도 투자에 나설 수 있다. 그렇다고 출금이 불편한 것도 아니다. 서비스 초창기인 2013년에는 아무 때나 자동입출금이 가능했다. 지금은 개인투자자에 한해 하루 출금액 제한이 생겼으나, 쓰는 돈의 규모가 법인 수준으로 크지 않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제한액이다. 

    알리페이는 이렇게 모인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투자 금융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영화나 게임에 투자하는 소셜펀드와 소액 대출, 온라인 보험까지 사업을 확대해 중국 온라인 금융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국내 간편결제시장의 실질적 성장을 위해서는 이러한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물론 유인책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카카오페이는 기본 결제액의 0.3%를 적립해준다. 네이버페이는 비정기적인 이벤트로 포인트를 쌓을 수 있다. 최근에는 네이버 오픈스토어에서 구매한 물건의 리뷰를 남기면 500원가량의 포인트를 주고 있다. 삼성페이는 가맹 카드를 사용하면 포인트 적립을 높여주거나 게임, 쇼핑 리워드 등 다양한 유인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유인책이 불편함을 극복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 편하게 사용하던 카드나 현금을 포기하고 페이(간편결제)를 사용할 만큼의 유인책이 필요하다. 지금은 겨우 카드사를 따라가는 등의 방식인데 간편결제사와 금융사의 합작으로 카드보다 간편결제를 사용하는 편이 이득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다면 한국에서도 간편결제서비스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에서 알리바바의 모델을 가장 발 빠르게 따라가는 것은 카카오페이로, 지난해 말 바로투자증권을 인수했다. 금융업계에서는 카카오가 금융상품 판매나 관련 서비스업에 진출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금융투자업 인허가의 벽이 높아 이를 우회하려고 증권사 인수에 나섰다는 것. 실제로 지난해 초부터 카카오페이는 온라인 펀드 판매 증권사 펀드온라인코리아, 골든브릿지투자증권 같은 중소형 증권사 인수에 관심을 보여왔다. 카카오페이 관계자는 “구체적인 방안이 확정된 것은 없으나 연내 카카오페이 플랫폼을 활용한 금융 서비스를 선보이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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