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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배의 food in the city

서양, 일본을 거친 오묘한 변주곡

서울 돈가스

서양, 일본을 거친 오묘한 변주곡

서양, 일본을 거친 오묘한 변주곡

서울 중구 ‘원조남산돈까스’의 돈가스(위)와 종로구 ‘긴자바이린’ 한국점의 히레가스.

모든 음식은 사회적 결과물이다. 돈가스만큼 이렇게 간단하고 복잡한 명제를 잘 투영한 사례는 별로 없다. 메이지유신을 통해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 따라 하기에 성공한 일본은 675년 공표했던 ‘살생과 육식을 금지하는 칙서’를 이때 폐기하고 먹거리에도 유신을 가져온다. ‘부정 탄다’며 1200년 동안 멀리하던 육식을 일왕부터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육식은 전쟁을 수행하던 군인들에게 최고의 전투 원천이 됐다.

19세기 말 군대에서 시작된 일본의 육식 바람은 일반 대중에게까지 불기 시작했다. 육식이 서구화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면서 새로운 육식 음식이 등장했는데, 그중 하나가 돈가스였다. 돈가스는 돼지고기를 튀겨 먹는 프랑스 음식 ‘코틀레트(cotelette)’나 이의 영어발음 ‘커틀릿(cutlet)’에서 유래했다. 코틀레트의 일본식 발음인 ‘가쓰레쓰’가 돈가스의 어원이 된다. 고기만 튀겨 먹던 코틀레트에 일본인의 음식문화인 돈지루(돼지고기를 넣은 된장국)와 밥, 양배추가 얹어지면서 보통 사람들의 한 끼 식사로 완전하게 자리 잡는다.

가쓰레쓰를 처음 팔기 시작한 곳은 도쿄 긴자에 있는 ‘렌카테이’로, 아직도 그 자리에서 영업 중이다. 1927년 긴자에서 탄생한 ‘긴자바이린’은 초기 돈가스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집이다. 고기를 먹기 좋게 잘라주고 소스는 별도로 주며 밥과 된장국도 함께 나온다. 돈가스는 로스(등심)나 히레(안심)를 사용한다. 2011년 미술관이 가득한 서울 종로구 사간동에 일본식 고급 돈가스를 파는 ‘긴자바이린’ 한국점이 문을 열었다. 돼지고기 안심에 빵가루를 입혀 튀겨낸 히레가스는 그 특유의 부드러움 때문에 찾는 이가 많고, 로스가스는 기름맛과 고기맛을 동시에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적격이다. 일본에선 흔하지만 한국에선 낯선 돈가스를 넣은 가쓰샌드도 먹을 만하다.

돈가스 문화가 한국에 상륙한 것은 일제 강점기였다. 돈가스만 파는 전문점은 없었고 일본에서 만들어진 ‘경양식(輕洋食)’이란 이름을 단 식당에서 주로 팔렸다. 1960년대 이후 경양식은 최고 외식 중 하나였다. 70년대에서 80년대 초반까지 처음 만난 남녀는 경양식을 먹으며 우아한 하루를 보냈다. 돈가스가 가장 인기가 좋았지만 쇠고기를 돈가스처럼 만든 비프가스, 생선을 튀긴 생선가스, 달걀을 이용한 오므라이스, 카레라이스, 데미글라스 소스를 얹은 하이라이스, 햄버거 패티를 스테이크처럼 먹는 햄버그스테이크 등 종류도 많았다.

그런 가운데 1977년 남산 케이블카 입구 쪽에 ‘원조남산돈까스’가 문을 연다. 돼지고기 등심을 두드려 넓적하게 펴고 데미글라스 소스를 한가득 뿌려 내는 한국식 돈가스가 등장한 것. 하지만 이 집 돈가스는 경양식이 아니고 택시기사들을 위한 간편식이었다. 시간이 돈인 택시기사들의 패스트푸드로 탄생한 돈가스는 커다란 접시에 돈가스와 소스, 밥, 양배추, 단무지, 삶은 옥수수가 함께 얹어 나온다. 된장국과 깍두기, 매운 풋고추는 별도로 나온다. 카레라이스든 돈가스든 밥과 튀김옷이 눅눅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소스가 별도로 나오는 일본식 음식문화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 도입된 것이다.

택시기사들을 위한 식당이 유난히 많았던 성북구 성북동에도 1980년대 한국식 돈가스가 등장한다. 80년대가 되면 돈가스는 젊은이와 직장인이 가장 선호하는 외식이 된다. 기름에 튀긴 돼지고기와 개운한 채소, 밥과 된장국을 함께 먹는 돈가스는 외식의 미덕을 상당히 많이 갖추고 있다. 중구 명동에 있는 ‘명동돈가스’는 일본의 유서 깊은 돈가스 명품점 ‘호라이야’에서 기술을 배운 사장이 83년 창업한 집이다. 일본식 돈가스로 소스를 별도로 준다. ‘호라이야’는 특히 히레가스로 유명한데 ‘명동돈가스’도 마찬가지다.

서양 음식에서 일본 먹거리로, 다시 한국 대중식으로 정착하면서 다양한 변주를 선보인 돈가스는 새로운 음식의 탄생 과정을 잘 보여주는 타임캡슐이라 하겠다.

주간동아 2015.10.05 1007호 (p76~76)

  • 박정배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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