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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기적의 ‘뺑뺑이’는 왜 흉물이 됐나

놀이 아닌 고된 노동이 된 ‘플레이 펌프’ … 2~3달러 휴대용 정수기 ‘라이프 스트로’ 주목!

기적의 ‘뺑뺑이’는 왜 흉물이 됐나

기적의 ‘뺑뺑이’는 왜 흉물이 됐나

아이가 놀면서 물도 길어 올릴 수 있다고 해 아프리카 전역에 설치된 플레이 펌프. 하지만 물을 길어 올리는 데 엄청난 노동이 필요한 데다 고장 나면 고칠 방법이 없어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TV 채널을 돌리다 문득 고정해 멍하니 바라본 광고가 있다. 허술한 양철 깡통을 두 손에 들고 메마른 대지를 걷는 여성과 아이. 그렇게 몇 시간을 걸어 도착한 냇가 또는 우물에는 도저히 씻거나 마실 수 없어 보이는 흙탕물이 고여 있다. 이들은 그 흙탕물을 마치 성스러운 물이라도 되는 양 깡통에 퍼 담은 뒤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아프리카 지역에서 식수를 비롯한 물 부족 문제는 심각한 상태다. 상당수 주민이 몸을 씻기는커녕 마실 물도 없어 매일 몇 시간씩을 물 구하는 데 쓴다. 더구나 그런 노동에 동원되는 이들은 열 살도 채 안 된 어린아이다. 그렇게 구한 물도 더럽기 짝이 없다. 전 세계에서 매일 어린이 3900명이 식수와 기본 위생 결핍으로 목숨을 잃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현실을 바꿔보고자 지금까지 열정 넘치는 여럿이 문제 해결에 나섰다. 그 가운데 하나가 ‘플레이 펌프(Play Pump)’다. 아이디어는 참신했다. 플레이 펌프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빙글빙글 돌리면서 노는 놀이기구인 이른바 ‘뺑뺑이’와 펌프 기능을 합친 발명품이다. 뺑뺑이를 돌리면서 노는 동안 자연스럽게 땅속의 물을 퍼 올릴 수 있다.

물도 제대로 구할 수 없는 아프리카에 변변한 놀이기구 하나 구비돼 있을 리 없다. 그러니 아이들이 물을 긷고자 몇 시간을 걷는 대신 뺑뺑이를 돌리면서 놀면 된다. 이 아이디어는 아프리카 현실에 마음 아파 하는 선진국 사람 여럿의 마음을 움직였다.



놀면서 물 긷는 ‘기적의 뺑뺑이’ 신화

‘펜트하우스(Penthouse)’ 같은 잡지에 싣는 광고를 기획하던 남아프리카의 부자 트레버 필드도 1989년 이 아이디어에 꽂혔다. 그는 특허를 사들인 뒤 5년 동안 설계를 개량했다. 플레이 펌프로 길어 올린 물을 저장하는 물탱크 좌우에 옥외광고판을 달아 유지 및 보수 자금을 충당하는 사업 계획도 세웠다. 직장을 그만 두고 아예 자선단체도 차렸다.

처음에는 반응이 미지근했다. 하지만 필드는 굴하지 않고 남아프리카 전역을 돌며 기업과 지방자치단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 덕에 2000년대로 접어들 무렵 플레이 펌프 50대가 남아프리카 전역에 설치됐다.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도 이 참신한 시도에 주목했다.

미국 인터넷 기업 AOL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케이스도 뒤늦게 플레이 펌프의 매력에 빠졌다. 이 부자는 필드와 협력해 아프리카 전역에 플레이 펌프 수천 대를 설치하는 자선사업을 시작했다. 모금을 위한 생수(One Water)가 출시돼 큰 성공을 거뒀다. 언론도 ‘마법의 뺑뺑이(The Magic Roundabout)’ ‘놀면서 물 긷기(Pumping Water is Child’s Play)’ 같은 보도로 힘을 보탰다.

이런 판에 정치인이 빠질 리 없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뛰어난 혁신”이라고 치켜세웠다. 현직 대통령이던 조지 W 부시의 영부인 로라 부시는 2010년까지 아프리카 전역에 플레이 펌프 4000대를 설치하는 데 드는 6000만 달러(약 673억4800만 원)를 모금하는 캠페인에 4분의 1 정도인 1640만 달러(약 185억4500만 원)를 지원했다.

이런 열기 덕에 플레이 펌프는 2009년까지 남아프리카, 모잠비크, 스와질란드, 잠비아 곳곳에 약 1800대가 설치됐다. 정말로 ‘기적의 뺑뺑이’가 된 것이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플레이 펌프는 아프리카 곳곳에서 흉물로 전락했다. 선한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장면이었다.

플레이 펌프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뺑뺑이는 가속도가 붙으면 저절로 돌아간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뺑뺑이를 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아이도 놀이터에서 몇 시간씩 뺑뺑이를 타지는 않는다. 더구나 어느 수준 이상으로 속도가 빨라지면 상당수 아이는 공포를 느끼며 운다.



선한 의도의 배신

기적의 ‘뺑뺑이’는 왜 흉물이 됐나

필터를 1년 동안 교체하지 않아도 빨아올리는 물의 오염물질, 박테리아, 바이러스를 99.99% 이상 제거한다는 휴대용 정수기 ‘라이프 스트로(Life Straw)’.


그런데 플레이 펌프가 땅속에서 물을 빨아 올리는 기능을 제대로 하려면 쉴 새 없이 빠른 속도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하루 종일 뺑뺑이를 돌리는 일은 즐겁지 않을 뿐 아니라 금세 지친다. 결국 플레이 펌프를 돌리는 일은 아이가 아니라 성인 여성의 몫이 됐다. 하염없이 뺑뺑이를 돌려야 하는 성인 여성의 모습은 얼마나 모욕적인가.

더구나 대당 1만4000달러(약 160만 원)인 플레이 펌프는 기존 수동 펌프에 비해 4배나 비싼 반면, 시간당 퍼 올릴 수 있는 물의 양은 5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수동 펌프는 마을 사람이 직접 고쳐 쓸 수 있는 반면, 플레이 펌프는 부품이 금속으로 싸여 있어 수리 기사를 불러야 했다. 아프리카 오지의 농촌 마을에 수리 기사가 제때 올 리가 없다.

필드가 야심 찬 사업 모델로 제시했던 옥외광고의 사정은 어땠을까. 2000만 명 가까운 사람이 모여 사는 수도권에서도 옥외광고를 유치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데 하루 종일 지나가는 사람이 몇 안 되는 아프리카 시골 마을에 어떤 기업이 옥외광고를 걸겠는가. 결국 플레이 펌프는 한 차례 유행이 지나간 뒤 아프리카 곳곳에서 흉물이 됐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윌리엄 맥어스킬은 저서 ‘냉정한 이타주의자’(부키)에서 선한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게 하려면 따뜻한 마음뿐 아니라 차가운 이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플레이 펌프에 모두가 열광할 때 누군가가 냉정하게 그것의 효과와 비용을 따져봤다면 이런 참담한 실패로 끝나지 않았으리라는 지적이다.

여기 플레이 펌프와 똑같이 아프리카의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안한 또 다른 발명품이 있다. ‘라이프 스트로(Life Straw)’, 즉 생명 빨대다. 약 25cm 크기의 이 휴대용 정수기는 필터를 1년 동안 한 번도 교체하지 않아도 빨아올리는 물(약 1000ℓ)의 오염물질, 박테리아, 바이러스를 99.99% 이상 제거한다.

이 빨대만 있으면 적어도 1년간 아프리카 아이들이 먹는 물 때문에 수인성 질병에 걸릴 일은 없다. 이 빨대의 가격은 대량생산할 경우 2~3달러 수준이다. 그러니까 플레이 펌프 1대를 만들 돈(1만4000달러)이면 이 빨대 약 5000개를 만들어 아프리카 전역에 뿌릴 수 있었던 것이다.

왠지 이웃과 따뜻한 정을 나누고 싶은 가정의 달 5월. 무심코 자선단체의 모금함에 1000원을 넣을 때도 플레이 펌프를 돌리던 한 아프리카 여성의 이런 절규를 잊지 말자. “새벽 5시에 들에 나가 6시간 동안 일해요. 그러고 나서 여기로 와 이 플레이 펌프를 돌려야 하고요. 돌리다 보면 팔이 빠질 것 같아요.” 




입력 2017-05-08 11:18:43

  • 지식 큐레이터 imtyi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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