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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맘이어도 괜찮아

엄마의 사춘기 ‘마트레센스’

호르몬 변화와 함께 상반된 감정 겪는 시기 …   “스트레스에 솔직하게 대처하라”

엄마의 사춘기 ‘마트레센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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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아이와 놀 때도, 일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자리에 누워서도. 딱히 꼭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뉴스를 훑고 2~3분마다 e메일 수신함을 확인했다. 이것이 일종의 ‘스트레스 반응’임을 깨닫게 된 것은 운전 중 신호가 멈출 때마다 e메일과 문자메시지를 확인한다는 취업맘에 대한 ‘시카고 트리뷴’ 기사를 읽고 나서였다. 

힘들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취업맘은 특히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최근 연구는 이를 수치로 입증한다. 올해 영국 에식스대에서 발표한 연구(Chandola, Booker, Kumari, & Benzeval, 2019)에 따르면,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두 아이를 키우는 여성은 호르몬 레벨과 혈압 등 생물학적 지표 11가지를 바탕으로 측정한 만성 스트레스 지수가 자녀가 없는 취업 여성에 비해 40%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가 1명인 취업맘은 아이 없는 여성에 비해 만성 스트레스 지수가 18% 높았다. 재택근무 등 유연근무제를 도입했더라도, 업무 시간 자체가 줄지 않는 이상 스트레스 수준에는 차이가 없었다.


일  ·  육아 병행 엄마, 스트레스에 취약

육아에 전념하는 전업맘이라고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어린아이를 키우는 전업맘이 걱정, 스트레스, 슬픔, 분노, 우울감 등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는 비율이 취업맘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Gallup, 2012). 

엄마의 스트레스는 왜 높을까. 답은 간단한다. ‘돌봄’이 그만큼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해외 인터넷에서 이런 광고가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우리는 가짜 직업을 만들고 모집 공고를 냈습니다’라는 문구로 시작해 지원자들의 온라인 면접 장면을 보여준다. ‘이 직업은 일주일에 135시간 이상 일해야 하고, 밤낮으로 대기해야 합니다. 점심은 업무파트너가 식사를 마친 뒤에야 먹을 수 있고, 몇 시간 동안 서 있거나 계속 움직여야 합니다. 34kg 정도까지 들 수 있어야 하며, 잠을 거의 못 잘 때도 있습니다. 주말이나 크리스마스에는 일이 더 늘어납니다. 경력도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직무 설명에 지원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그게 합법이냐”고 되묻고 고개를 내젓는다. “수많은 사람이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으며, 그들은 바로 ‘엄마’ ”라는 말을 듣고 이들은 눈물을 글썽인다.


엄마에게 ‘소확행’은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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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더 어렵게 하는 것이 또 있다. 엄마가 된 후에는 학생 때부터, 혹은 직장에 다니면서 15~20년간 익숙하게 사용해온 자신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더는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이를 낳은 첫해, 같은 해 출산한 엄마들의 모임에서 연말에 ‘자유부인’(아이를 남편 등에게 맡기고 외출하는 엄마)으로 만나 맥주 한잔하고 노래방에 가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나왔다. 그해 자유부인들의 연말 모임은 물론 성사되지 못했다(젖먹이를 놓고 어딜 가겠는가!). 그다음 해부터는 아무도 연말 모임을 언급하지 않았다. 



엄마가 되면 음주가무는 물론이요, 영화관이나 공연장에 가기, 남편과 오붓하게 데이트하기, 훌쩍 여행 떠나기 등 평범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소확행’은 정말 큰맘을 먹어야 감행할 수 있는 스페셜 이벤트가 된다. 막상 아이와 떨어져 뭔가를 해도 마음이 결코 편하지 않으니 결국 점점 다른 활동을 할 엄두를 내지 않게 된다. 물론 아이가 커갈수록 상황은 나아지지만, 많은 엄마가 ‘스트레스를 풀고 싶다’는 욕구 자체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특히 엄마가 되고 첫 3년은 스트레스가 가장 많은 시기인데, 그간 사용해온 스트레스 해소법이 무용지물이 돼버리니 아이러니한 시기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일까. 인류학에서는 이 시기를 사춘기(Adolescence)와 비슷하게 ‘마트레센스(Matrescence)’라고 부른다. 호르몬 변화를 포함해 신체적, 감정적 변화를 겪는 시기라는 뜻이다. 이 용어를 널리 알린 알렉산드라 색스(Alexandra Sacks) 박사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감정을 ‘양가성(Ambivalence)’이라고 설명한다. 아이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과 아이와 물리적, 감정적으로 떨어져 있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그는 “마트레센스는 좋거나 힘들거나 한 시기가 아니라 좋고도 힘든 시기(Good and Bad)”라며 “사춘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엄마들이 어떻게 스트레스를 잘 다룰 수 있을까. 미국 보건복지부의 여성건강 관련 정보 사이트는 여성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방법을 리스트로 제시한다(Tip 참조).

그런데 나는 이 리스트를 보자마자 ‘공자님 말씀이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호흡 정도야 할 수 있겠지만, 나머지는 현실의 육아 세계에서 거의 불가능한 활동이다.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9시간 정도 잘 수 있다면 육아가 얼마나 쉽겠는가! 네 살과 한 살 두 아들을 둔 내 친구는 주로 걷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데, 둘째가 태어난 뒤로는 이마저도 마음껏 할 수 없어 그저 ‘딴생각하기’로 마음을 달랜다고 한다. 그런데 세상에 소개되는 많은 스트레스 해소법의 내용은 이 리스트와 비슷하다. 이 점이 유감스러우면서도 ‘잘 먹고 잘 자고 명상하는 것’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정말 중요한 요소인가 싶어 한 번 더 슬퍼진다.


단 2분만이라도 집 밖으로 나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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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텔레그래프’(2019년 1월 30일자, Silverman)는 좀 더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우선 ‘솔직할 것(Be honest)’.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을 엄마 스스로가 인정할 필요가 있다. 아이도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느낀다. 아이에게 “엄마가 지금 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솔직히 말하고,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며, 그것을 잘 다루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준다. 

둘째, ‘멈춰(Stop)’라고 생각할 것. 스트레스를 느끼면 일단 멈출 필요가 있다. 그리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면서 ‘현재’에 집중하도록 한다. 

셋째, ‘밖으로 나갈 것(Go Outside)’. 스트레스 상황과 약간의 물리적 거리를 두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줄어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엄마, 2분만 나갔다 올게”라고 말하고 잠시 집 밖으로 나가 공기를 쐬고 돌아오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참 고약한 놈이다. 마음을 짓누르고, 일상의 활력을 빼앗으며, 불안과 집착을 부추긴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삶의 경이, 이를테면 아이의 웃음과 잡은 손의 따스함, 대화의 즐거움, 봄꽃의 아름다움을 알면서도 놓치게 만든다. 다만 여기서 ‘늦맘’의 숨은 장점이 하나 있는 것 같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엄마가 된 여성이라면 갖고 있는, 그간 쌓아온 꽤 두툼한 삶의 경험이 ‘좋고도 힘든’ 마트레센스를 찬찬히 음미하며 보낼 수 있는 기반이 돼주기 때문이다. 

굳이 ‘텔레그래프’의 조언이 아니더라도, 육아와 업무 스트레스가 내 마음을 잠식하려 할 때마다 나는 ‘멈추고 지금 여기를 봐!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야!’ 하는 마음속 깊은 곳의 속삭임에 귀 기울인다. 가끔은 스트레스에 짓눌려 그마저도 안 될 때도 있지만, 그런 순간에도 슬픔이나 우울감에 마구 휩쓸리기보다 ‘지금, 여기’로 돌아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하던 일을 멈추고 생각해보곤 한다. 늦맘 친구 가운데 한 명은 출퇴근하느라 서울 한강을 오갈 때마다 업무와 육아의 스위치를 번갈아 켠다고 한다. 강을 건너면 일 생각만, 다시 강을 건널 땐 육아 생각만 한다는 것이다. 현재를 즐겁게 누리려는 늦맘의 현법낙주(現法樂住)랄까. 모든 엄마가 자신만의 ‘마트레센스의 강’을 현명하게 건너는 방법을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Tip 미국 보건복지부가 제안하는 여성 스트레스 해소법
[출처 | womenshealth.gov]

[출처 | womenshealth.gov]

● 심호흡
● 스트레칭
● 생각을 글로 적어보기
●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며 자기만의 시간 갖기
● 명상하기
● 충분한 수면 취하기(하루 7~9시간)
● 균형 잡힌 식단으로 잘 먹기
● 움직이기(산책, 운동 등)
● 스트레스를 술 등으로 풀지 않기
● 친구나 가족과 이야기하기
● 전문적 도움받기
● 일과 삶을 잘 조절하기
● 다른 사람을 돕기






주간동아 2019.05.03 1187호 (p62~64)

  • 전지원 토론토대 글로벌사회정책연구센터 연구원 latermotherho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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