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7

2015.12.16

스마트폰 개통하면 현금 준다고? 페이백 또 ‘먹튀’

B통신 피해자들 “빙산의 일각일 뿐, 더 큰 페이백 사기 터진다”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5-12-15 14: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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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폰 개통하면 현금 준다고? 페이백 또 ‘먹튀’
    지난해 10월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시행 이후 정부는 이동통신사들의 휴대전화 보조금 출혈경쟁을 막고자 공시지원금 이상의 지원금을 지급하는 이동통신사와 대리점을 처벌하고 있다. 그러나 통신비는 줄지 않고 보조금만 줄어들어 기기 값이 오르자 일부 대리점에서는 소비자 유인책으로 ‘페이백’(휴대전화 구매 시 구매비 일부를 현금으로 돌려주는 방식) 형태의 불법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페이백을 약속한 뒤 폐업처리하는 등 ‘먹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최근 인천의 한 휴대전화 판매점에서 수백 명이 페이백 사기를 당했다. 피해자 대부분은 SK텔레콤 가입자다. 12월 8일 인천 부평경찰서에 따르면 인천 B통신 대표 A씨로부터 페이백 사기를 당했다는 내용의 진정서 200여 건이 경찰에 접수됐다. 피해자들은 A씨가 온라인 커뮤니티와 매장에서 “100만 원짜리 최신 휴대전화를 20만 원이 안 되는 가격에 개통하면 이후 최대 90만~100만 원 가까이 페이백을 해주겠다며 고객을 모집했으나 개통 후 약속 날짜까지 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매장을 철수해 현금과 기기 값을 고스란히 물게 됐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중 많게는 가족과 친지의 휴대전화까지 30여 대를 개통한 사람도 있고, 경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피해자들이 경찰서를 방문한 다음 날인 12월 4일 경찰서를 찾아 조사를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혐의(페이백을 해준다고 하고 돈을 주지 않은 것)를 일부 인정했고, 최대한 변제하고 싶으나 그만큼의 변제능력은 없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이어 “피해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어 피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여론이 집중된 사건인 만큼 수사력을 집중해 수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SK 특판이라 싸게 나왔다더니…

    B통신에서 휴대전화를 개통하고 페이백을 받지 못한 최모 씨는 “B통신과 2년 가까이 거래했는데 그 전까지는 페이백을 제때 잘해줘서 부모와 지인들의 휴대전화도 다 저렴하게 바꿨다. 이번에는 ‘SK텔레콤으로 번호이동을 해야 20만 원에 최신 기계를 줄 수 있다’ ‘SK하이닉스 임직원 특판(특별판매)이라 일반인이 살 수 없는 가격’이라는 말로 소비자를 현혹했다. 모바일 커뮤니티 네이버 밴드와 카카오톡 채팅방 등으로 1번 이상 거래한 사람이 아니면 스마트폰을 살 수 없도록 치밀하게 장사해왔는데, 가족이나 회사 상사에게 잘 보이고자 상사 가족의 스마트폰까지 바꿔준 사람은 B통신 대표 A씨에게 현장에서 준 20여만 원에 기기 값 100여만 원은 물론, 일부는 번호이동 위약금까지 물어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피해 현황을 파악 중인데 평균적으로 인당 3대씩은 개통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B통신 관계자들은 계좌이체가 아닌 현장에서 현금으로만 받았다. 그래서 피해자들의 통장에는 A씨에 대한 이체 기록이 없고, 죄다 매장 인근 ATM(현금 자동 입출금기)에서 20여만 원씩 뽑은 기록만 있다. A씨가 페이백을 해주겠다고 한 문자메시지를 다수 갖고 있다”고 말했다.
    페이백 사기의 특징은 최소 1~2년은 정상적으로 고객에게 페이백을 해주면서 신뢰를 쌓는다는 점이다. 올해 초 페이백 사기를 당한 이모 씨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SK텔레콤 C대리점에서 일하던 D씨로부터 평소 저렴한 가격에 휴대전화를 구매해 그를 신뢰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D씨는 이씨에게 “실적이 필요해서 그런데 기기를 개통해주면 위약금과 기기 값까지 전부 입금해주겠다”고 했고, 이씨는 평소 믿고 거래해왔기에 휴대전화 개통을 수락했다. 그러나 약속한 날짜가 지나도 대금이 입금되지 않았고, 얼마 후 이씨는 D씨의 잠적 소식과 함께 기기 값 수백만 원을 떠안았다. 이씨는 “B통신 피해자들은 휴대전화라도 갖고 있지만, 우리는 기기조차 만져보지 못한 채 300만~400만 원 빚만 떠안게 됐다. 대리점에 가서 항의해봤지만 해당 직원을 해고했다고만 하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 형사 고소한 상태”라고 말했다. 또 다른 페이백 피해자는 “해당 사례는 전형적인 대출사기 수법이다. 기기를 개통하면 기기 값에 위약금까지 준다고 해놓고 기기를 받아 포장도 뜯지 않은 채 팔아 돈을 챙기고 잠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 개통하면 현금 준다고? 페이백 또 ‘먹튀’

    B통신 페이백 사기 피해자들은 B통신 대표 A씨가 페이백을 해줄 때 ‘쿠팡 환불’ ‘옥션 환불’ 등으로 눈속임을 하며 현금을 지급했다고 주장한다(왼쪽). 피해자들이 A씨와 나눈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 메시지.


    통신사는 도의적 책임 없나

    공시지원금 이상의 지원금은 불법이지만 국내 이동통신시장에서는 단통법을 비웃듯 각종 불법행위가 난무한다. 앞서 문제의 B통신은 ‘‘단말기 통신 유통법’과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며 불법적인 페이백 또는 불법지원금은 일절 지급하지 않는다’ ‘SK 특수마케팅정책, SK하이닉스 임직원 특판’ 등의 문구로 소비자를 현혹했다. 또한 ‘정책 유출 시 모든 정책 폐기, 개통한 것도 개통 취소’ 등의 문구로 밴드의 존재를 외부에 알리지 못하게 했다.
    방송통신위원회 단말기유통조사담당관 관계자는 “B통신 건에 대해 불법사항이 재발하지 않도록 유통망 관리를 철저히 하라고 이동통신 3사에 행정지도를 했다. 유통점이 잘못했을 때는 과태료 제재를 받고, 이동통신사도 영향을 미친 경우 통신사에도 과징금을 동시에 부과한다. 이번 페이백 사기는 한 판매점에서 발생한 행위로 통신사 연대책임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사기가 다수 판매점에서 발생한다면 주의보를 내린다”고 말했다.
    단통법 시행 전 페이백 피해자의 상당수는 이동통신사 대리점이 아닌 대리점 산하 판매점에서 페이백 계약을 했다 피해를 입은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단통법 8조에서는 이동통신사가 사전에 승낙하지 않은 판매점은 영업할 수 없게 하고 있어, 이동통신사들은 판매점 사전승낙제를 운영 중이다. 또한 단통법 시행 이후에는 이동통신사들이 휴대전화를 개통하는 과정에서 불법지원금을 건네는 대리점이나 판매점을 신고할 경우 최대 1000만 원 포상금이 지급된다. 포상금은 불법지원금을 건넨 유통망과 해당 이동통신사가 나눠 낸다. 이동통신사의 유통망 관리 책임을 더욱 명확히 하겠다는 것이다. SK텔레콤 홍보팀 관계자는 “단통법 시행 이후 판매점 사전승낙제를 통과한 판매점에 코드를 발급해주는데 해당 판매점의 코드가 확인돼 회수할 것이다. SK 산하 기업 특판이라고 사기를 치고 그룹을 사칭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명예훼손과 물질적 피해 등을 조사해 구상권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페이백 피해자 보상 문제에 대해서는 “대리점과 관련된 내용이면 이동통신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게 맞지만, 해당 내용은 SK텔레콤과 계약 관계가 없는 판매점과의 거래라 SK텔레콤과는 관련 없다”고 선을 그었다.

    거성모바일 피해자, 민사소송 중

    스마트폰 개통하면 현금 준다고? 페이백 또 ‘먹튀’

    B통신은 비공개 네이버 밴드와 카카오톡 채팅을 활용해 은밀하게 영업을 해왔다(위). C대리점 직원이던 D씨는 평소 페이백을 통해 신뢰를 쌓은 고객들에게 실적을 이유로 휴대전화를 개통하게 하고 기기와 대금 값을 주지 않은 채 잠적했다. 한 고객이 D씨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이번 사건은 대규모 페이백 피해라는 점에서 2012년 업계를 뒤흔든 거성모바일 페이백 사기 사건을 연상케 한다. 거성모바일 사건은 2012년 8월 13일부터 4개월간 거성모바일 대표 E씨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휴대전화를 개통하면 페이백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속인 뒤 경찰 추산 4400여 명의 피해자로부터 23억9000만 원가량의 휴대전화 할부원금 채무를 부담하게 한 사건이다. 당시 E씨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피해액이 워낙 크고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심에서 징역 2년이 선고됐다. E씨는 양형부당을 이유로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했으나 기각돼 현재 복역 중이다. “23억 원 사기인데 고작 2년”이라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징역 2년은 사기사건 치고는 꽤나 중한 처벌이다.
    다만 거성모바일 사건은 단통법 시행 전 발생한 것이라, 단통법 시행 이후 발생한 페이백 피해에 대해서는 구제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거성모바일 피해자들은 거성모바일과 대리점,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들은 거성모바일, 거성모바일과 연계된 대리점 8곳,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과 KT가 함께 13억 원을 배상하라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9월 소장을 접수했다. 소송을 맡은 법무법인 민후의 김성일 변호사는 “피해자마다 금액이 달라 인당 최소 금액인 30만 원씩, 모두 13억 원의 손해배상을 민법 750조 형사 사기로 인한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규정에 따라 청구했다. 각 주체의 공동책임을 물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소송의 핵심은 이동통신사의 과도한 경쟁으로 발생한 사건이기에 이 같은 상황을 조장한 이동통신사들에게도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동통신 가입자들 덕에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는 이동통신사들이 그 과실만 취하는데, 그 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많은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책임이 없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B통신 페이백 피해자 박모 씨는 “‘그러게 왜 페이백을 탔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통법 이후 제값 주고 사기엔 휴대전화가 너무 비싸졌고, 이런 상황에서 남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다면 많이들 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통신사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피해자 대부분이 SK텔레콤 휴대전화를 개통했습니다. 저희 덕에 가입자 수백 명이 생겨 이득을 본 상황인 만큼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또한 저희로 끝날 문제도 아닙니다. 5000여 명 이상이 가입된 페이백 판매점이 있는데, 그곳도 위태롭습니다. 휴대전화를 3대 이상 개통해야 VIP 카드를 발급해주고, VIP 카드가 없으면 정책도 말해주지 않으며, 정책을 누설하면 응징하겠다면서 고객 신상도 캐가는 곳입니다. 이번처럼 페이백 사기를 친 사람들이 제대로 처벌되지 않으면 앞으로 어떤 판매자가 소비자에게 페이백을 약속대로 해주겠습니까. 제2, 제3의 거성모바일 사태가 벌어지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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