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투헬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뉴시스]
알다시피 영국은 현대 축구가 시작된 축구 종가다. 그리고 영국 축구리그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스로 나뉘어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설립되기도 전에 이미 자기들만의 축구협회(FA)를 출범했기에 예외적으로 한 국가에서 4개 FA를 인정받았다. 오늘날에도 월드컵이나 유로 같은 국제대회에 영국이 아닌 4개 FA로 출전하는 이유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는 단일팀으로 출전했지만 말이다. 일반적으로 4개 FA 중 가장 크고 강한 잉글랜드 축구가 곧 영국 축구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집 나간 잉글랜드 축구 언제 돌아오냐”
그간 잉글랜드는 축구 종가의 자존심을 내세웠지만 성적이 뒷받침되지 못했다. 1966년 자국 월드컵 우승이 유일무이한 메이저대회 타이틀이다. 그마저도 당시 서독과 결승 연장전에서 나온 오심으로 얼룩진 우승이었다. 최근 월드컵이나 유로 같은 메이저대회마다 울려 퍼지는 잉글랜드 응원가 ‘Three lions’(잉글랜드 대표팀 별칭인 삼사자 군단을 상징)의 가사 ‘football is coming home’이 “집 나간 축구는 대체 언제 돌아오냐”는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다. 1966년 월드컵 우승 이후 1990년 월드컵 4강 진출이 잉글랜드가 자존심을 세울 만한 유일한 업적이었다.
자국에서 열린 1996년 유로 준결승에 오른 잉글랜드 대표팀은 모처럼 열기를 띠었다. 그리고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팬들의 기대감이 최고조에 다다랐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잉글랜드 대표팀은 16강에서 아르헨티나에 패하며 조기 탈락했다. 무산된 기대감은 이때 퇴장당한 슈퍼스타 데이비드 베컴을 ‘역적’으로 몰아가는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도 했다. 잉글랜드는 유로 2000에서 케빈 키건 감독이 실패하자 처음으로 외국인 감독 선임이라는 개혁을 단행한다. 스웨덴 출신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을 데려와 대표팀 잔혹사를 끊으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도 월드컵, 유로 8강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어서 이탈리아 출신 파비오 카펠로에게 대표팀 지휘봉을 맡겼지만 그도 실망감만 안기고 떠났다. 팬들은 긴 시간 이어진 잉글랜드 대표팀 부진에 지쳐갔다. 그사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세계 최고 리그로 거듭난 프리미어리그와 현격한 대조를 이뤘다. 최고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왜 대표팀에선 최강 콤비를 이루지 못하는지 물음표가 따랐다. 게다가 노장 로이 호지슨 감독은 2014년 월드컵에서 조별 리그 탈락이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남겼다.
공교롭게도 이런 부진을 끊은 이가 갑작스레 잉글랜드 감독이 된 사우스게이트였다. 당초 호지슨 후임으로 부임한 샘 앨러다이스가 부패 스캔들로 불명예 퇴진하자 잉글랜드 21세 이하 대표팀 감독인 사우스게이트가 임시로 대표팀을 맡았고 정식 감독으로 승격한 것이다. 그런데 사우스게이트호(號) 잉글랜드 대표팀은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 4강 진출이라는 뜻밖의 성적을 올렸다. 이어서 2020년 유로에선 대회 첫 결승이자 1966년 이후 첫 메이저대회 결승 진출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 승부차기 결과 이탈리아에 안타깝게 패하긴 했지만 우승에 도전하는 탄탄한 팀으로 거듭났다. 잉글랜드 대표팀의 목표는 우승에 맞춰졌고 이제 자국뿐 아니라, 세계 기대를 한 몸에 받게 됐다.
2% 부족했던 구원투수 사우스게이트
7월 14일(현지 시간) 독일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 열린 유로 2024 결승전에서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이 스페인에 1-2로 패배해 준우승에 그쳤다. [뉴시스]
새로이 잉글랜드 대표팀 수장이 된 투헬은 과감한 전술가다. 독일 FSV 마인츠 05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파리생제르맹(PSG), 첼시, 바이에른 뮌헨 등을 거치며 전술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2021년 첼시에 부임해 곧바로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한 이력도 있다. 원래 변화무쌍한 스타일의 감독이었지만 PSG 시절 막바지부터 팀을 진득하게 끌고 가는 전략을 쓰고 있다. 물론 챔피언스리그 우승 이후 첼시와 바이에른 뮌헨에선 우리가 알던 전술가 투헬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좋은 대표팀 감독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된 지금, 투헬보다 나은 선택지는 없어 보인다. 투헬 감독과 잉글랜드 대표팀이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