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5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충북 진천 선수촌에서 훈련 중인 이유빈 선수. [동아DB]
이유빈은 2021~2022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여자 1500m 세계랭킹 1위다. 월드컵 1차 대회와 4차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착실히 포인트를 쌓은 덕이다. 전 세계의 강자들이 즐비한 월드컵시리즈에서 따낸 금메달은 그 자체만으로 기량을 인정받기에 충분하다. 이제는 베이징올림픽을 통해 본인의 기량을 제대로 뽐내겠다는 각오다.
지금은 세계 최정상급 선수로 올라섰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이유빈이 처음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시기는 2018평창동계올림픽 때다. 당시 여자 3000m 계주 준결선 도중 넘어지면서 최민정(성남시청)과 극적으로 교대했던 장면을 연출한 선수로 더 유명했던 게 사실이다. 다행히 한국은 이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행복한 마무리를 했고, 이유빈도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었다.
주니어 무대에선 이미 세계 수준의 기량을 지녔다고 평가받았다. 2017년 인스부르크 주니어세계선수권대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하며 화려한 시니어 데뷔를 예고했다. 올림픽 금메달은 큰 동기부여가 될 것으로 보였다.
1월 5일 진천선수촌에서 한국 女쇼트트랙 대표팀이 몸을 풀고 있다. [동아DB]
즉 2019~2020시즌 이유빈의 국제대회 출전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월드컵 5차~6차 대회 출전 기회도 어렵게 찾아왔다. 선발전 1위로 대표팀에 뽑힌 김아랑(고양시청)이 부상으로 불참하면서 잡은 기회였다.
2020년 2월 18일 2019-2020 국제빙상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6차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이유빈이 귀국해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동아DB]
이유빈이 언급한 ‘평창올림픽’은 당시 여자 3000m 계주 도중 넘어지고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민정에게 배턴터치를 해준, 바로 그 장면을 언급한 것이다. 이 같은 열정과 짧은 시간에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을 모두 이겨낸 결과였다. 이는 이유빈의 고속성장을 위한 촉매제였다. 꾸준한 훈련을 통해 거친 몸싸움을 이겨내는 힘을 키웠고, 변수에 대처하는 능력까지 장착하면서 전체적인 기량이 크게 올라갔다.
한창 페이스가 올라온 터라 2020~2021시즌에 대한 기대가 상당했다. 그러나 전 세계를 덮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대표선발전 자체가 열리지 않았다. 올림픽 시즌인 2021~2022시즌 대표선발전에선 종합점수 47점으로 4위를 차지했다.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한 올림픽 시즌 선발전의 관문을 뚫은 것은 그 자체만으로 실력을 인정받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2%의 아쉬움은 남아있었다. 개인전 출전권은 상위 3명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별다른 변수 없이 기존의 대표팀 멤버가 그대로 유지됐다면 여자대표팀의 올림픽 개인전 출전권은 심석희(서울시청)와 최민정(성남시청), 김지유(경기일반)의 몫이었다. 이유빈은 5위 김아랑(고양시청)과 함께 계주 멤버로 합류하는 그림이었다.
이번에도 기회는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심석희와 김지유가 각각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징계와 부상으로 베이징행 비행기에 오르지 못하면서 이유빈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더불어 심석희의 불참으로 개인전에 나선 월드컵 1차 대회와 4차 대회 여자 1500m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따냈다. 1차 대회의 경우 결선에서 3위로 달리다 앞서 질주하던 최민정과 김지유가 엉켜 넘어지는 바람에 얻은 결과였다면, 4차 대회의 금메달은 온전히 본인의 실력으로 만들어낸 성과였다. 레이스 막판 절묘하게 인코스를 파고들며 추월한 장면은 그야말로 백미였다. 4차 대회 금메달로 이유빈은 올 시즌 이 종목 월드컵랭킹 28000점을 획득해 네덜란드의 수자너 스휠팅(26400점)을 제치고 랭킹 1위로 올라섰다. 스휠팅은 올 시즌 월드컵 2차 대회에서 2000m 혼성계주를 제외한 전 종목을 석권한 세계 최정상급 선수다. AP통신이 이유빈을 이번 올림픽 여자 1500m의 깜짝 금메달 후보로 지목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기자는 베이징 현지에서 이번 대회를 취재하고 있다. 개막에 앞서 이유빈과 두 차례 만났다. 늘 웃는 얼굴로 자신감을 보여 현지의 폐쇄된 환경에 지친 취재진들에게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그는 “평창올림픽 때는 계주 멤버이기도 하고, 레이스도 한두 번뿐이라 어떻게 몸을 풀고 유지해야 하는지를 전혀 몰랐다”며 “그 때는 감독, 코치님 말씀만 듣고 운동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몸을 만들고 컨디션을 올리는 것까지 스스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본인의 루틴을 만들고, 실력까지 쑥쑥 키운 것이다.
이유빈의 주 종목인 여자 1500m는 베이징올림픽 쇼트트랙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종목이다. 16일(한국시간) 오후 8시 30분부터 레이스가 시작된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기회를 확실하게 잡은 그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