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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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딱이는 외국어 배우려면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라”

방송인 손미나

  • 정리=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13-08-05 10: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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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운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전 KBS 아나운서 손미나. 여행 작가, 소설가에 이어 최근에는 인터넷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가 이처럼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배경에는 언어라는 무기가 있기 때문. 그가 ‘열정樂서’ 무대에서 공개한 언어 체득 비법을 정리했다. 삼성그룹이 주최하는 ‘열정樂서’는 저명인사들이 멘토로 나와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콘서트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손미나입니다. 정말 많은 분이 계시네요. 조명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1000명이 넘는 분이 오셨다고 들었어요. 배 안 고프세요? 배고파요? 그런데도 앉아 있는 이유, 열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오늘 제가 외국어 이야기를 하려고 온 건 아시죠? 외국어 잘하고 싶으신 분들? 거의 다 원하시네요. 어떤 분은 외국어를 정말 잘하고 싶다고 하실 테고, 어떤 분은 한국어만 잘해도 된다고 하실 거예요. 저는 두 의견 모두 존중합니다. 둘 다 맞아요.

    환경 탓 하지 말기

    우리는 외국어 공부에 대해 스트레스와 부담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아이에게 모국어보다 외국어를 먼저 가르치고, 영어 발음을 좋게 하겠다는 이유로 혀를 수술하기도 합니다. 조기유학을 위해 가족이 생이별하기도 하죠. 저는 외국어 공부가 이처럼 엉뚱한 결과를 낳지 않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외국어 공부를 잘하는 방법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외국어는 못해도 됩니다. 정말입니다. 한국어를 잘하는 게 훨씬 중요하죠. 외국어를 잘하고 모국어를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되고요. 외국어는 덤입니다. 그런데 그 덤이 알고 보면 정말 매력적이고 커다란 우주를 선사해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영어를 부담스러워하지만 외국어는 부담을 느낄 대상이 아니라 즐거운 장난감입니다. 즐겨야 잘 배울 수 있고, 그래야 진정한 효과를 볼 수 있죠. 외국어는 골방에서 파헤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나와 또 다른 세상을 만나야 배울 수 있습니다.

    강의 제목을 ‘열정의 시작은 작은 계기에서부터’라고 지었는데요. 저만 해도 작은 계기가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여기서 멀지 않은 충북 청주에서 다녔습니다. 그때만 해도 청주가 정말 시골이어서 논밭에서 개구리 잡고 진달래 따먹으며 살았죠. 그러다 보니 영어 조기교육도 없었고 영어에 대한 필요성도 알지 못했습니다.

    “팔딱이는 외국어 배우려면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라”

    ● 1972 서울생<br>● 1997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졸업<br>● 1997~2007 KBS TV ‘가족오락관’ ‘세계는 지금’ ‘도전 골든벨’ 등 진행<br>● 2005 스페인 바르셀로나대 언론학 석사<br>● 저서 ‘스페인 너는 자유다’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 ‘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 등

    그런데 어느 날 전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캠프에 가서 외국인 친구를 만났어요. 정말 이상하게도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웬디라는 금발 친구와 단짝이 돼 아침저녁으로 붙어 다녔죠. 잘 몰랐지만 생긴 것도 다르고 생활습관도 달랐어요. 숫자 세는 것부터 과일 깎는 것까지. 세상 보는 눈이 완전히 달랐죠. 그 일로 ‘이 친구와 말이 통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아쉬움이 생겼고 ‘지구상의 많은 사람과 세상을 보는 시각을 나누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습니다.

    여러분 세대에서는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저는 중학교에 가서 알파벳을 배웠어요. 그저 한국에서 보통의 교육 과정을 밟았고, 외국어를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에 “스페인어를 배우면 남과 비슷한 노력을 기울이고도 훨씬 돋보이는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했을 뿐이죠. 이후 해외에 나가곤 했지만, 예전에는 세계여행을 꿈조차 꾸지 못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영어뿐 아니라 스페인어, 프랑스어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계기가 크든 작든 있을 것 같은데요. 다시 한 번 곰곰 생각해보세요.

    혹시 스페인어를 전공한 분이 있나요? 지금도 스페인어 전공자는 드문데요. 제가 공부할 때는 원어민 교수님을 만나본 적도 없고, 제대로 된 책도 보지 못했어요. 스페인어를 똑 부러지게 잘하는 선배도 없었고요. 스페인어 공부를 할 만한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요. 그때 저는 스페인어를 가르쳐준다면 어디든 쫓아갔습니다. 외국어 학원에 가서 새벽부터 공부했고, 스페인어 수업이 개설된 다른 대학에 가서 청강도 했죠. 폭설, 폭우를 뚫고 남들보다 몇 배 더 공부했습니다. 길가에 외국인이 보이면 괜히 툭 한 번 치고 넘어지거나 물건을 떨어뜨린 뒤 자연스럽게 대화하면서 영어와 스페인어를 배웠죠.

    강박관념부터 버릴 것

    이런 물불 안 가리는 열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열정은 조건이나 환경을 뛰어넘는 무엇이라고 봐요. 현재 어떤 환경 때문에 공부를 못 한다는 분들이 있다면 ‘자신이 그런 환경을 뚫을 만큼 열정적으로 공부했는가’ 돌이켜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가장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이 ‘환경을 탓하지 마라’입니다.

    지금부터는 ‘열정을 꽃피우려면 변해야 할 것이 많다’는 말씀을 드릴게요. 우리나라 사람은 외국어를 공부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하지만 외국에서 실제로 외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인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외국 친구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한국 친구들은 자신이 실수할까 봐 두려워 말을 꺼내지 못한 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죠.

    여러분, 오늘부터 강박관념을 버리세요. 외국인이 한국말을 서투르게 해도 우리는 박수를 쳐주잖아요. 그런데 왜 우리는 외국어를 완벽하게 하려고 하죠?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뻔뻔하다는 겁니다. 실수를 두려워하면 실력이 늘 수 없어요.

    다음으로 ‘언어는 생활 속에 녹아 있어야 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여러분이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외국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유가 없으면 외국어 실력이 절대 늘 수 없거든요. 저는 길거리에서 쓸 수 있는 외국어를 배우는 게 목표였습니다. 제가 그랬듯이 생선처럼 팔딱팔딱 살아 있는 언어를 배워 세상을 탐구하고 싶다면 딱딱한 책은 버리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제가 돈을 열심히 벌어 스페인 어학연수를 갔을 때 일이에요. 막상 스페인에 가니 ‘내가 왜 스페인까지 와서 학원에 앉아 있지?’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어딘가에 갇혀서 외국어를 공부하기가 싫더군요. 그래서 개인 선생님을 구했습니다. 동네 카페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 집중적으로 수업하니 더 효율적이었어요. 페드로라는 마드리드대 강사였는데, 한 달 내내 괄호 안에 욕 넣기 등을 하면서 욕만 가르치더군요(웃음). 그래서 “왜 욕만 가르치느냐”고 따지니 “이유를 묻지 마. 시키는 대로 하면 나중에 고마워할 거야”라고 했어요.

    알고 보니 스페인어는 웬만한 욕은 욕도 아니었습니다. 스페인어에서 욕은 애교죠. 모욕적으로 말하고 싶으면 신을 언급하는데 ‘신을 어떻게 할 거다’라고 말하지 않는 한 그 욕은 그다지 거슬리는 말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동양 아이가 스페인에 와서 욕을 하면 얼마나 귀엽겠어요. 그 덕에 인기 폭발이었습니다. 욕만 하면 사람들이 밥도 공짜로 사줬죠. 그렇게 1년을 사니까 스페인 사람들이 저를 스페인 교포라고 여길 정도로 실력이 좋아졌습니다.

    “팔딱이는 외국어 배우려면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라”
    지금도 그때 스페인어를 배우던 상황과 단어가 기억납니다. 하지만 어떤 선생님이 어떤 단어를 가르쳐줬다는 건 기억나지 않아요. 무조건 살아 있는 환경에서 언어를 배워야 합니다. 놈 촘스키가 “완벽하게 언어를 배우는 방법은 모국어를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했는데요. 최대한 그 언어 환경으로 생활을 끌고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욕부터 배우라는 건 아니지만, 딱딱하고 어려운 책은 버리세요. 하루 사는 데 필요한 단어가 1000개 미만이라고 합니다. 커플은 200개 미만이고요. 스페인어 단어를 200개 이상 알면 스페인 남자친구를 사귈 수 있고 500개 이상 알면 스페인 사람들과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웃음).

    환경 안으로 들어가기

    프랑스어를 배울 때도 비슷했어요. 4년 전 프랑스로 책을 쓰러 갔다가 지난해에 귀국했는데요, 그때도 고민하다 소르본대 어학원에 등록했습니다. 그런데 아시아인이 대부분인 반에서 동물 이름 맞히기 같은 걸 하려니 시간이 너무 아까웠어요. 이건 아니다 싶어 잠자는 시간 말고는 무조건 프랑스어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무슨 뜻인지 몰라도 원숭이처럼 무조건 따라했어요. 반복되는 이야기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자주 들리면 프랑스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친구가 설명해주면 그 표현만 계속 썼죠. 그곳에서 처음 배운 말이 ‘길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걸 뜻하는 ‘고양이가 하나도 없어’라는 표현인데, 걸핏하면 그 표현을 써먹었습니다. “지금은 사람이 많은데 그 표현을 왜 쓰느냐”고 물을 정도로요.

    그런 식으로 공부하다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번 주에 가정법을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친구들을 만나서 가정법만 쓰고, 명령법이 목표면 명령법으로만 말했죠. 제 말을 듣는 친구들은 괴로웠겠지만 저는 재미있었어요.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몇 달이 지나니 뉴스를 알아듣겠더군요. 물론 단어 공부는 따로 했죠.

    언어는 계단식으로 발전합니다. 지금 멈춰 있는 과정을 견디지 못하면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견디면 실력이 많이 향상돼요. 어학연수를 갈 수 없다면 그와 비슷한 환경을 만드세요. 외국어를 배우려면 거기에 미쳐서 나만의 학습법을 만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외국어 학습에 지름길은 없습니다. 저만 해도 스페인어를 배우는 과정이 고통스러웠어요. 프랑스어를 쉽게 배운 것처럼 말했지만, 프랑스는 동사를 잘 알아야 배울 수 있어요. 과거형만 20개가 되니까요. 정말 화나요. 너희가 그러니까 성격이 이 모양이지란 생각이 절로 나죠(웃음). 그래도 매일 조금씩 무식하게 공부하면 실력이 늡니다. 아날로그 방식대로 사전을 보고 손으로 쓰면서 그 나라의 역사, 소설, 춤 같은 문화를 함께 배워보세요. 언어는 그 나라의 문화를 반영하는 창이거든요. 그러면 훨씬 빨리 재미있게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꿈을 설정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할지 목표를 정해보세요. 목표가 있으면 힘들어도 다시 뛸 힘이 생기거든요. 제 목표는 3~4개 언어를 더 배워 언어를 많이 하는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 가는 겁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아이들에게 외국어가 얼마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주는 창인지 알려주고 싶어요.

    모두의 마음속엔 보물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열정은 그런 보물섬을 찾아가는 과정이고요. 여러분, 오늘 제 이야기를 듣고 외국어에 대한 열정을 깨우고, 앞으로 그 무기를 통해 멋진 인생을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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