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4월 8일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인혁당 및 민청학련 사건 관련 상고심 공판.
국민보도연맹은 정부가 좌익 관련자를 전향시키려고 만든 조직이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울산경찰서 사찰계 경찰관과 육군 방첩부대(CIC) 대원 등은 1950년 7~8월 울산군 국민보도연맹원을 연행해 유치장과 차고 등에 구금했다가, 8월 5~26일 10차례에 걸쳐 울산군 청량면 반정고개로 데려가 총살했다. 이후 정부는 1975년 ‘대공인적위해요소명부’라는 처형자 명부를 작성해 3급 비밀로 지정하기까지 했다.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유족들이 진상규명을 요청하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는 처형자 명부를 열람하고 2007년 11월 울산 국민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407명을 확정했다. 이에 희생자 유족은 2008년 6월 “국군과 경찰은 단지 국민보도연맹원이라는 이유로 희생자들을 예비검속한 후 정당한 이유 없이 구금, 살해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정신적 고통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정부는 “1960년 8월에 희생자 유해 발굴이 이뤄졌으니 위자료 청구권은 유해 발굴 무렵부터 3년이 지난 1963년 8월로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반박하며 배상 책임을 부인했다.
이에 대해 1심은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희생자에게 2000만 원 등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으나, 2심은 정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에 대법원은 “진상을 은폐한 국가가 원고들이 집단학살의 전모를 어림잡아 소를 제기하지 못한 것을 탓하며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다”며 희생자 유족 손을 들어줬다. 배상액은 희생자 본인 8000만 원, 배우자 4000만 원, 부모와 자녀 800만 원, 형제와 자매 400만 원을 기본으로 가감한다.
억울한 옥살이 국가가 명예 회복 도와야
이와 비슷한 취지로 대법원은 5·16 군사정변 후 군사정권하에서 북한을 돕는 단체를 결성했다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옥살이한 희생자의 유가족에 대해 국가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확정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망인을 불법으로 체포해 장기간 수감하고도 명예를 회복하도록 노력하지 않은 채 45년을 방치하는 불법을 저질렀다”며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정부 주장은 권리 남용”이라고 밝혔다.
1960년 6월 김모 씨는 6·25 전쟁 중 발생한 경남 밀양지역 양민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피학살자 조사대책위원회’를 결성해 활동했다. 다음 해 5·16 군사정변이 발생하고 이틀 뒤인 5월 18일 김씨는 영장도 없이 체포됐다. 김씨는 혁명검찰부에 기소됐고, 피학살자 조사대책위원회가 북한 이익을 돕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직을 결성했다는 등의 이유로 혁명재판소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해 형이 10년으로 줄었으며, 1965년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2007년 김씨 조카가 이 사건을 조사해달라고 진실화해위원회에 요청했고, 위원회는 “김씨의 불법성을 인정할 증거가 없는데도 혁명재판소가 특별법을 3년6개월이나 소급했다”며 “정부가 재심절차를 취하고 명예 회복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에 유가족은 2010년 7월 재심을 청구해 부산고법에서 이 사건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아냈고, 이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문민정부 이후에는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데 걸림돌이 없었기 때문에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정부 주장에 대해 “재심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2010년 7월까지 유가족이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김씨와 그 유가족이 평생을 사회적 냉대 속에 신분상으로나 경제적으로 각종 불이익을 당한 점이 인정된다”며 국가가 유족에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는 판결을 확정한 것이다. 배상액은 유가족 17명에게 적게는 140만 원부터 많게는 3억1400만 원까지로 정했다.
정신적 손해와 재산상 손해 별개
한편 유신 시절 대표적인 공안조작 및 사법살인 사건으로 유명한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이하 인혁당 사건)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해 이미 정신적 손해배상을 받은 피해자에게 국가가 재산상 손해까지 추가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도 있었다. 8월 30일 서울중앙지법은 인혁당 사건 피해자 이현세(63) 씨가 “감옥에 갇혀 있던 5년 동안 얻지 못한 수입을 배상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국가는 이씨에게 5억6000여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불법행위를 이유로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는 적극적 재산상 손해, 소극적 재산상 손해, 정신상 손해 등을 별개로 본다”며 “이미 나온 판결과 겹친다는 피고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씨는 국가의 불법행위가 없었다면 1981년 교사로 임용돼 교직에 종사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면서 “국가는 이씨에게 임용 지연으로 인한 재산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5억 원이 넘는 배상액은 중등교사 정년이 만 62세이기 때문에 이씨가 1981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30년 넘게 근무할 수 있었음을 감안해 추산한 것이다. 이씨는 1975년 인혁당 사건으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만기 출소했으며, 2009년 국가를 상대로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해 1심에서 승소, 5억5000여만 원을 배상받은 바 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정치권력의 불법적 박해로 목숨을 잃거나 억울한 옥살이를 한 국민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은 만시지탄의 감은 있으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현대사의 어두운 그늘은 이렇게 깊고도 질긴 상흔을 남기고 후손에게까지 부담을 준다. 국가를 위해 국민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국민을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는 평범한 진리 앞에 오늘의 위정자들도 옷깃을 가다듬고 국민이 부여한 소명에 대해 숙고할 일이다.
국가가 앞장서 폭력을 자행하는 야만의 역사는 단연코 종식돼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민주화한 선진 조국의 참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벌어진 ‘민간인 불법사찰’은 어두운 과거의 부활이란 오명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대체 우리는 그간의 역사에서 무엇을 배운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