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23일 대원외국어고(이하 대원외고) 국제반 교실. 원서 교재를 읽는 학생 뒤편에서 학생들끼리 즉석토론을 벌인다. 보통 야단맞으러 들어가는 교무실도 엄격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다. 교무실은 학생들로 가득하고 학생과 교사들 사이에 자유롭게 의견이 오간다. 자유로운 학교 분위기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대원외고 유순종 국제부장은 “국제반 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Debating(토론)을 교육받으며 2학년이 돼서는 Mock Trial(모의재판), Mun(모의유엔대회), Moot court(모의법정)를 공부하면서 토론문화를 몸에 익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각종 대회서 1등 도맡아… “재미 붙이면 성적은 절로”
한국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많다. 토론을 잘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영어로 토론을 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외국에서는 오래전 시작된 세계 영어토론대회에 한국인 학생들이 팀을 이뤄 본격적으로 참여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대원외고 2학년 송유진(17) 양은 한국에서 손꼽히는 영어토론가 ‘넘버원’이다. 1학년 멤버만 3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열기가 높은 이 학교 국제반 ‘Debate team’의 캡틴을 맡고 있으며, 지난 9월5일부터 15일까지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세계 고등학교 토론대회에 국가대표로 참여해 38개국 참가팀 중에서 16강에 올랐다. 당시 토론대회 모습이 지난 12월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방송돼 화제가 됐다.
송양은 영어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처음부터 영어토론을 잘한 것은 아니었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말하는 것을 싫어해 처음 스피치를 할 때는 2분도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이때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선배들의 격려였다.
“질책보다는 격려를 받으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영어토론에 슬슬 재미를 붙여가자 놀라운 성적을 거두기 시작했다. 중학생 때 고등학생 대회에서 개인랭킹 8위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국제토론교육협회대회 개인랭킹 1위, 한국고등학생 영어토론대회 개인랭킹 1위 등 영어토론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
단순히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토론까지 잘하는 것은 아니다. 영어회화에 국한하면 영국이나 호주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 송양의 설명. 언어의 문제보다는 ‘토론의 기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외국인 학생들과 토론을 해보면 ‘참 여유롭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에서는 고등학생이 돼서야 겨우 시작하지만 그들은 어려서부터 토론문화에 익숙하거든요.”
크게 내용, 스타일, 전략 세 가지로 평가되는 토론에서 내용은 한국팀도 전혀 뒤지지 않는 부분이다. 하지만 상대방 주장을 반박하고 유머를 구사하는 스타일과 전략 부분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세계토론대회 결승전 장면이 담긴 영상은 좋은 토론 교재다. 실력 있는 토론자들의 영어 표현과 얼굴 표정, 손짓 하나하나가 모두 참고서인 셈이다.
반면 한국팀의 강점도 있다. 준비된 주제가 아닌 즉석 주제가 주어졌을 때 상식과 통계를 활용해 논의를 풍부하게 만든다. 토론이 끝날 때마다 모여 서로 얘기를 나누면서 ‘이런 상황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등을 논의하는 팀워크도 최고다. 그 결과 2006년 이후 3년 연속 16강에 오를 만큼 실력도 부쩍 성장했다.
영어잡지 읽고 유니세프서 자료 얻어
인터뷰 중간중간 영어가 섞일 때면 송양은 원어민처럼 유창한 발음을 구사했다. 그녀만의 영어 완전 정복의 비법은 무엇일까? 송양은 아버지인 서울대 송재용 교수(경영학)를 따라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미국에서 살았지만 귀국 후에는 영어로 말하는 것을 거의 잊어버렸다. 배우는 데는 몇 년이 걸리지만 잊는 것은 순간이었다.
“꾸준히 말하는 것 이상의 왕도는 없었던 것 같아요.”
송양이 계속해서 영어를 사용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바로 영어토론.
“토론 준비과정에서 영어를 구사하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하게 될 뿐만 아니라, 실제 토론대회에서 직접 말을 하게 되면 불쑥 실력이 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이후 영어토론대회라면 가리지 않고 참여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요커’도 송양이 영어를 놓지 않게 한 좋은 친구다. 시사적인 내용뿐 아니라 시, 소설 등 문학적인 내용도 실려 있어 흥미를 잃지 않고 계속 영어를 공부할 수 있게 해줬다.
영어토론을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빼앗겨 학업을 소홀하게 되지 않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흔든다.
“영어토론대회를 준비하면서 폭넓은 커뮤니티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어요. 용인외고, 민사고 등 전국 각지에 있는 친구들을 알게 됐죠. 해외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데 에세이 쓰는 데도 유리하고, 세계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 토론을 하기 때문에 수업에 큰 도움이 됩니다.”
영어토론대회는 특목고 중심으로 진행돼왔지만 이제는 일반고 학생도 참여할 만큼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주위의 지원이 많지 않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당장 2009년에 나가는 세계 고등학교 토론대회조차 변변한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상태다.
“외국팀들을 보면 국가에서 대대적으로 지원을 해줘요. 우리도 엄연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인데, 대회에 나가는 비용조차 사비를 털어 충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영어토론의 달인 송양은 벌써부터 오는 2월에 열릴 세계 토론대회 준비로 분주하다. 고3이 되는 2009년, 유종의 미를 거두며 이제는 자신의 꿈을 향해 한 발자국 전진할 생각이다. 그녀의 꿈은 국제인권변호사다. 외국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뒤 로스쿨에 진학해 국제인권변호사로서의 꿈을 펼칠 계획이다. 평소 인권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는 송양은 특히 토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인권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한다.
“토론의 좋은 자료를 유니세프(UNICEF)에서 많이 얻었어요. 그 자료를 공부하면서 자연스레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한국을 넘어 세계로 나가겠다고 당차게 포부를 밝힌 송유진 양.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가는 그녀의 도전이 기대된다.
각종 대회서 1등 도맡아… “재미 붙이면 성적은 절로”
한국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많다. 토론을 잘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영어로 토론을 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외국에서는 오래전 시작된 세계 영어토론대회에 한국인 학생들이 팀을 이뤄 본격적으로 참여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대원외고 2학년 송유진(17) 양은 한국에서 손꼽히는 영어토론가 ‘넘버원’이다. 1학년 멤버만 3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열기가 높은 이 학교 국제반 ‘Debate team’의 캡틴을 맡고 있으며, 지난 9월5일부터 15일까지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세계 고등학교 토론대회에 국가대표로 참여해 38개국 참가팀 중에서 16강에 올랐다. 당시 토론대회 모습이 지난 12월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방송돼 화제가 됐다.
송양은 영어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처음부터 영어토론을 잘한 것은 아니었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말하는 것을 싫어해 처음 스피치를 할 때는 2분도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이때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선배들의 격려였다.
“질책보다는 격려를 받으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영어토론에 슬슬 재미를 붙여가자 놀라운 성적을 거두기 시작했다. 중학생 때 고등학생 대회에서 개인랭킹 8위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국제토론교육협회대회 개인랭킹 1위, 한국고등학생 영어토론대회 개인랭킹 1위 등 영어토론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
단순히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토론까지 잘하는 것은 아니다. 영어회화에 국한하면 영국이나 호주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 송양의 설명. 언어의 문제보다는 ‘토론의 기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외국인 학생들과 토론을 해보면 ‘참 여유롭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에서는 고등학생이 돼서야 겨우 시작하지만 그들은 어려서부터 토론문화에 익숙하거든요.”
크게 내용, 스타일, 전략 세 가지로 평가되는 토론에서 내용은 한국팀도 전혀 뒤지지 않는 부분이다. 하지만 상대방 주장을 반박하고 유머를 구사하는 스타일과 전략 부분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세계토론대회 결승전 장면이 담긴 영상은 좋은 토론 교재다. 실력 있는 토론자들의 영어 표현과 얼굴 표정, 손짓 하나하나가 모두 참고서인 셈이다.
반면 한국팀의 강점도 있다. 준비된 주제가 아닌 즉석 주제가 주어졌을 때 상식과 통계를 활용해 논의를 풍부하게 만든다. 토론이 끝날 때마다 모여 서로 얘기를 나누면서 ‘이런 상황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등을 논의하는 팀워크도 최고다. 그 결과 2006년 이후 3년 연속 16강에 오를 만큼 실력도 부쩍 성장했다.
송양은 장차 국제인권변호사가 돼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인터뷰 중간중간 영어가 섞일 때면 송양은 원어민처럼 유창한 발음을 구사했다. 그녀만의 영어 완전 정복의 비법은 무엇일까? 송양은 아버지인 서울대 송재용 교수(경영학)를 따라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미국에서 살았지만 귀국 후에는 영어로 말하는 것을 거의 잊어버렸다. 배우는 데는 몇 년이 걸리지만 잊는 것은 순간이었다.
“꾸준히 말하는 것 이상의 왕도는 없었던 것 같아요.”
송양이 계속해서 영어를 사용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바로 영어토론.
“토론 준비과정에서 영어를 구사하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하게 될 뿐만 아니라, 실제 토론대회에서 직접 말을 하게 되면 불쑥 실력이 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이후 영어토론대회라면 가리지 않고 참여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요커’도 송양이 영어를 놓지 않게 한 좋은 친구다. 시사적인 내용뿐 아니라 시, 소설 등 문학적인 내용도 실려 있어 흥미를 잃지 않고 계속 영어를 공부할 수 있게 해줬다.
영어토론을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빼앗겨 학업을 소홀하게 되지 않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흔든다.
“영어토론대회를 준비하면서 폭넓은 커뮤니티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어요. 용인외고, 민사고 등 전국 각지에 있는 친구들을 알게 됐죠. 해외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데 에세이 쓰는 데도 유리하고, 세계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 토론을 하기 때문에 수업에 큰 도움이 됩니다.”
영어토론대회는 특목고 중심으로 진행돼왔지만 이제는 일반고 학생도 참여할 만큼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주위의 지원이 많지 않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당장 2009년에 나가는 세계 고등학교 토론대회조차 변변한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상태다.
“외국팀들을 보면 국가에서 대대적으로 지원을 해줘요. 우리도 엄연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인데, 대회에 나가는 비용조차 사비를 털어 충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영어토론의 달인 송양은 벌써부터 오는 2월에 열릴 세계 토론대회 준비로 분주하다. 고3이 되는 2009년, 유종의 미를 거두며 이제는 자신의 꿈을 향해 한 발자국 전진할 생각이다. 그녀의 꿈은 국제인권변호사다. 외국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뒤 로스쿨에 진학해 국제인권변호사로서의 꿈을 펼칠 계획이다. 평소 인권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는 송양은 특히 토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인권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한다.
“토론의 좋은 자료를 유니세프(UNICEF)에서 많이 얻었어요. 그 자료를 공부하면서 자연스레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한국을 넘어 세계로 나가겠다고 당차게 포부를 밝힌 송유진 양.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가는 그녀의 도전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