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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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노인복지 사각지대, ‘은둔 중년’이 늘어난다

취업 경험 있는 30~50대 사회적 고립자 증가… 제도적 지원 못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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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채원 기자

    ycw@donga.com

    입력2025-10-3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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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상반기 서울 은평구 고립·은둔 청년 쉼터 두더집에서 일 경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사단법인 씨즈 제공

    올해 상반기 서울 은평구 고립·은둔 청년 쉼터 두더집에서 일 경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사단법인 씨즈 제공

    30대 후반인 A 씨. 그는 2020년부터 약 3년 동안 집 밖을 나서지 않았다. 집 근처 반찬가게에 갈 때만 잠깐 외출할 뿐이었다. 그마저도 참치캔 등으로 끼니를 때울 때가 많아 안 나가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생애주기상 결혼하고 가족을 돌보는 연령대인 A 씨가 처음부터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건 아니다. 그는 회사 3곳을 거치며 7년간 직장생활을 했다. 첫 직장은 5년 넘게 다녔지만 업무 스트레스가 누적되면서 해소할 통로가 없었다. 간단한 질문에도 대답하기가 버거운 상태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A 씨는 “퇴사하고 한두 달 쉬면 회복될 줄 알았는데, 3년이 훌쩍 지나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A 씨가 겪는 고립·은둔은 흔히 청년 문제로 여겨진다. 대학 진학에 실패하거나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불안정한 고용 환경이 문제를 심화한다는 것이다. 2010년대 후반 은둔 청년 문제가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10년이 지난 지금 청년 은둔은 이제 중년 은둔으로 이어지고 있다. 20대 초반 젊은 은둔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A 씨처럼 사회생활을 하다가 은둔하게 된 사례도 늘고 있다. 사단법인 씨즈가 운영하는 은둔·고립 청년 쉼터 두더집에서 은둔 경험이 있는 30대 초반과 후반의 청년·중년 3명을 10월 22일 만났다.

    20대부터 4년간 은둔한 B 씨는 하루 대부분을 집 안에서 보냈다. 한 끼, 많아야 두 끼를 편의점 김밥이나 라면으로 때웠다. 여러 차례 일도 했다. 문구점, 분식집, 은행 현금 수송 등 아르바이트를 해봤지만 오래 버티지 못했다. 학창 시절 학교폭력으로 생긴 트라우마 탓에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손님에게 뺨을 맞은 일을 계기로 일을 그만뒀고, 이후 4년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일에 대한 공포감이 커지면서 생계는 기초수급비로 유지했다.

    일 경험 있어도 고립될 수 있어

    고등학생 때부터 10년간 은둔생활을 이어온 C 씨도 사정은 비슷했다. 우울증이 심했던 그는 헬스장 인포메이션, 화장품 판매, 치과 기구 세척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길게는 11개월가량 일했지만, 일이 끝나면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일과 고립이 반복되는 생활이었다. 사회적 관계를 시도하려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짧은 대화만 오갈 뿐 지속되진 않았다.

    A 씨는 마흔이 가까워지면서 “이대로 나이가 들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자주 한다. 30대 후반 나이에 “이대로 살 수 없다”와 “더는 못 버티겠다”는 생각을 반복하며 3년 간 은둔했다. 실제로 20대 청년 고립 문제나 60대 이상 노인 고독사에 비해 청년기본법상 청년으로 지정된 만 34세를 넘긴 30대 중반부터 50대까지는 제도적 지원과 사회적 관심에서 모두 제외돼 있다. 두더집에도 30대 후반과 40대 초반 연령대가 종종 찾아온다. 청년 위주 공간이지만,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매니저들도 그들을 돌려보내지 못한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17~2023년 고독 사망자 약 75%가 중장년층(40~60대)에 집중돼 있고, 이 가운데 50대 비중이 31.1%로 가장 크다.



    꾸준한 프로그램 필요

    두더집의 은둔 청년들을 집 밖으로 이끈 건 꾸중이나 압박이 아닌 주변의 따뜻한 권유였다. 부모가 집에만 있는 자녀가 걱정돼 두더집 웹사이트 주소 링크를 보내거나, 기초수급비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두더집을 권한 경우도 있다. “은둔 청년에게 굿즈를 준다”는 문자메시지 한 통이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다 초면인 사람들만 모여 있는 곳에 나간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A 씨는 경기 광명에 있는 집에서 서울 은평구의 두더집까지 매주 수·목·금요일 왕복 3시간을 감수한다. 그는 “아직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게 어렵지만 이곳이 회복의 발판이라는 생각으로 매주 나온다”고 말했다.

    이들은 은둔을 벗어나는 첫걸음으로 꾸준히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몇 년간 고립돼 있던 청년과 오랜 은둔생활을 이어온 중장년이 회복하려면 단발성 상담보다 주기적인 모임과 일 경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두더집은 매주 목·토요일에는 모여서 집밥을 만들어 먹는 프로그램, 수·목요일에는 일 경험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일 경험 프로그램에선 매주 ‘가상회사’를 차린다. 실제 회사를 운영하는 건 아니지만, 각자가 회사원처럼 역할을 맡아 업무를 공유하고 목표를 세우는 방식이다. 오후 1시가 되면 참여자들이 하나 둘 모여 각자 한 주 활동을 보고하고, 이번 주 목표도 발표한다. 담당 매니저는 “이번 주 마감은 언제예요?”라고 묻는다. 방 안에만 머물던 이들이 다시 출근을 연습하며 생활 리듬을 익혀가고 있었다.

    B 씨는 은둔을 끝내고 심리상담과 두더집 활동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새로 세운 목표는 콘텐츠 제작이다. 매주 박물관을 찾아 브이로그를 찍는 등 유튜브 채널 3개를 운영하고 있다. 이날 근황을 공유하는 시간에 그는 피라미드 사진이 그려진 카드 한 장을 골랐다. 어디서나 눈에 띄는 피라미드처럼 특별한 창작물을 만들고 싶다는 뜻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윤채원 기자

    윤채원 기자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윤채원 기자입니다. 눈 크게 뜨고 발로 뛰면서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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