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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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을 계속 돕는 게 어려운 이유

[돈의 심리] 중간에 지원 끊었다가 오히려 비난받을까 봐

  • 최성락 경영학 박사

    입력2024-10-27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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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에 있는 몇몇 아이에게 자금 지원을 하고 있다. 학비 등 생활에 필요한 자금을 보조하는데, 사실 적은 돈은 아니다. 어쨌든 장기간 계속해서 지원하고 있다. 친한 지인들은 이 사실을 안다. 그런데 그들은 나의 그런 지원에 긍정적이지 않다.

    “그건 아닌 것 같다” “언젠가 곤란할 텐데…”라는 반응이다. 아주 대놓고 “네가 잘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아이들을 계속 지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어쩌다 몇 번 지원하는 건 괜찮다. 한 번에 큰 금액을 지원하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정기적으로 계속해서 지원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지원하다가 어느 순간 내 돈이 다 떨어질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지원해도 내 상황에는 큰 영향이 없다는 것쯤은 그들도 안다. 그럼에도 지속적인 지원을 반대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자산가가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돕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GETTYIMAGES]

    자산가가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돕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GETTYIMAGES]

    지원 멈추면 해코지 당할 수 있어

    첫째, 지금 그렇게 도움을 줘도 나중에 절대 보답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런 지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고마워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실망하게 될 테고,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 지금 아무리 잘 해줘도 나중에 아무 소용이 없다.

    둘째, 지원하다가 그만두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지원을 평생 할 수는 없다. 언젠가는 그만두게 되는데 그럼 그때는 어떻게 될까. 아이들은 오히려 나를 비난하고 욕할 것이다. 그동안 돈을 지원해준 고마운 사람이 아니라, 지금 당장 생활을 위협하는 나쁜 놈이 돼버린다. 단순히 욕을 먹는 정도가 아니라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런 지원을 하려면 평생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나에게도, 지원받는 당사자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렇다고 평생 지원할 수는 없지 않나. 그러니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명품 드라마로 인정받는 ‘나의 아저씨’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어려서부터 고아로 어렵게 살아온 파견직 직원 이지안(이지은 분)은 자기를 도와주는 부장 박동훈(이선균 분)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 인생에 날 도와준 사람이 하나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진 마요. 많았어요, 도와준 사람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네 번까지 하고 나면 다 도망가요. 나아질 기미가 없는 인생, 경멸하면서… 지들이 착한 인간들인지 알았나 보지.”

    이지안은 네 번 정도 도와주다가 사라진 사람들이 자신을 경멸하면서 떠나갔다고 생각했다. 몇 번을 도와줘도 나아지지 않는 자기에게 실망해서 떠나갔다고 봤다. 하지만 그건 아닐 것이다. 한두 번은 아무 생각 없이 도와준다. 하지만 서너 번 도와주고나면 이제는 마음에 걸리기 시작한다.

    “이러다가 평생 동안 도와줘야 하는 건 아닌가.”

    이지안이 안쓰러워서 도와주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평생을 지원해줄 수는 없다. 자기 가족이나 연인이라면 모를까, 생판 남인 이지안을 평생 동안 옆에서 도와주는 건 곤란하다. 서너 번 계속 도와준 사람은 이제 결정을 해야 한다. 평생 도와줄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멈출 것인가. 특별한 사이가 아닌 한 여기서 멈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 테고, 그래서 떠나갔을 것이다. 박동훈은 이지안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착한 거야. 네 번이 어디야. 한 번도 안 한 인간들이 세고 셌는데.”

    박동훈의 말이 맞다. 한 번도 안 도와준 사람보다 네 번 도와준 사람이 훨씬 착하다. 하지만 비난받는 쪽은 한 번도 안 도와준 사람이 아니라, 네 번 도와주다가 도움을 끊은 사람이다. 도와주다가 지원을 끊으면 그때는 더 나쁜 놈이 된다. 이지안도 자신을 몇 번 도와준 사람들에게 “지들이 착한 줄 알았나 보지”라면서 비난하고 있지 않나.

    생명 위협까지 받는 기초생활 담당 공무원

    가까운 친지가 몇 년 전 시험에 붙어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됐다. 그동안은 일반 사무 부서에서 일해왔고 업무 만족도도 괜찮았다. 그런데 올해 초 사회복지 업무를 담당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는 공무원 생활에 심각한 회의를 느낀다고 했다. 이유는 과격한 협박성 민원 때문이다. 한국은 소득, 재산이 일정 수준 이하인 사람에게 최소생활비를 지원하는 기초생활보장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굶어 죽지 않고 살아가게 해주는 사회복지제도다. 기초생활자금이 매달 입금되는 날짜가 있다. 그런데 그 시간이 평소보다 조금만 늦어져도 바로 민원 전화가 온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돈이 왜 안 들어오느냐고 전화가 오고 항의를 한다. 하루 이틀 늦는 게 아니라, 몇 시간만 늦어도 전화가 온다. 그냥 단순한 문의 전화가 아니다. 왜 내 돈을 안 보내느냐고 소리치며 항의하는 전화다.

    가장 큰 위협은 기초생활수급자였다가 더는 기초생활수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 늘어나거나 재산이 증가하면 더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안 된다. 이 경우 많은 사람이 “왜 돈을 계속해서 주지 않느냐”며 항의를 한다. 단순히 항의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칼 들고 가서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한다. 평생 살아오면서 이런 식의 협박을 받은 적이 없는데, 공무원이 되고 난 후 이런 말을 듣는다. 무서울 수밖에 없다.

    알고 보니 친지의 이런 경험은 독특한 것이 아니었다. 전국에서 민원으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공무원이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들이다. 그래서 이 업무를 하는 공무원의 경우 휴직도 많고 타부서 전출 신청도 많다. 돈을 주다가 이유가 있어서 돈을 적게 주거나 주지 않을 때 위협이나 협박을 하고 항의하는 건 전국 공통 현상인 것이다. 기초생활자금은 정부의 업무로 법에 따라 주는 것이고, 공무원은 그 법으로 규정된 업무를 담당하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도 공무원이 욕을 먹고 심지어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다. 정부가 주는 돈도 이 지경인데, 만약 돈 있는 복지가가 직접 돈을 주는 방식이라면 어땠을까. 매달 정기적으로 지원금을 보내다가 어떤 사정이 생겨 더는 돈을 주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어떨까.

    주변 지인들의 말이 맞다. 지원을 하다가 끊으면 문제가 더 커진다. 지원을 받았던 사람도 문제이지만, 지원을 해준 사람도 문제다. 지원에 의존하며 살아왔던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도 문제이고, 지원해오던 사람은 오히려 원수 취급을 당하고 위협받을 가능성이 커져서 문제다.

    “내 돈 내놔” 항의 받을 수도

    부자는 여유가 있으니 어려운 주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고 치자. 그럼 여유가 있다고 누구나 쉽게 주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 이 경우 부자는 자기가 도움을 주면 상대방이 보답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 정도 돈이 있다면, 특히 상속 등으로 물려받은 게 아니라 자기가 모아서 돈이 생긴 경우라면 그동안 돈과 관련된 여러 일을 겪었을 것이다. 그래서 도와준 만큼 제대로 보답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을 테다. 그냥 도우려는 것이지, 보답을 바라고 도우려는 건 아니다. 보답은 없어도 되고, 단지 배신만 안 하면 된다.

    문제는 지원의 지속성이다. 한두 번은 도울 수 있다. 그러나 가족이 아닌 한, 평생을 책임질 수는 없다. 도왔을 때 고맙다는 말은 듣지 않아도 된다. 그런 칭찬의 말이 없어도 계속 도울 수 있다. 하지만 도왔다는 이유로 비난받고 욕을 먹으면 이때는 도울 수가 없다. “한 번 도와줬으면 계속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 “왜 더 도와주지 않느냐” “내 돈 내놔”라면서 달려들 가능성이 있다면 더욱 곤란하다. 아예 처음부터 돕지 않았다면 비난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지안은 자기가 독립해 혼자 살아보겠다고 박동훈 옆을 떠났다. 그래서 해피엔딩이 될 수 있었다. 만약 이지안이 계속 같은 동네에 살면서 평생 박동훈의 지원을 받았다면 드라마의 결론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금전적 지원을 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많은 복지가가 가난한 주변 사람들을 직접 돕지 않고 자선단체에 기부만 하는 건 그런 이유도 크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직접 계속 도왔다가는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것이 주변 사람을 쉽게 도울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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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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