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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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인간에게 보내는 소리 형상화하고 싶었다”

9월 11일 광화문광장에 울릴 ‘기후공명 종(鐘)’ 제작한 한원석 작가 인터뷰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24-09-0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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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맞이 의식 중 대표적인 게 보신각 타종 행사다.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들으며 ‘지난 해’와 작별하고 ‘새로 오는 해’를 맞이한다. 9월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릴 기후위기 대응 캠페인 ‘2024 기후공명’에서도 ‘종소리’가 전국 방방곡곡, 세계 만방에 울려 퍼질 예정이다.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될 ‘기후공명 종(鐘)’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인류가 글로벌 기후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할 예정이다.

    지구가 인간에게 보내는 소리 형상화

    9월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될 ‘기후공명 종’. [한원석 작가 제공]

    9월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될 ‘기후공명 종’. [한원석 작가 제공]

    ‘기후공명 종’은 폐스피커 3088개로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을 재현한 것으로 이 종을 만든 한원석 작가를 만나 작품에 담긴 의미와 그의 작품세계를 들었다. 그는 2003년 자신이 피우고 모아 놓은 담배꽁초로 만든 작품 ‘악의 꽃’으로 데뷔했다. 한 작가는 “담배로서 가치를 잃어 하찮은 쓰레기로 취급되며 버려진 꽁초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환생시킴으로써 버린 인간과 버려진 꽁초 사이에 ‘화해’를 시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인터뷰는 담배꽁초 10만 개를 붙여 만든 그의 작품 ‘자화상’ 앞에서 진행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그의 작업실에서는 폐스피커와 폐파이프로 만든 작품에서 ‘새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와 40여 분간 나눈 대화 내용과 그가 건넨 책 ‘한원석 1989-2019’에 담긴 그의 메시지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다.

    - ‘기후공명 종’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작품인가.

    “평면 TV가 보편화되면서 과거 브라운관 TV에 들어가던 스피커가 한순간 쓸모가 없어졌다. 그 스피커들을 모아 신라시대 성덕대왕신종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폐스피커는 나에게 ‘화해’를 위한 오브제다. 고교 2학년 때 쓰레기처럼 버려진 나는 건축과 예술을 오가는 주경야독의 시간을 견뎌낸 끝에 2003년 작가로 다시 태어났다. 마찬가지로 쓸모가 없어진 3088개 폐스피커에 3088번 볼트를 끼우고 6176번 납땜한 끝에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지구상에는 우주의 소리, 생물의 소리 등 여러 소리가 존재한다고 하는데, ‘기후공명 종’을 통해 지구가 인간에게 보내는 소리를 공유하기 바란다.”

    한 작가는 “서울 광화문에서 시작된 종소리가 전 세계에 울려 퍼져 함께 듣는다는 것은 인종과 민족, 국적은 달라도 우리 모두가 지구에 함께 사는 ‘지구촌 사람들’이라는 공존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원석 작가가 담배꽁초로 만든 ‘한반도 지도’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지호영 기자]

    한원석 작가가 담배꽁초로 만든 ‘한반도 지도’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지호영 기자]

    - 주로 꽁초나 폐파이프, 폐스피커 같은 재료로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쓰레기는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져 버려진다. 그런데 여기서 가치는 보편적인 게 아니라 개별적인 것이다. 가치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누구 손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누군가는 꽁초를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 버리지만 나는 그 꽁초를 모아 작품으로 환생시킨다. 쓰레기로 치부되던 깨진 그릇이나 조개 무덤도 그 가치를 인정받으면 보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가.”

    모든 작업은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미술평론가 최태만은 한원석 작가의 데뷔작 ‘악의 꽃’에 대해 이렇게 평론한 바 있다.

    “그가 발표한 작품은 흡연자의 쾌락을 위해 스스로 몸을 불태우고 마침내 비참하게 버려진 꽁초들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담배는 쾌락과 유해란 이중적 속성을 지닌 기호품이다. 버려진 꽁초는 이 두 속성의 잉여물이자 인간만이 탐닉하다 폐기한 쓰레기이다. 자산이 피다 버린 것은 물론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꽁초를 수집해 화면을 구성하면서 그는 스스로를 ‘범죄자’ 취급했다. 하루에 스무 개비씩 십 년간 담배를 피웠으니 개수로 따지자면 7만3000개에 이르는 담배를 불사르면서 자신의 신체를 학대함은 물론 환경을 오염시켰다는 논리다. 작업을 위해 하루에 2340개의 버려진 꽁초를 한 달간 주우면서 그는 ‘회개자’가 되었다고 한다.

    …중략… 그의 담배꽁초 그림은 한마디로 역설적이다.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운 꽃은 실제로 추악한 냄새를 풍기는 담배꽁초에 불과하다. 고귀하고 우아한 겉모습 이면에 똬리를 틀고 욕망의 찌꺼기에 대한 통렬하고 자학적인 풍자, 그것은 제동장치가 파열된 채 질주하고 있는 욕망의 기차라고 할 수 있는 현대 소비사회가 도달할 대단원에 대한 경고이지 않을까.”

    고교 시절 그는 ‘작가’를 꿈꾸며 ‘야간 자율학습’ 대신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며 모은 돈으로 미술학원을 다녔다. 거짓말이 들통나 아버지에게 “‘환쟁이’가 되려거든 집을 나가라”는 얘기를 듣고 그 길로 집을 나왔다. 미술학원에서 청소하고 심부름하며 그림을 배웠고, 공사장에서 페인트공과 용접공으로 일하며 버텼다. 그때 경험 덕에 건축일은 자연스레 그의 작업 소재가 됐다.

    한원석 작가. [지호영 기자]

    한원석 작가. [지호영 기자]

    - 작품 재료는 어떻게 구하나.

    “모든 작업은 환경에 대한 관심을 기초로 하고 있다. 따로 재료를 구하지 않고 버려지거나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로 작업한다. 작품을 구상한 뒤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쓰레기(재료)를 모으러 다니는 일이다. 모아 온 수집물로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은 그 다음 작업이다.”

    그의 작업실에는 다음 작품 소재로 쓸 폐파이프 여러 개가 놓여 있었다. 그는 쓰레기와 환생, 그리고 화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밝혔다.

    “쓰레기란 이미 가치가 없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쓰레기를 모아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시키면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니다. 작품이 된 쓰레기는 전과 다른 가치를 갖게 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화해’할 수 있다. 앞으로도 쓰레기로 여겨지는 재료를 모아 예술적 가치를 부여해 더 많은 작품으로 환생시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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