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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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앵커 사퇴 후폭풍, “좌표 찍는 인사 횡포에 치욕감” 목소리 나와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20-11-14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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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료들 “좌우 진영에 따라 좌우되는 인사 횡포, 文 정부 들어 유독 심해져”

    • 전문가 “공정성 회복 위해 책임 의무를 방송법에 넣어야”

    “이제 KBS에 대한 저의 의탁을 접으려고 합니다. 더 이상은 제가 머물 공간이 없어졌습니다.” 

    11월 9일 황상무 전 KBS 앵커가 사의를 밝히며 내놓은 말이다. 황 전 앵커는 KBS 사내 게시판에 “KBS는 극단의 적대정치에 편승해서는 안 된다”며 “KBS가 우리 역사의 저주, 보복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2800자에 달하는 ‘퇴사의 변’에는 사실이 아닌 이념에 치우친 KBS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공영방송으로서 공정성을 훼손한 채 정치적 잣대로 사람들을 줄 세우는 횡포성 인사 또한 문제로 지적했다.

    2016년 10월 KBS ‘뉴스9’을 진행하고 있는 황상무 앵커. [KBS 뉴스9 홈페이지]

    2016년 10월 KBS ‘뉴스9’을 진행하고 있는 황상무 앵커. [KBS 뉴스9 홈페이지]

    文 정부 들어 ‘적폐’로 몰려 앵커직 하차

    황 전 앵커는 1991년 KBS 기자로 입사해 사회부, 정치부 등을 두루 거쳤고 2001년부터 주요 뉴스 앵커로 활약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에는 KBS 메인 뉴스인 ‘뉴스9’ 앵커로 발탁됐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취임 후 ‘적폐청산’ 대상으로 지목되며 2018년 2월 앵커 자리에서 밀려났다. 그러다 지난해부터는 그간의 경력과는 무관한 라디오 편집부에서 일했다. “지난 2년여 벼랑 끝에 매달린 채 백척간두의 삶을 살았다. 이제는 손을 놓으려 한다”는 황 전 앵커의 글에서 그간의 심경이 읽힌다. 

    2018년 2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소속 기자 12명은 ‘황상무 앵커의 사퇴를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KBS 사내 게시판에 올렸다. 고대영 전 KBS 사장이 2018년 1월 23일 해임되면서 노조 파업은 끝났으나 보도와 제작 책임자들은 바뀌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어 기자 17명은 황상무 앵커를 “구태와 적폐의 상징”으로 규정하면서 “황 앵커가 30년 가까운 기자로서 경력 가운데 일부라도 존중받고 싶다면 당장 앵커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황 전 앵커에 대해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살수차에 맞아 희생됐을 때 경찰의 부검 시도를 옹호하며 공방으로 치부하고 정치 쟁점으로 호도했다”고 비판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목소리가 높아질 당시 야당 의원이 여당 의원들의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인터넷에 유출했다며 허위 왜곡 보도를 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뉴스9’에서 하차한 황 전 앵커는 공영방송의 공정성 회복을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KBS 오보 사건’과 관련해서도 KBS노동조합과 보수성향의 KBS공영노동조합이 참여한 ‘공영방송 KBS 검언유착 의혹사건 진상조사위원회’에 진상조사위원으로 활동했다. 



    7월 18일 KBS ‘뉴스9’은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이 공모한 정황이 두 사람이 나눈 대화록에 나온다”고 보도했지만 이는 명백한 오보로 밝혀졌다. KBS는 10월 12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법정제재(주의)를 받았다. 

    당시 황 전 앵커는 KBS 사내 게시판에 실명으로 사측의 잘못을 비판하며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 해당 글에는 직원 108명이 실명으로 댓글을 남기며 지지를 표했다. 황 전 앵커의 동료 A씨는 “황상무 기자는 KBS 내 어떤 노조에도 가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소신 발언을 한 것”이라며 “그 덕에 후배들도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민 절반을 적으로 돌려”

    황 전 앵커의 동료들은 “황 전 앵커가 사측이 해당 사건을 무마하고 합리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참담한 심경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KBS의 사주는 국민인데, 좌우 진영의 논리로 직원들을 갈라치기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행태를 황 전 앵커가 견디기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결국 황 전 앵커는 11월 9일 오전 사표를 제출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오후에는 KBS 인사가 단행됐다. A씨는 “아마도 인사 결과를 보고 싶지 않았을 듯하다”며 “조직에 더 실망하기 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컸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료 B씨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늘 있어온 일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참기 힘든, 말도 안 되는 인사가 수시로 진행되고 있다”며 “좌우 진영의 논리로 개개인에게 좌표를 찍어 횡포를 부리는 행태에 치욕감을 금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황 전 앵커가 남긴 퇴사의 변에도 이러한 심경이 그대로 녹아 있다. 

    “명백한 사실조차 부정하고 ‘내로남불’을 쏟아내며 욕설과 저주로 증오만을 키우고 있다. 이성은 없고 극단의 감정만 있다. 사실은 무시되고 조롱받으며, 주장과 선동만이 힘을 얻는다. 과거에 대한 고찰, 현재의 성찰, 미래에의 통찰은 설 자리를 잃었다. 극도로 분노하는 이들이 생기고, 동시에 극도로 좌절하는 사람도 생긴다. 이렇게 상대를 쓸어버리겠다는 극단의 적대정치가 힘을 얻는 한, 이 땅에 킬링필드를 재현하는 것 외에는 해결 방법이 없다.” 

    또한 황 전 앵커는 “언론은 사실 앞에 겸손해야 한다”고 직언했다. “이념으로 사실을 가리거나 왜곡하려 드는 순간, KBS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회사가 한쪽 진영에 서면, 나머지 절반의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일이다. 국민을 편 가르고 이간질하는 일이다. 스스로를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만들고, 편들고자 했던 바로 그들로부터 업신여김이나 당할 뿐”이라고 밝혔다. 

    공영방송 KBS가 부당한 인사와 불공정 보도 시비에서 벗어나는 길은 없을까.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공영방송이 정치적 공정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영방송의 의무와 책임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교수의 말이다. 

    “공영방송의 책무는 사회정치적 지위에 따른 책임과 의무인데, 우리나라 방송법은 놀랍게도 공영방송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규정해놓은 조항이 없다. 일반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는 명시해놓았지만, 좋은 채널을 우선 사용하고 무료 전송권을 누리며 재원에 대한 일정 보장도 받고 있지만 이러한 권리의 반대급부로서 의무 조항은 명료한 규정이 없다.” 

    황 전 앵커 사퇴 이후 “공영방송의 의무와 책임, 조건들을 공영방송 전문가들이 규정해 제시하고, 방송법 개정안에도 이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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