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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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의사 없는 ‘혼인 약정서’ 무효

  • 박영규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입력2015-01-19 11: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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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인 의사 없는 ‘혼인 약정서’ 무효
    남성이 여성에게 임신중절수술을 받게 할 목적으로 ‘혼인하겠다’는 내용의 약정서를 써준 경우라면 약혼이 성립했다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민법에는 ‘성년에 달한 자는 누구나(18세의 경우는 부모나 미성년 후견인의 동의를 얻어) 약혼할 수 있고, 약혼은 이행을 강제할 수 없으며, 약혼을 해제하는 경우 과실이 있는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민법 제800~806조).

    일반적으로 약혼은 특별한 형식을 거칠 필요 없이 장차 혼인을 체결하려는 당사자 사이에 합의가 있으면 성립하지만, 혼인에 대한 진정한 의사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부산가정법원 가사1부(재판장 김문희 부장판사)는 2014년 12월 4일 A(21·여)씨가 B(27)씨를 상대로 낸 약혼 해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약혼 성립을 인정하지 않고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책임만 인정해 “B씨는 A씨에게 10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2010년 5월 당시 고등학생이던 A씨는 친구들과 부산 서면에서 B씨 일행을 만나 함께 술을 마셨고, 이날 A씨와 B씨는 성관계를 했다. 이후 가출한 A씨는 3~4번 B씨를 더 만나 성관계를 했고, 몇 달 뒤 집으로 돌아온 A씨는 B씨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됐다. 딸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A씨 어머니는 B씨를 만나 “내 딸을 책임지라”고 요구했다.

    이에 B씨는 “일단 임신중절수술을 받자”고 했지만, A씨 어머니는 ‘결혼하겠다’는 각서를 써줘야 수술을 받게 하겠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B씨는 ‘내년 5월까지 혼인하기로 약정하고 이를 어길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지고 위자료 2억 원을 준다’는 내용의 약정서를 작성했고, A씨는 임신중절수술을 했다. 그러나 수술이 끝난 뒤 B씨가 A씨의 연락을 피하자 A씨는 “일방적으로 약혼을 파기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약혼이 성립하려면 당사자 사이에 혼인하겠다는 진실한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혼인 의사가 있었다면 굳이 임신중절수술을 받을 필요가 없었던 점, 피고(B씨)가 혼인할 의사 없이 낙태시킬 목적으로 혼인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점 등을 볼 때 약정서만으로 장차 혼인을 하겠다는 진실한 합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약혼 파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그러나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해 원고(A씨)가 원치 않던 임신을 하게 하고 혼인 약정서를 작성해 원고를 안심하게 한 뒤 임신중절수술을 하도록 한 것은 불법행위이므로 약정서에서 정한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다만 2억 원의 손해배상금은 과도해 공서양속(공공의 질서와 선량한 풍속)에 반하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1000만 원만 주라”고 판결했다.



    일반적으로 약혼 당사자 일방이 자신의 학력, 경력, 직업 등 혼인 의사를 결정하는 데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을 속인 경우 문제가 되는데, 이러한 경우 상대방에게 사실대로 고지할 신의성실의 원칙상 의무 위반을 근거로 약혼 해제를 인정하며, 예물은 반환해야 하고 재산상 손해와 위자료 등의 손해배상청구권도 인정하고 있다(대법원 94므1676, 1683 판결).

    이번 사건에 대한 판결은 A씨의 임신 경위, B씨의 혼인 약정서 작성 경위 등에서 B씨에게 혼인할 진정한 의사가 없었다고 판단해 약혼 성립 자체는 인정하지 않고, B씨가 미성년자인 A씨를 임신시킨 점과 임신중절수술을 하게 한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책임만 인정한 바, 비록 혼인하겠다는 취지의 약정서를 작성했다고 해도 혼인할 진정한 의사가 없으면 약혼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결로서 그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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