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이 5월 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10년 넘게 이어진 형제의 난
7월 10일 조 전 부사장의 강요미수 혐의를 다투는 2차 공판이 열렸다. 조 전 부사장은 2013년 “내가 소유한 비상장주식을 고가에 매수하지 않으면 위법 행위가 담긴 자료를 검찰에 넘기겠다”고 조 회장을 협박한 혐의를 받는다. 당초 조 회장이 2017년 3월 조 전 부사장을 강요미수 혐의로 고소했지만, 2016년 해외로 나간 조 전 부사장의 행방이 묘연해 기소중지된 상태였다. 이 사건 수사는 조 전 부사장이 2021년 귀국하면서 다시금 궤도에 올랐다.조 전 부사장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나아가 공소시효가 지난 만큼 기소 자체가 무효라는 입장이다. 조 전 부사장 측은 이날 재판부에 “압수수색 영장을 봐야 의견을 낼 수 있으니 구체적인 증인신문 일정은 추후에 정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앞서 5월 3일 열린 1차 공판에서는 “공소사실은 2013년 2월과 7월에 있었던 일이라 이미 공소시효도 지났다”고 주장했다. 조 전 부사장은 이날 법정에 출석하며 “(형에게) 죄 짓지 말자고 얘기한 것밖에 없는데 그게 죄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행위를 강요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두 형제의 갈등은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시작은 조 전 부사장이었다. 재계에 따르면 그는 2011년 효성그룹 계열사에 대한 감사를 주도한 뒤 내부 비리를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 조석래 명예회장, 형 조현준 회장과 관계가 틀어졌고 감정의 골도 깊어졌다. 결국 그는 2013년 효성 부사장직을 사임했으며 조 명예회장이 물려준 효성 주식을 1300억 원에 처분하기에 이르렀다. 이듬해 조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고발하면서 효성가의 갈등은 돌이킬 수 없게 됐다. 이른바 ‘형제의 난’이 본격화된 순간이다.
‘형제의 난’ 초기만 해도 조 전 부사장에 대한 여론이 나쁘지 않았다. 그에게 ‘재벌가의 이단아’라는 꼬리표를 붙이며 내부 고발을 비판하는 여론도 있었지만 ‘정의의 사도’로 바라보는 시선도 적잖았다. 조 전 부사장의 변론을 맡았던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이 박근혜 정부에서 승승장구하는 등 그를 둘러싼 상황도 유리하게 흘러갔다. 우 전 수석은 2014년 5월 대통령민정비서관에 임명되면서 변호인을 사임했지만 이후로도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결국 조 회장은 2020년 대법원에서 횡령 등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됐다.
박수환 게이트로 국면 전환
2016년 8월 26일 박수환 당시 뉴스커뮤니케이션 대표가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 로비 의혹과 관련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박 전 대표는 조 전 부사장이 법적 다툼을 벌일 때 언론 홍보를 담당했다. 조 전 부사장이 가족과 다툼을 벌일 때도 행동 지침 등을 자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조 전 부사장이 자문을 받은 시기가 효성가를 상대로 대대적인 고발·고소를 한 시기와 맞물려 의구심을 더했다.
결국 박 전 대표는 구속됐고, 조 전 부사장은 본인 연루설이 언급되는 상황에서 출국했다. 당시 조 전 부사장의 출국을 두고 박수환 게이트 불씨가 번질까 우려한 조치가 아닌가라는 시각이 많았다. 조 전 부사장이 해외 도피에 나섰다는 의혹이다. 실제로 이듬해 조 회장이 조 전 부사장을 강요미수 등 혐의로 고소했지만 조 전 부사장이 해외에 머물고 있어 수사가 제대로 될 수 없었다. 결국 검찰은 조 전 부사장이 귀국할 때까지 해당 사안을 기소중지했다.
특이한 점은 조 전 부사장의 귀국 시점이다. 조 전 부사장은 2021년 귀국해 수사를 받았다. 이를 두고 강요미수 공소시효(7년)를 염두에 둔 행보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형제의 난’이 2013년 전후로 벌어진 만큼 조 전 부사장이 2020년 공소시효가 완성됐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실제로 조 전 부사장 측은 첫 공판일부터 공소시효 도과를 주장하고 있다.
더 나아가 ‘형제의 난’ 당시 함께했던 박 전 대표까지 감안한 행보가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현행법상 변호사법 위반에 대한 공소시효 역시 7년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조 전 부사장을 기소하면서 박 전 대표도 공갈미수 및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조 회장 측에 조 전 부사장의 효성 계열사 지분을 고가에 매입할 것을 요구한 혐의다. 현행법상 변호사가 아닌 사람이 대가를 받고 법률사무를 다루는 것은 위법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검찰 수사를 피해가지 못했다. 변호사법 위반죄는 특정 상황에서 포괄일죄로 취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행위가 끝난 시점부터 공소시효가 기산된다. 법조계에 따르면 공소장에는 박 전 대표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조 전 부사장을 위해 법률사무를 처리하고 금전을 수수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경우 기산점이 2016년이 되면서 박 전 대표의 공소시효가 2023년으로 늘어난다. 박 전 대표 입장에서는 조 전 부사장의 이른 귀국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는 부분이다. 조 전 부사장이 조기 귀국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중앙지검 조사2부는 2017년 11월 17일 효성 본사 및 효성 관계사 4곳, 관련자 주거지 4곳을 압수수색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마포구 효성 본사. [동아DB]
조현문-박수환 갈라졌나
오랜 기간 한배를 탔던 두 사람이 갈라선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박 전 대표가 재판에서 불리해질 가능성도 생겼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공갈미수 공소시효는 10년이다. ‘형제의 난’이 본격화됐던 2013년을 기점으로 기산하면 공갈미수 사안 역시 2023년 공소시효가 만료된다. 조 전 부사장이 귀국 시점을 2년만 늦췄다면 박 전 대표 역시 공갈미수와 변호사법 위반에 대해 모두 공소시효 도과를 주장할 수 있었다.조 전 부사장은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유학하고 미국 변호사로 활동한 법률 전문가다. 국내 법무법인 고문 변호사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만큼 한국 법률사무에도 해박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자신이 조기 귀국할 경우 박 전 대표가 공소시효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을 개연성이 낮아 이 같은 행보에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박 전 대표는 공갈미수 및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박 전 대표 측 변호인은 7월 10일 “공갈에 해당하는 행위에 관여한 바 없다”고 주장했다.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정상적인 계약에 따라 변호사 업무와 관련 없는 부분에 대한 대가를 지급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조 전 부사장에 대한 다음 공판은 8월 21일 열릴 예정이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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