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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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폭력 피해자는 죽음 예감하며 피가 마르는데, 경찰은 그 긴박함 몰라”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연구관 “피해자가 원하는 건 단 하나, 가해자와의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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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6-04-18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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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연구관. 김승환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연구관. 김승환

    “피해자는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 그런데 경찰은 그 긴박함을 전혀 모르고 있다. 경기 남양주 스토킹 살인 사건만 봐도 그렇다. 가해자가 성범죄 전력으로 전자발찌를 차고 있는데도 경찰은 그가 피해자에게 접근하는지 여부를 감시할 조치조차 제대로 취하지 않았다. 법조인들은 현 체계로는 교제폭력 피해자를 지킬 수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연구관의 말이다. 사건을 보자. 김훈(44)은 3월 14일 경기 남양주시에서 과거 사실혼 관계였던 A 씨(27)를 살해했다. 직장 근처에서 기다렸다가 운전석 창문을 깬 뒤 준비해온 흉기를 여러 차례 휘둘렀다. 과거 성범죄로 두 차례 징역형을 살았던 김훈은 전자발찌를 차고 있었고, A 씨에 대한 접근금지 조치를 받은 상태였다. A 씨는 경찰에 김훈을 6차례 신고한 데다 스마트워치도 소지한 상태였지만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미국에선 친밀한 관계 폭력 의무체포

    ‘2025년 여성폭력통계’에 따르면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살인 및 치사 사건 검거자는 219명에 이른다. 허 연구관은 “경찰의 안이한 대처가 교제폭력 피해자를 죽음으로 내몬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7년부터 국회입법조사처에서 약 100편의 보고서를 통해 여성·가족·청소년 관련 입법에 기여했고, 최근 교제폭력 위험성을 고발한 책 ‘이처럼 친밀한 살인자’를 펴냈다.

    가해자는 전자발찌, 피해자는 스마트워치를 차고 있었는데도 피해자가 죽었다.

    “전자발찌는 법무부, 스마트워치는 경찰에서 각각 관리한다. 경찰은 피해자가 자기 차량에서 발견한 위치추적장치 관련 감정이 마무리되면 가해자를 구금하려 했다고 한다. 그게 말이 되나. 스마트워치도 현재로서는 세금 낭비다. 현 기기로는 피해자가 몇 층에 있는지 알 수 없다. 가해자가 이미 피해자 동선을 다 파악하고 집 앞에서 기다리는데 그때 경찰에 신고하면 뭐 하나. 스토킹 범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대책을 만들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청와대는 스토킹 고위험 가해자의 경우 7일 안에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등도 필수적으로 신청하게 하는 원칙을 세웠다.

    “문제는 경찰이 고위험군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현재 경찰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 피해가 발생해야 고위험군으로 분류한다. 비신체적 학대, 눈에 띄지 않는 신체적 학대는 포함되지 않는다. 교제폭력에서는 이런 사건이 많다. 결국 2024년 거제에서 11번, 지난해 경기 동탄시에서 9번이나 스토킹 혐의자를 신고했던 피해자가 죽음을 맞았다.”

    수차례 신고에도 왜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나.

    “경찰은 교제폭력 신고가 들어오면 피해자에게 사건을 접수할지부터 물어본다. 가정폭력처벌법 적용을 받는 혼인관계에서 발생한 사건이 아닌 경우 반의사불벌죄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교제폭력 피해자는 대부분 현장에 가해자와 함께 있는데 사건을 접수한다고 할 수 있겠나. 게다가 가해자는 대부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친절하게 경찰을 대한다. 그렇게 경찰이 돌아가고 나면 피해자는 좌절하고, 가해자는 더 의기양양해진다.”

    현장에서 어떤 조치가 이뤄져야 하나.

    “교제폭력 피해자가 원하는 건 가해자와의 분리, 단 하나다. 이들은 자신이 죽음과 가까워진다는 걸 예견한다. 그런데 잠정조치에 따른 접근금지 명령 기간은 9개월에 불과하다. 법원까지 가도 교제폭력으로는 중한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러니까 가해자들이 공권력에 겁먹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미국에서는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에 대해 의무체포 제도를 시행한다. 미국, 영국, 호주의 경우 스토킹 가해자에게 영구적인 접근금지 명령도 내릴 수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강압적 통제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무겁게 인식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은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더라도 친밀한 관계 속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상대방에게 학대당하고, 맞아 죽는 건 인간이 정말 겪지 말아야 할 일 중 하나다. 또 연인 관계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의 모든 것을 안다. 평소 어디에 있는지, 뭘 하는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등등. 그런 상대방으로부터 신체적·정신적 폭력을 당한다는 건 너무 엄청난 공포다.”

    책을 통해 연인 관계에서의 ‘강압적 통제’ 위험을 강조했다.

    “영국은 2015년 물리적 폭력 없이 상대방을 정서적·심리적으로 조종하는 강압적 통제까지 범죄로 규정했다. 이는 교제폭력 피해자 사망 사건을 검토하면서 강압적 통제가 물리적 폭력과 살인까지 이어지는 중대 범죄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강압적 통제가 이뤄지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

    “상대방에게 명령과 지시를 받고 이를 보고하는 구조가 반복된다. 무엇을 입었는지, 어딜 가는지, 누굴 만나는지 등을 감시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유하자고 얘기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서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킨다. ‘너를 사랑해서’ ‘너를 아껴서’라는 단서를 붙이지만, 만약 상대방이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면 모욕적인 비난이나 폭력으로 이어진다.”

    그런 상황을 견디기 쉽지 않을 텐데.

    “‘왜 나쁜 남자를 좋아하냐’ ‘폭력적인 사람을 왜 알아보지 못하냐’ 보통 교제폭력 피해자에게 붙는 세간의 의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친절을 가장해 교묘하게 접근한다. SNS 등으로 취향을 파악해 환심을 사기도 한다. 만일 통제를 눈치 채고 떠나려 하면 상대방이 사과와 회유로 용서를 구한다. 사회적으로 연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사랑’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문제라고 본다. 가령 매일 차로 출퇴근을 시켜주는 연인이 있다고 해보자. 이건 위험한 통제 신호지만 친구들에게 말하면 ‘운 좋다’는 얘기를 듣지 않겠나.”

    또 연인 관계에서 주의해야 할 행동 패턴이 있나.

    “스토킹과 비치명적 목졸림이다. 살인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행동 패턴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목조름은 외부로 드러나는 상처가 없더라도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한 통제권을 드러내는 행위다. 해외에서는 친밀한 관계에서의 목조름을 별도 조항으로 규정해 중범죄로 다룬다. 한국에서는 강압적 통제, 목졸림 같은 위험 신호가 입법 공백 영역에 놓여 있다. ‘가정의 평화와 안정 회복’을 법의 목적으로 삼고 있는 가정폭력처벌법도 구시대적이다. 이를 전면 개정해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위험을 재규정하고, 공권력이 지금이라도 여성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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