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라리아를 옮기는 아노펠레스 모기. GETTYIMAGES
이후 전략이 수정됐다. 사람들에게 모기장을 보급하고, 기피제 사용을 권장했다.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모기 동향을 파악해 신속하게 대응했다. 말라리아를 전파하지 못하는 유전자 변형 모기 개발, 모기 천적 복원 같은 노력도 진행했다. ‘박멸’ 대신 ‘공존 속 통제(control)’를 모색한 것이다.
최근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2021년 미국 뉴욕은 빈대 공포로 들끓었다. 빈대가 지하철, 호텔, 심지어 백화점에까지 침투한 것이다. 시민들이 불안에 휩싸이자 뉴욕시장은 즉각 ‘전쟁’을 선포하고 대규모 방역 작전을 지시했다. 그러나 결과는 다시 실패였다. 빈대는 퇴치제에 적응했고, 방제 비용만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결국 빈대 사태를 가라앉힌 건 다층적 관리와 겨울철 온도 변화 등이었다. 도시 환경이 바뀌고 천적이 회복되면서 ‘자연의 자정력’이 작동하자 문제가 서서히 풀렸다.
‘균형 잡힌 개입’ 통한 지속가능한 보건 전략
생태계를 지배하려는 인간의 시도는 늘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는다. 살충제는 모기와 빈대뿐 아니라 생태계를 파괴하고, 더 강한 적응력을 가진 종을 만들어낸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자연은 인간보다 한 수 위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통제는 일시적이지만, 자연의 회복력은 근본적이다.그렇다고 인간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균형 잡힌 개입’이 필요하다. 병원체 전파를 최소화하면서 생태계를 해치지 않는 방법, 즉 ‘지속가능한 보건 전략(sustainable health strategy)’이 그것이다. 기후변화와 감염병이 얽힌 시대에 말라리아나 뎅기열 같은 질병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이때 해법은 더 많은 살충제가 아니라 생태를 이해하는 과학이다. WHO의 실패가 인류에게 준 교훈은 이것이다. “자연을 이기려 하지 말고, 이해하라.”
이제 보건과학도 ‘정복 시대’를 지나 ‘공존 시대’로 가야 한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려 한 순간, 자연은 언제나 더 큰 방식으로 반격해왔다. 그 싸움에서 이긴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