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년 5월 홍준표 당시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검사. 홍 전 시장은 ‘슬롯머신 사건’ 수사 이후 ‘모래시계 검사’로 이름을 알렸다. 동아일보DB.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검사 홍준표(사법연수원 14기)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서울지검 남부지청(현 서울남부지검) 특수부 재직 시절 ‘5공 비리 수사’를 맡기 시작하면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외조카인 김영도 씨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한 것을 시작으로 전 전 대통령의 친척이 권력을 동원해 노량진 수산시장을 강탈했다는 의혹에 칼을 들이댔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의 형 전기환 씨와 청와대·안기부 고위 관계자들을 줄줄이 구속했다. 홍 검사는 당시 권력을 겨냥하지말라는 검찰 안팎의 만류를 뿌리친 것으로 알려졌다.
좌천성 인사로 내려간 광주지검에서는 국제PJ파의 보스 여운환과 그 조직원들을 일망타진했다. 그 과정에서 홍 전 시장의 집으로 식칼과 과도 세트가 배달돼 협박을 받은 일화가 유명하다.
‘모래시계 검사’부터 4번의 대권 도전까지
1993년 서울지검으로 돌아온 홍 전 시장은 ‘슬롯머신 사건’을 맡아 그야말로 ‘큰 일’을 낸다. 강력부 검사로 있으면서 ‘슬롯머신 업계 비호세력 사건’을 수사하면서 ‘6공 황태자’로 일컬어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처남 박철언 전 의원을 전격 구속한 것이다. 1995년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TV 드라마 ‘모래시계’가 최고 64.5%라는 기록적인 시청률로 화제를 모아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당시 운동권에서 “판사는 이회창처럼, 검사는 홍준표처럼, 변호사는 노무현처럼”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홍 검사는 국민적 지지와 인기를 받았다.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를 시작한 홍 전 시장은 1996년 2월 신한국당에 입당했다. 4월 치러진 15대 총선 서울 송파갑에서 당선된 뒤 1999년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자진사퇴했다. 이후 서울 동대문을로 지역구를 옮겨 16대부터 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김홍걸 씨의 미국 은행 입출금 내역을 폭로해 ‘최규선 게이트’의 포문을 열었다. 2005년에는 이중국적자가 병역을 마치지 않으면 한국 국적을 포기하도록 한 ‘홍준표법’(국적법 개정안)의 통과를 이끌어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2007년 5월 당내 대선 경선 참여 의사를 밝힌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김영삼 전 대통령 자택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20대 대선에서는 검사 후배인 윤석열 전 대통령(사법연수원 23기)과 국민의힘 경선에서 맞붙었다. 함께 출마한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전 장관에는 앞섰으나 ‘별의 순간’을 맞이한 윤 전 대통령에게 결국 후보 자리를 내줘야 했다. 하지만 ‘무야홍’(무조건 야당 후보는 홍준표)이라는 별명을 얻는 등 2030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그의 마지막 도전인 21대 대선 국민의힘 경선에서 ‘YS키즈’로 15대 국회에 함께 입성한 김문수 전 장관에 밀려 결국 정치계에서 은퇴하게 됐다.
‘독고다이’의 빛과 그림자
홍 전 시장은 위기가 찾아올 때면 보수의 심장인 영남을 찾아 재기에 성공했다.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경남 합천, 대구 등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홍 전 시장에게 PK, TK 지역이 정치적 버팀목이 된 것이다. 19대 총선에서 낙선했을 때 2012년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으며,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무소속으로 대구 수성을에 출마해 5선 의원이 됐다. 윤 전 대통령에게 밀려 20대 대선 출마가 좌절되자 2022년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으로 출마해 당선됐다.홍 전 시장은 ‘강골 검사’ 정신을 이어받아 정계에 입문한 뒤 특정 계파에 메이지 않는 ‘독고다이’(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일본말) 면모를 보였다. 한나라당 계파갈등이 가장 극심한 시절에도 ‘친박’(친 박근혜)이나 ‘친이’(친 이명박)에 속하지 않았고 정치에 몸담는 내내 자신을 아웃사이더로 규정했다. 특유의 호탕한 화법으로 ‘홍카콜라’(홍준표+코카콜라)라는 별명도 얻었다. 민감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 탓에 ‘막말’ 이미지가 형성되기도 했지만 그만큼 대중적 호응도 많이 받았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4월 29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21대 대선후보 3차 경선 진출에서 고배를 마시고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 단상을 내려오고 있다. 동아일보DB
“43년 전 사법고시에 합격해 검사로 출발한 것이 내 인생 1막이었다면 30년 전 신한국당에 들어와 정치를 시작한 것은 내 인생 2막이었습니다. 세상사 잊고 푹 쉬면서 내 인생 3막을 다시 시작하고자 합니다.”
5월 5일 미국행을 알리며 밝힌 소회다.
“남은 세월은 더 열심히 생각하고 더 성실히 살고 더 충실하게 인생을 즐기고 검사가 아닌, 저격수가 아닌, 꿈꾸는 로맨티스트로 세상 사람들에게 기억되기를 바라면서 이 작은 수필집을 내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에게 주고자 한다.”
20년 전 홍 전 시장이 ‘나 돌아가고 싶다’라는 제목의 에세이 서문으로 쓴 문장이다. 인생 3막을 열겠다고 선언한 홍 전 시장은 검사, 정치인의 삶을 떠나 ‘꿈꾸는 로맨티스트’가 될 수 있을까.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안녕하세요. 문영훈 기자입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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