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을 폭력적으로 억압했던 사복 경찰 조직, 이른바 ‘백골단’ 모습. [동아일보 DB]
# 백골단은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1980년대 부활한다. 전두환 군사정권에서 시위대를 막던 사복경찰이 청카바(블루진)에 무릎보호대, 흰색 헬멧을 착용해 ‘백골단’으로 불렸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을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연행했다.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 씨가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졌고, 성균관대생 김귀정 씨도 그들의 토끼몰이 진압으로 사망했다. 그들은 신군부 독재정권의 탄압과 국가폭력의 상징이었다.
‘尹 체포 저지’ 백골단 논란
국민의힘 김민전 의원과 반공청년단(백골단)이 12월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흰색 헬멧을 쓰고 국회를 찾은 청년들은 기자회견에서 ‘반공청년단’을 조직의 공식 이름으로 정하되, 백골단은 ‘예하 부대’로 두고 대통령 관저 주변에서 감시활동을 하는 일종의 자경단으로 활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은 국민의힘 김민전 의원이 연결한 것이다.
김 의원은 1984년 서울대 외교학과에 입학했다. 같은 해 언어학과에 입학한 서울대 동기인 박종철 열사는 1987년 민주화운동을 하다 경찰에 붙잡혀 물고문을 받다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김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를 막겠다며 백골단의 이름과 모습을 그대로 따라한 청년 단체를 국회로 끌고 들어왔다. 국회의원만이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국회 기자회견장에 자리를 잡아주고 마이크를 들게 했다.
김 의원은 백골단이 우리 현대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용어인지 몰랐을까?
김 의원은 논란이 불거지자 페이스북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윤 대통령 지지 청년들의 입장을 적극 수용해 기자회견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기자회견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배경을 파악하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백골단, 지금도 소름끼친다”
‘백골단에 대해 잘 몰랐다’는 취지의 김 의원 해명에 대해 같은 시기에 서울대를 다녔던 여야 정치인들은 대부분 “잘 몰랐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대 정치학과 83학번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1984년 학원자율화 조치로 경찰이 학교 안에 상주하는 일은 없어졌지만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면 수백 명의 백골단이 학교 안까지 쫓아 들어와 시위를 벌인 학생들을 상대로 무자비한폭력을 행사했다”며 “수시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김 교수가 백골단을 모를 수가 없다”고 말했다.김 의원 보다 한 해 빠른 83년에 서울대에 입학한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백골단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박 의원은 “1987년까지도 서울대 마로니에 광장에 백골단이 수시로 들어왔고 그들의 이단옆차기에 갈비뼈가 부러진 친구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며 “백골단에 쫓기다 넘어진 여학생의 목을 발로 짓밟고 서 있던 백골단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와 정진욱 의원,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 정혜경 진보당 의원,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가 1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서 국민의힘 김민전 의원 제명촉구 결의안을 제출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한편 김정현 반공청년단장은 13일 성명을 통해 “백골의 정신은 감추고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워하고 계승해야 할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이 반공청년단 지도부의 결론”이라며 “백골단의 이름을 유지한 채 활동을 계속 이어가기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김 단장은 부정선거 등을 주장하는 유튜브를 운영 중이다.
길진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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