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 선거에서 보수 6번·진보 5번 당선
1월 17일 총선을 84일 앞두고 만난 서울 영등포을 지역구 주민들은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정치 성향이 뚜렷하지 않은 곳) 유권자로서의 표심을 드러냈다. 영등포을은 서울의 부촌 중 하나인 여의도동과 중산층·서민이 많이 사는 대림·신길동이 같은 지역구로 묶여 있어 선거마다 역동적인 표심 변화를 보였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치러진 11번의 총선과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영등포을 민심은 국민의힘 전신인 보수 정당 후보를 6번, 민주당계 정당 후보를 5번 선택했다. 최근 19~21대 총선 결과를 보면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전 의원이 재선에 성공한 후 현역인 김민석 의원이 당선돼 민주당계가 내리 3선을 했다. 다만 김민석 의원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로 인해 치러진 2002년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이 당선된 후 17·18대 총선에서 내리 승리한 것에서 드러나듯 여의도동을 중심으로 한 보수 표심도 강한 곳이다.지난 총선에서 ‘돌아온 영등포의 아들’ 김민석 의원을 택한 지역 민심은 어떨까. 신길동에서 태어난 김 의원은 1996년 15대 총선 영등포을에서 32세 젊은 나이로 첫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재선까지 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전국학생총연합 의장을 지낸 ‘운동권 기수’이자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이력으로 주목받았다. 2002년 대선에서 정몽준 후보 캠프로 이적했다가 전통적 지지층으로부터 비판받으며 한동안 야인 시절을 보냈다. 21대 총선에서 김 의원은 50.2% 득표율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박용찬 후보(44.3%)를 따돌리고 다시 국회에 입성했다.
17일 기자가 찾은 여의도동 아파트 단지들에는 “재건축정비사업 사업시행자 지정 승인” “정비계획 결정 서울시 심의 통과” 등 정비사업 진행과 관련된 현수막이 여럿 걸려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에게 지역 현안을 묻자 대부분 “빠른 재건축 추진이 최우선”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여의도동 아파트에서 약 40년 살았다는 한 주민은 “주차 공간이 너무 좁아서 퇴근 시간마다 한바탕 난리가 난다”고 애로를 토로했다. 실제로 이 일대 단지에는 “먼저 온 사람은 안쪽부터 주차하라” “주차질서 생활화”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이 주민은 “여의도 아파트에 산다고 다 갑부가 아니고, 그저 오래전에 입주해서 살다보니 값이 오른 것”이라며 “주민 편의를 위해 재건축을 추진하는 것이니만큼 정부나 국회가 많이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의도동의 한 60대 주민은 “김민석 의원이 영 못마땅하다”고 말했다. “김 의원이 영등포을에서 총 3선을 지낸, 지역 출신 거물 아니냐”고 묻자 그는 “서울 여느 지역이 그렇듯 영등포도 출신보다 지금 당장 지역구에 어떤 공약을 내서 실현했는지가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며 “김 의원이 이번 임기에 지역 현안인 재건축 촉진을 위해 어떤 실질적 노력을 했는지 지역구민으로서 잘 체감이 안 돼서 국힘(국민의힘) 쪽에 표를 줄까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의도의 40대 주민은 “이제껏 선거에서 주로 보수 정당을 뽑았는데, 이번에는 현 정부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민주당을 뽑을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신길1동에서 만난 유권자 상당수는 “여야 다 똑같은데 투표는 해서 뭐하느냐” “경기(景氣)도 너무 안 좋고 먹고사느라 바빠서 정치에 관심 없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이곳에서 20년 동안 살며 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한 60대 심 모 씨는 “요즘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어서 공인중개사들은 너무 힘들다”면서 “신길동 일대는 여의도에 비해 개발이 더딘 편이니, 지역구 의원으로 뽑힌 사람이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신길동에는 빌라촌이 많아 주차난이 극심한데 인근에 오랫동안 공터로 방치된 곳을 차라리 주민 주차장으로 썼으면 좋겠다”며 “이처럼 사소해 보여도 주민 생활에 중요한 지역 현안을 여든 야든 총선 때 후보들이 챙겼으면 한다”고 했다.
“여야 다 똑같은데 투표는 해서 뭐하느냐”
최근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이 출사표를 던지면서 영등포을 정가도 들썩이고 있다. 1월 18일 기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영등포을 예비후보자는 국민의힘 박 전 장관과 박용찬 영등포을 당협위원장, 민주당 양민규 전 서울시의회 의원 등 3명이다. 박 전 장관은 1월 11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올린 글에서 “기득권이 되어버린 운동권 세력의 낡아 빠진 이념 공세와 무조건적 트집 잡기는 대한민국 발전의 걸림돌이 되어 버렸다”며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놓고 야당의 기득권 운동권 세력과 정면승부를 펼쳐나갈 것”이라고 예비후보 등록의 변을 밝혔다. ‘운동권 세력과 정면승부’는 현역 김민석 의원과의 대결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박 전 장관은 외무고시, 사법시험에 모두 합격해 외무부 국제경제국 사무관과 서울중앙지검 검사를 지냈다. 부산 북·강서갑에서 재선을 지냈고 윤석열 정부 들어 국가보훈처장과 초대 국가보훈부 장관을 역임했다. 김민석 의원은 SNS를 통해 “누가 되었건, 상대보다는 국민과 주민을 바라보고 지금까지처럼 정책과 비전으로 나아가겠다”며 “용산은 이념전쟁을 바라지만 국회 1번지 영등포는 정책비전으로 화답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장 여권에서도 반발이 나왔다. 국민의힘 박용찬 영등포을 당협위원장은 자신의 SNS 계정에서 박 전 장관을 향해 “정정당당 아름다운 경선을 통해 멋진 승부를 펼쳐보자”면서도 “박 전 장관의 ‘험지 출마’ 발언은 자신의 잇따른 ‘지역구 바꾸기’를 정당화하기 위한 교묘한 프레임 설정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날을 세웠다.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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