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칼을 빼 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의 2차 발사를 자축하던 북한이 돌연 미국령인 괌(Guam) 포위사격 계획을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북한의 잇단 도발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금까지 전 세계가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이례적인 강성 발언을 던지자, 이에 반박하듯 8월 9일 새벽 2시 전격적으로 미사일 발사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북한은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명의로 “미제의 핵 전략폭격기들이 틀고 앉아 있는 앤더슨 공군기지를 포함한 괌도의 주요 군사기지를 제압·견제하고 미국에 엄중 경고 신호를 보내기 위해 5월 14일 시험발사했던 화성-12형으로 ‘포위사격’을 하겠다”고 밝혔다.
괌 공격은 미·소 냉전 시절에도 없던 전략 미스
북한이 괌을 타격하겠다고 밝혔는데,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군사전략에서 괌이 갖는 의미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1898년 미서전쟁(America-Spanish War)을 통해 미국이 괌을 점령한 이후 괌은 태평양과 인도양을 잇는 중간 기착지로서 미국에게 전략적 유연성을 제공하는 핵심 기지였다. 특히 괌 동쪽 앤더슨 공군기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본토를 폭격한 B-29의 전진기지였고,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폭격기 ‘에놀라 게이’가 이륙하던 곳도 괌 인근 티니언 섬이었다. 이후 괌은 미국의 핵심 전진기지가 됐고, 2001년 9·11테러로 시작된 대테러전쟁에서도 폭격기들의 주요 작전기지로 기능했다.
북한에게 괌은 공포의 대상이다. 북한을 압박하는 B-52나 B-1 전략폭격기가 전진 배치된 곳이 앤더슨 공군기지이기 때문이다. 괌 아프라항은 미 해군 원자력잠수함(원잠)이 전진 배치된 곳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북한 도발에 대비해 니미츠급 항공모함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운용하는 오하이오급 전략 원잠이 입항하기도 했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 본토 공격에 앞서 괌 공격 능력을 갖추고자 탄도미사일 개발에 집착했다. 첫 주자는 최대 사거리 3500km로 평가되는 ‘무수단 미사일(화성-10형)’이었다. 2006년부터 실전배치됐다고 하지만 북한이 시험발사에 성공한 것은 지난해 6월 22일이었다. 그리고 올해 5월 14일 북한은 사거리가 늘어난 탄도미사일 ‘화성-12형’을 선보였다. 화성-12형은 500~650kg의 소형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고, 사거리는 3700~6000km로 평가받는다. 무엇보다 화성-12형은 최대 속도가 마하 18(시속 약 2만2000km)을 넘어 무수단보다 빠른 공격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바로 이 화성-12형으로 괌 포위사격을 하겠다고 밝혔다.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려고 미사일 발사 경로까지 발표했는데, 북한 주장에 따르면 화성-12형은 일본 시마네현과 히로시마현 상공을 통과해 사거리 3356.7km를 1065초 동안 비행한 후 괌 주변 30〜40km 해상 수역에 탄착할 것이라고 한다. 북한 전략군은 8월 14일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에게 구체적인 사격계획을 보고했다. 마치 당장 미사일을 쏠 것만 같던 북한은 “어리석고 미련한 미국놈들의 행태를 좀 더 지켜볼 것”이라며 한 발 빼는 스탠스를 취했다. 하지만 “우리의 자제력을 시험하면서 조선반도(한반도) 주변에서 위험천만한 망동을 계속 부려대면 이미 천명한 대로 중대한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협박을 이어갔다. 8월 21일부터 시작되는 한미연합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UFG)’과 잇단 B-1B 폭격기의 한반도 출동을 견제하겠다는 속셈이다.
실제로 북한이 괌을 향해 미사일을 쏘아 올리면 어떻게 될까. 먼저 북한이 주장하는 포위사격이 실제로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그동안 시험발사 결과만 보면 화성-12형이 괌까지 날아갈 수 있다 해도 문제는 정확성이다. 북한의 화성-12형 시험발사는 4차례 진행된 것으로 보이지만, 정상적인 각도로 최대 사거리를 발사해 정확도를 입증한 적은 없다. 다만 북한의 ICBM 기술력이 1960년대 초반 옛 소련 기술과 유사하다고 가정하면 미사일의 정확성을 표현하는 ‘원형공산오차’(CEP·발사된 유도탄의 절반 이상이 명중하는 원의 반경)는 1~3km가량으로 평가된다. 북한 주장대로 문제없이 발사한다 해도 괌 영해 밖에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미국이 이른바 북한의 ‘포위사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전혀 다른 얘기다. 발사각이나 속도로 보면 괌 본토 사격과 괌 인근 포위사격을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미사일이 자국 영토에 떨어질 위험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는 미국에 대한 공격행위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대치 중인 국가의 영토 인근에 미사일을 시험발사한다는 발상은 과거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오히려 ‘능력’ 있는 양국은 서로를 도발하지 않으려고 주의했을 정도다. 북한의 행동은 핵전략의 메시지 전달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실수로 보인다.
미국 미사일방어망 뚫을 확률은 0.0001%
그러나 이런 실수가 가져올 결과는 처참하다. 미국은 북한의 화성-12형 발사를 핵미사일 발사로 간주한다. 이는 괌 정부가 현지 주민에게 배포한 ‘주민 비상행동수칙’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수칙은 미사일 화염을 보지 말라거나, 대피소에 24시간 머무르라거나, 노출 시 겉옷을 벗어버리라는 등 ‘핵 공격 시 생존법’을 알려주고 있다. 북한이 시험발사라고 하든 아니든, 괌을 향한 미사일 발사를 미국 영토에 대한 핵공격으로 간주하고 대응한다는 의미다.
미국은 냉전 이후 북한 같은 ‘불량국가’가 자국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것을 예상했다. 소련이 해체된 이후에도 꾸준히 미사일방어(MD)체계를 개발했고, 특히 탄도미사일을 종말 단계에서 요격하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는 2015년부터 괌에 영구배치 중이다. 괌 사드 포대는 날아오는 화성-12형을 고도 40~150km에서 요격한다.
물론 최고 요격속도가 마하 14(시속 약 1만7000km)로 알려진 사드가 최고 속도 마하 20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되는 화성-12형을 정확히 요격할지는 의문이다. 또한 사드를 돌파하고자 기만체(decoy·요격미사일이 목표물로 오인하게 하는 물체)를 사용하는 등 화성-12형도 그 나름의 방어책을 활용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그러나 미국은 사드 성능을 꾸준히 향상시키고 있고, 7월 30일 알래스카에서 중거리미사일 시험요격에 성공한 바 있다. 조지 차퍼로 괌 국토안보 고문이 “북한 미사일이 괌에 배치된 사드 방어층을 뚫을 가능성은 0.0001%”라고 자신감을 내비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물론 사드 하나만 믿고 있을 미국이 아니다. 미 해군 이지스 순양함과 구축함은 ‘SM-3’라는 또 다른 탄도탄 요격미사일을 운용한다. SM-3는 사드보다 더 높은 고도(250~500km) 상공에서 요격할 수 있어 괌보다 전방에 배치돼 미사일 위협을 탐지, 요격한다.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 포대 X밴드 레이더도 북한 미사일 발사를 감지할 수 있지만, ‘요격 모드’로 설정돼 한계가 있다. 오히려 일본 샤리키와 교가미사키에 배치된 X밴드 레이더는 전방 감시 용도로만 쓰여 북한 미사일 발사 직후 방향과 각도를 추적할 수 있다.
요격미사일로 막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미국의 미사일방어 작전은 △적극방공 △소극방공 △공격작전 △임무지휘 등 4개 분야로 구분된다. 적극방공과 소극방공은 날아오는 미사일을 직접 요격하거나 은폐와 엄폐를 통해 타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공격작전도 미사일방어 작전의 일환이다. 이런 공격작전은 적 미사일이 날아오기 전 선제타격하거나 보복타격으로 실시될 수 있다.
日 기지 스텔스, 1시간 내 평양 공격
북한이 화성-12형을 발사하기 전에 사전 제거하는 선제타격도 충분히 가능하다. 북한은 괌 포위사격을 공표하면서 발사 장소가 신포 인근이라고 넌지시 밝히기도 했다. 무수단리 등 은밀하게 미사일을 발사할 장소도 많다. 이 모든 지역을 동시 감시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미국은 5월 글로벌호크 고고도무인정찰기 5대를 일본 요코다 공군기지에 배치 완료했고, 최근 북한 미사일 발사 위협 이후 정찰위성의 감시도 집중하고 있다.
화성-12형에는 결정적 약점이 있는데, 스커드나 노동, 무수단 미사일과 달리 미사일 발사차량에서 곧바로 발사할 수가 없다. 신형 ‘백두산 엔진’의 열기로 차량이 폭발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별도로 간이발사대를 설치한 다음 발사대에 세우고 차량을 분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화성-14형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발사를 준비하는 데 대략 2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미군으로선 발사 준비를 탐지하고 제거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다.
실제 선제타격에 동원될 전력도 충분하다. 은밀하게 접근하면서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화성-12형을 타격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스텔스 전력이다. B-2 스텔스 폭격기를 동원하면 확실하지만, 괌에서 날아오는 데 2시간 걸리고 미국 본토에서는 8시간이 소요돼 적절하지 않다. 그 대신 F-22나 F-35 같은 스텔스 전투기를 활용하면 된다. F-22는 통상 일본 요코타 공군기지에 부정기적으로 전진 배치되는데, 평양까지 1시간이면 충분히 날아갈 수 있다. 지난해부터 해병대가 운용하는 F-35B는 올 1월부터 오키나와 이와쿠니 항공기지에 상설 배치됐다. 스텔스 전투기가 해외 기지에 상설 배치된 것은 F-35B가 처음이다.
스텔스 외에도 공격원잠이나 순항미사일원잠, 또는 알레이버크급 이지스구축함에서 발사되는 토마호크 미사일도 있다. 동해 공해상에서 발사할 경우 30분 정도면 목표지점을 타격할 수 있다. 발사했다 중간에 목표물이 바뀌어도 관계없다. 미군의 최신형 택티컬 토마호크(TACTOM)는 발사 후 목표를 수정할 수 있고, 목표를 찾을 때까지 상공에서 대기 비행도 가능하다. 정밀도는 1~2m급이어서 표적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다.
비록 핵전략에서는 아마추어이긴 하지만 북한도 미국의 선제타격이나 보복 응징을 계산했을 터. 따라서 북한은 괌 포위사격 계획을 밝히면서 대한민국에 대한 협박도 덧붙였다. 만약 미국이 선제타격을 하면 “서울을 포함한 괴뢰 1, 3 야전군 지역의 모든 대상을 불바다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1994년 ‘서울 불바다’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또한 “남반부(한국) 전 종심에 대한 동시 타격과 태평양작전지구의 미군 발진기지들을 제압하는 전면적인 타격을 하겠다”며 일본 측에도 협박을 가했다. 대한민국과 일본을 인질 삼아 미국을 협박하는 전형적인 ‘인질전략’이다.
북한의 협박은 전면전 위협이나 다름없다. 전면전에는 응당 전면전으로 대응해야 한다. 북한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전력은 미사일보다 역시 수도권을 겨냥한 1000여 문의 장사정포와 방사포다. 특히 최대 사거리 50~60km에 이르는 170mm ‘곡산’ 자주포와 사거리 연장탄을 쓰면 70km까지 날아가는 240mm 방사포가 핵심 전력이다. 이러한 협박이 두려워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김영삼(YS) 정부는 미국 클린턴 정부에 영변 핵시설을 폭격하지 말 것을 호소했다.
북진으로 북 정권 붕괴?
그런데 북한의 불바다 협박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먼저 북한의 장사정포, 방사포는 서울까지 날아가는 사거리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다 보니, 막상 파괴력은 떨어진다. 2010년 연평도 포격에서도 북한 방사포탄은 엄청난 화염과 파편을 일으킨 것처럼 보였지만, 건물을 관통한 경우는 드물었다. 특히 내력벽으로 구성된 건물은 뚫을 수 없었다.
또 하나는 북한은 공격만 염두에 두고 전략을 구성했다는 점이다. 한미연합군이 북진(北進)하면 이를 막을 수 있는 전력이 여의치 않다. ‘선군호’ ‘천마호’ 하면서 대규모 열병식에서 신형 전차를 자랑하지만, 재래 전력이 무너진 지 한참 됐다. 한미연합군의 북진을 막을 유일한 수단이 바로 방사포와 장사정포 전력이다. 이렇게 소중한 전력을 서울에 대한 보복공격에 다 써버리고 나면 발사 위치가 탄로나 그 전력은 초토화된다. 방사포·장사정포 전력이 없어지면 북한은 더는 유효한 방어수단이 없다. 서울이나 수도권이 제한적 피해를 입더라도 실제 전면전 국면에서는 한미연합군이 현저하게 유리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전면전 상황으로 확산돼 한미연합군이 북진하면 실제 군사적으로는 거칠 것이 없다. 북한군은 1991년 걸프전이나 아프가니스탄전쟁, 이라크전쟁의 교훈을 학습해왔기에, 한미연합군의 정밀타격 전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고 있다. 오히려 북한군은 압도적인 재래 전력에 대항하기보다 자신들의 갱도진지나 강화진지에서 머물며 한미연합군의 뒤통수를 노리는 게릴라전을 펼칠 개연성이 높다.
그런데 북한이 아무리 취약해도 한미연합군은 북진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중 관계가 악화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조중(朝中)상호방위조약은 유효하며, 중국은 북한의 군사동맹이다. 북한이 거듭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에도 연명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4월 중국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만약 한미 양국이 38선을 넘어 북한을 공격하고 북한 정권을 전복하려 하면 중국도 즉각 군사적 개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괌 포위사격 논란과 관련해서는 “북한이 먼저 괌을 공격하면 한국과 미국이 반격해도 중립을 지키겠지만, 한미가 선제타격을 하면 개입할 것”(8월 11일)이라고 발표하면서도, 여전히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해야 한다”(8월 14일)고 주장하는 등 북핵 문제 해결보다 자국 안보 이익만 추구하는 모습이다. 결국 이런 ‘중국 변수’ 때문에 한미연합군이 북한으로 진격해 정권을 무너뜨리는 상황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미국의 군사 대응 가능성이 고조되자 정작 북한은 괌 포위사격 계획에서 한 발 빼는 모습이다. 김정은은 8월 14일 전략군사령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괌 포위사격 계획을 보고받고도 이를 채택하지 않았다. 위험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한반도에서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한미 양국이 동시에 ‘북한을 때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명시적으로 표명하지는 않았다. 전쟁은 당당히 마주할 준비를 하는 자는 피하고, 피하려는 자에게 찾아오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