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칼에 짓밟힌 ‘이란의 봄’

트럼프 “이란 새 리더십 찾아야 할 때”… 군사 개입 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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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26-01-24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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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1일(이하 현지 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 서부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불타는 정부 관련 건물을 보며 환호하고 있다. 망명 반체제 단체 ‘이란 인민 무자헤딘’ 웹사이트

    1월 11일(이하 현지 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 서부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불타는 정부 관련 건물을 보며 환호하고 있다. 망명 반체제 단체 ‘이란 인민 무자헤딘’ 웹사이트

    ‘이란의 봄’이 총칼에 짓밟혔다. 이란 정부는 지난해 12월 말 시작된 반정부 시위와 진압 과정에서 3117명이 사망했다고 1월 21일(이하 현지 시간) 공식 발표했다. 당국이 내놓은 첫 사망자 집계지만, 외부 기관 추정치와는 차이가 크다.

    로이터통신은 익명을 요구한 이란 당국자를 인용해 “이번 시위로 최소 5000명이 사망한 것을 확인했다”고 1월 18일 보도했다. 해외에 기반을 둔 반체제 매체 이란인터내셔널은 사망자를 1만2000명으로 추산했고, 미국 CBS 방송은 최대 2만 명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는 관측을 전하기도 했다. 

    1월 11일 테헤란 남부 카리자크 지역 법의학의료센터에 시신들이 쌓여 있다. 이란인터내셔널은 이날 반정부 시위로 해당 영안실에 약 250명의 시신이 안치됐다고 전했다. 동아DB

    1월 11일 테헤란 남부 카리자크 지역 법의학의료센터에 시신들이 쌓여 있다. 이란인터내셔널은 이날 반정부 시위로 해당 영안실에 약 250명의 시신이 안치됐다고 전했다. 동아DB

    이번 시위의 직접적 배경은 화폐가치 하락이 촉발한 생계난이다. 외신에 따르면 이란 식료품 물가는 최근 1년 사이 60% 넘게 올랐다. 국민 3분의 1 이상의 삶이 빈곤선 아래로 떨어졌다. 정권에 협조적이던 상인과 중산층까지 거리로 나선 이유다.

    하메네이 신정체제 최대 위기

    정부가 이들을 강경 진압하자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항의’ 구호는 점차 반독재 저항으로 변했다. 이란 정부는 시위가 열흘째 이어진 1월 8일 자국 내 국제전화와 인터넷을 모두 차단해 시위대를 고립시킨 뒤 대대적인 유혈 진압에 나섰다. 이날 테헤란에서 시위 참여 여대생이 뒤통수에 총탄을 맞고 숨지는 등 시위대를 향한 총격 대부분이 눈과 머리에 집중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산’보다 ‘사살’에 목적을 둔 작전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란에서 발생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한 남성이 지난해 12월 29일 수도 테헤란 중심부의 한 쇼핑센터 인근 도로에 웅크리고 앉아 오토바이를 탄 경찰들과 대치하고 있다. 이 사진은 이란 외부에 기반을 둔 반정부 매체 이란인터내셔널이 입수해 공개한 영상을 캡처한 것이다. 동아DB

    이란에서 발생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한 남성이 지난해 12월 29일 수도 테헤란 중심부의 한 쇼핑센터 인근 도로에 웅크리고 앉아 오토바이를 탄 경찰들과 대치하고 있다. 이 사진은 이란 외부에 기반을 둔 반정부 매체 이란인터내셔널이 입수해 공개한 영상을 캡처한 것이다. 동아DB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이란 시내에 시신을 담은 가방이 수없이 놓여 있는 장면, 한 남성이 도로에 앉아 오토바이를 탄 경찰 무리와 홀로 대치하는 장면 등이 담긴 영상이 퍼져 나갔다. 이 과정에서 최소 수천 명이 사망했다는 것을 이란 정부조차 인정한 셈이다. 



    1월 18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이란 반정부 시위 지지 집회에 참여한 시민이‘1만6000명이 죽었다’고 적힌 피켓을 든 채 행진하고 있다. 뉴시스

    1월 18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이란 반정부 시위 지지 집회에 참여한 시민이‘1만6000명이 죽었다’고 적힌 피켓을 든 채 행진하고 있다. 뉴시스

    전문가들은 이번 시위가 1979년 호메이니 주도로 일어난 ‘이란 혁명’ 이후 37년째 이어진 신정(神政)체제에 균열을 일으킬 것이라고 전망한다.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1989년 호메이니 뒤를 이어 집권한 후 이슬람 원리주의를 바탕으로 강권 통치를 이어왔다. 그러나 ‘신을 대리하는 존재’를 자임하던 그의 권위는 지난해 이란이 이스라엘, 미국과의 전쟁에서 참패하며 크게 실추됐다. 이어 국민의 집단적 저항과도 맞닥뜨리게 됐다. 외신에 따르면 이란 시위대는 군부 총칼 앞에서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같은 구호를 외치고 있다.

    1월 17일 독일 쾰른에서 관련 시위에 열린 이란 반정부 시위 지지 집회에 참여한 시민이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꽃을 도로에 놓고 있다. 뉴시스

    1월 17일 독일 쾰른에서 관련 시위에 열린 이란 반정부 시위 지지 집회에 참여한 시민이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꽃을 도로에 놓고 있다. 뉴시스

    현재 세계 각국에서는 이란 민주화를 지지하고 정권 탄압을 규탄하는 시위가 확산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월 10일 SNS 계정에 “이란은 어쩌면 과거 어느 때보다 자유를 바라보고 있다. 미국은 도울 준비가 돼 있다”는 글을 올렸다. 언론 인터뷰에서 “이제 이란의 새로운 리더십을 찾아야 할 때”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군이 군사자산을 중동 쪽으로 이동 중인 사실도 포착됐다. 미 공군 F-15E 전투기들이 1월 18일 요르단에 착륙했고, 남중국해에 있던 미 해군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와 구축함 등이 인도양을 거쳐 페르시아만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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