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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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생크림 케이크 배달… 현대차 차세대 모빌리티 플랫폼 ‘모베드’

[조진혁의 Car Talk] ‘범용 일꾼’ 추구하는 중국과 달리 ‘섬세한 배송’이 강점

  • 조진혁 자유기고가

    입력2025-12-2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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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기아의 차세대 모빌리티 로봇 플랫폼인 모베드 양산형 모델이 험난한 지형을 달리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현대차·기아의 차세대 모빌리티 로봇 플랫폼인 모베드 양산형 모델이 험난한 지형을 달리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로봇 전시회(iREX) 2025’에서 공개한 차세대 모빌리티 로봇 플랫폼 ‘모베드’(MobED·Mobile Eccentric Droid)가 그 앞에 서 있다. 

    모베드의 생김새는 단순하다. 네모난 상자에 바퀴가 달렸을 뿐이다. 그러나 이 플랫폼이 보여주는 것은 상상 이상이다. 현대차그룹 로보틱스랩은 시장에 나와 있는 모바일 로봇을 모조리 분해하듯 분석한 뒤 완전히 다른 구조를 택했다고 한다. 핵심은 바퀴 가장자리에 축을 둔 엑센트릭 휠(Eccentric Wheel)과 주행·조향·제동·자세 제어를 하나로 묶은 드라이브 앤드 리프트(Drive & Lift·DnL) 모듈이다. 

    4개 휠이 각각 높이와 각도를 바꿀 수 있다면 차체 안정성은 향상된다. 모베드가 그렇다. 노면에 기울기나 높낮이가 있어도 상판은 최대한 수평을 유지한다. 사람들로 붐비는 엘리베이터 앞에서는 몸을 오므렸다가, 트인 공간에 이르면 다리를 쭉 뻗듯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기술이 실제로 적용되면 로봇이 와인 잔을 실은 채 계단을 내려오거나, 생크림이 잔뜩 올라간 케이크를 20층 사무실까지 무사히 배달할 수 있다. 카메라를 싣고 고르게 움직이는 촬영 플랫폼, 사람을 피해 가며 병원 복도를 조용히 오가는 의료 이송 로봇 같은 영역에서도 쓰임새가 클 것이다.

    경사로에서도 흔들림 없는 로봇

    이쯤에서 모베드가 처음 공개된 2022년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로 돌아가보자. 초기 콘셉트 시절 모베드는 길이 67㎝, 너비 60㎝ 차체에 2kWh 용량의 배터리를 부착한 형태였다. 1회 충전으로 약 4시간 작동하고 최고 30㎞/h 속도를 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적재 중량은 약 40㎏. 일상적인 짐을 대부분 실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올해 공개된 양산형은 내용이 꽤 달라졌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현재 모베드 길이는 115㎝, 너비는 74㎝다. 1회 충전 시 최대 4시간 주행은 동일하지만, 최대속도는 10㎞/h, 적재 중량은 47~57㎏ 수준이다. 간단히 말하면 느리고 커졌다. 이는 실내외 혼합 환경에서 좀 더 안전하게 배송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현실적인 세팅으로 보인다. 

    현재 시장을 장악한 중국 로봇 플랫폼들과 모베드는 어떻게 다를까. 먼저 중국 세그웨이-나인봇의 RMP(Robotics Mobility Platform) 라인부터 살펴보자. RMP Lite 220 같은 모델은 50㎏ 안팎의 적재 중량과 80㎞ 수준의 주행거리, 최대 10시간 연속 운용이 가능한 대용량 배터리를 내세운다. 또 방수 등급(IPX5) 획득과 내구성 좋은 알루미늄 다이캐스트 섀시 사용 등으로 실내외 배송 및 순찰, 청소 등 각종 업무에 투입될 수 있는 범용성을 갖췄다고 자랑한다. 

    모베드가 스스로 짐을 싣고(왼쪽) 내리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모베드가 스스로 짐을 싣고(왼쪽) 내리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험한 환경’ 돌파하는 中 로봇들

    애자일엑스 로보틱스의 스카우트(SCOUT) 2.0은 4륜 구동 무인지상차량(UGV)으로, 50㎏ 적재 중량에 150분 주행이 가능하다. 속도는 초속 1.5m(5.4㎞/h) 정도 나온다. 이 회사에서 더욱 주목할 것은 벙커 프로(BUNKER Pro)다. 무한궤도(트랙)를 사용하는 이 플랫폼은 IP67 등급 방수·방진, 120㎏ 적재 중량, 150분 주행을 내세운다. 진흙탕과 돌무더기, 비가 오는 야외 현장에서 특히 존재감이 크다. 다중 링크 서스펜션과 강화된 쇼크 업소버 덕분에 충격을 견디는 힘이 강해 농업·건설·광산 환경에 최적화됐다는 게 제조사 측 설명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유명한 유니트리는 다리 4개에 바퀴를 섞은 유니트리(Unitree) B2를 선보였다. 초속 6m(21.6㎞/h) 수준으로 이동하면서 40㎏ 넘는 짐을 싣고 4시간 이상 주행이 가능하다. 정지 하중은 최대 120㎏ 수준. 40㎝ 높이 계단과 45도 경사로를 기어오를 뿐 아니라, IP67 방수·방진 등급으로 비와 먼지에도 버틴다. 여기에 바퀴를 결합한 Go2-W 같은 하이브리드 모델은 실내 복도부터 야외 공사장까지 자유롭게 오가는 것을 목표로 설계됐다.

    스펙만 놓고 보면 중국 모빌리티 로봇은 매우 매력적이다. RMP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돌아다니는 물류센터 일꾼이고, 벙커 프로는 현장 노동자이며, B2와 Go2-W는 물리적으로 험한 환경을 정면 돌파하는 능력을 지녔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모베드의 자리는 어디일까. 분명한 것은 모베드가 중국 로봇처럼 모든 현장에서 쓸 수 있는 싸고 튼튼한 보디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외 매체들 반응을 보면 모베드가 노리는 포지션이 선명해진다. 미국 자동차 매체들은 현대차가 휴머노이드 로봇이 아닌 ‘자동차 스타일 모빌리티’를 전면에 내세운 부분을 강조했다. 특히 지상고와 자세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엑센트릭 자세 제어 시스템’ 덕분에 유리 파편, 요철, 경사면을 지날 때도 상판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모베드를 골프 카트부터 개인용 e-스쿠터까지 변신 가능한, 다재다능한 자율 로봇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는 모베드가 골프장이나 리조트, 대형 쇼핑몰 등에서 활용될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중국 로봇 플랫폼 업체들과의 승부는 B2B(기업 간 거래) 시장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모베드가 시장을 차지하려면 산업 현장에서 실제 도입되는 사례를 만들어야 하고, 그러자면 가격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모베드는 현대차그룹 로보틱스랩이 만든 첫 양산형 모빌리티 로봇 플랫폼인 동시에, 자동차 회사가 로봇을 통해 어디까지 영향력을 넓힐 수 있는지 점검하는 실험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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