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침입 막겠다”
2023년 5월 9일(현지 시간) 멕시코 시우다드 후아레스에서 바라본 미국 멕시코 국경의 철조망 사이로 멕시코 이민자들이 미국 당국자를 기다리고 있다. [AP뉴시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대선 유세에서 “취임 첫날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불법 이민자 추방 작전을 시작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1798년 만들어진 ‘적성국 출신 외국인 통제법’(Alien Enemies Act)을 발동해 미국에서 활동하는 모든 불법 이민자 범죄단체를 해체하고, 그들이 미국으로 다시 들어오면 가석방 없이 자동으로 징역 10년형에 처할 것이며, 미국 시민이나 법 집행관을 죽인 불법 이민자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을 촉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범죄자들의 침입을 막아낼 것”이라며 불법 이민자들을 ‘범죄자’라고 지칭해왔다.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불법 이민자는 전체 이민자 인구의 23%에 해당하는 1100만 명이며, 이 중 400만 명은 멕시코 출신이다. 불법 이민자 중에서 700만 명은 망명 신청과 이민 절차가 계류 중이다. 특히 불법 이민자 가운데 130만 명은 이미 추방 명령을 받았지만 미국에 남아 있고, 이들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사상 최대 규모 불법 이민자 추방 작전에 나선 것은 지난 대선에서 불법이민 문제를 주요 쟁점화하면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콘신 등 러스트 벨트(rust belt·북동부의 쇠락한 공업지대)와 노스캐롤라이나·애리조나·조지아·네바다 등 선 벨트(sun belt·일조량이 많은 남부 지역) 7대 경합주들에서 예상과 달리 압승했다. 당시 트럼프 당선인은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멕시코와의 남부 국경 통제에 실패하면서 불법 이민자가 대거 유입됐으며 이들이 강력 범죄와 집값 상승, 미국인의 일자리 약탈 등 사실상 모든 사회문제의 원인이 됐다고 주장했다.
‘원정 출산’ 초래한 출생시민권 폐지되나
2017년 1월 25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국토안보부에서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들어 보이고 있다. [AP뉴시스]
심지어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 수정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속지주의’ 시민권 부여 원칙도 폐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불법 이민자가 미국에서 자녀를 낳은 경우 가족 구성원 전체를 일단 구금한 뒤 다 같이 떠날지, 시민권이 있는 아이만 남겨놓을지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비인간적 선택’을 강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수정헌법 제14조에 규정된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부모 국적과 관계없이 자국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해왔다. 이를 ‘출생시민권(birthright citizenship)’ 제도라고 부른다. 이 제도는 미국의 노예 해방 이후 노예 신분이었던 사람과 이들의 자손에게 시민권을 보장하려는 목적으로 처음에 만들어졌지만, 이후 미국에 불법으로 체류 중인 외국인의 경우에도 적용돼 이들이 자녀를 출생할 경우 자녀에게도 자동으로 시민권이 부여됐다.
하지만 공화당의 강경한 반(反) 이민주의자들은 그동안 이 제도를 폐지하자고 주장해왔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른바 ‘원정 출산’을 금지하는 등 이 제도를 종료하고, 시민권·영주권자 자녀에게만 시민권을 부여하겠다고 공약했다. 불법 이민자에게는 임시 합법 체류 자격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고, 근로자격도 박탈하겠다는 방침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이 제도를 폐지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할 경우 의회 또는 연방대법원에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 출생시민권은 헌법 제14조에 규정된 권리이기 때문에 해당 조항을 수정하는 의회에서 헌법 개정이 이뤄져야 가능하다. 개헌과는 별개로 행정명령에 불복하는 사람들이 소송할 경우 대법원까지 갈 것이 분명하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898년 출생시민권이 합헌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만리장성 절반 길이의 트럼프 장벽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왼쪽은 미국 샌디에고, 오른쪽 맥시코 티후아나. [위키피디아]
호먼은 “미국에서 태어난 자녀가 있는 부모를 포함한 모든 불법이민자들을 추방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며, 가족이 함께 추방될지 또는 분리될지는 그들이 결정할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 집권 1기인 2017~2018년 ICE를 임시로 이끌었고, 이른바 ‘무관용 원칙’으로 불리는 아동·부모 분리 정책 집행을 감독했다. 해당 정책으로 아직 재결합하지 못한 가정이 최대 1000가구에 달한다. 밀러 부비서실장은 불법 이민자 추방 작전을 실질적으로 계획해왔다. 놈 주지사는 “트럼프 당선인은 해리스와 바이든이 미국에 입국시킨 살인자, 강간범 등 가장 위험한 불법 외국인부터 추방할 것”이라며 강경한 이민 정책을 지지해왔다.
그런가하면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는 앞으로 거대한 장벽이 세워질 것이다. 양국 국경선의 길이는 1954마일(3144㎞)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1기 때 중남미 이민자들의 불법 월경을 막기 위해 국경을 따라 1049㎞ 구간에 높이 9m가 넘는 장벽을 세웠다. 이른바 ‘미국판 만리장성’이다. 4년 만에 백악관에 다시 입성한 트럼프가 나머지 구간에도 장벽을 세우면 만리장성의 총연장 6300㎞의 절반에 해당하는 ‘미국판 만리장성’이 완성된다. 말 그대로 미국이라는 거대한 요새(Fortress America)가 구축되는 셈이다.
불법 이민자 추방과 국경 장벽 건설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미국 싱크탱크인 아메리칸 액션 포럼은 향후 20년간 불법 이민자 단속과 추방작업에 최대 6150억 달러(약 900조 원)가 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미국 국토안보부는 국경 장벽 건설에 3년간 216억 달러(약 30조 원)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공화당은 이처럼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야하는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을 뒷받침할 법안 통과를 위해 세부 항목별 법안이 아닌 ‘거대 단일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공화당 출신인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불법 입국 차단과 세금 감면 이슈를 하나로 묶겠다고 밝혔다. 이 법안에는 대규모 불법 이민자 추방에 필요한 예산과 올해 만료되는 트럼프 1기의 감세정책 연장, 연방정부 부채한도 인상 내지 폐지, 연방정부 규제 축소 등이 포함된다. 존슨 의장은 “메모리얼 데이까지 거대 단일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강조했다. 메모리얼 데이는 한국의 현충일 격에 해당하는 날로 매년 5월 마지막 주 월요일로 올해는 5월 26일이다. 하지만 미국에선 트럼프 당선인의 반이민 공약이 현실화하면 노동력 부족 등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