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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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탕후루 가게 사라지는 이유

지난해 10월 설탕 과다 섭취 논란 이후 매출 급감… 올해 148곳 폐업

  • 임경진 기자 zzin@donga.com

    입력2024-06-09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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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탕후루는 차가운 간식이니까 날씨가 따뜻해지면 매출이 회복되지 않을까 기대했죠. 하지만 날이 더워지는데 매출은 오히려 줄더라고요. 날씨 문제가 아니라 인기가 끝난 것 같아요.”

    5월 30일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한 가게. 50대 자영업자 원종희 씨는 이곳에서 일주일 전까지 탕후루를 팔았다. 이곳 출입문에는 이제 “◯◯마라탕 6월 초 오픈 예정”이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한 택배원이 가게 앞에서 휴대전화를 연신 들여다보더니 “여기가 혹시 ◯◯탕후루냐”며 원 씨에게 우편물을 건네기도 했다. 원 씨는 “3월까지는 한 사람 인건비 정도가 남았지만 근래에는 임차료 충당도 어려워 마라탕으로 업종을 변경하려 한다”고 말했다.

    과일에 설탕 코팅을 입힌 탕후루 판매 매장 수가 올해 들어 감소하고 있다. [GETTYIMAGES]

    과일에 설탕 코팅을 입힌 탕후루 판매 매장 수가 올해 들어 감소하고 있다. [GETTYIMAGES]

    4월부터 폐업 점포 급증

    과일에 설탕 코팅을 입힌 탕후루는 이른바 ‘겉바속촉’(겉은 바삭, 속은 촉촉) 식감으로 인기를 끌어 지난해 대세 간식으로 유행했다. 설탕 코팅이 깨지면서 나는 “와그작” 소리 역시 인기몰이에 한몫했다. 이에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먹방 콘텐츠의 단골 소재가 되기도 했다. “인스타그램만 켜면 탕후루가 나온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자료 | 행정안전부]

    [자료 | 행정안전부]

    하지만 올해 들어 탕후루를 둘러싼 분위기가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6월 2일 기준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인허가 데이터개방 통계를 분석한 결과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탕후루 매장 148곳이 폐업했다(그래프 참조). 문을 여는 탕후루 매장보다 문을 닫는 매장이 더 많아지면서 전체 매장 수도 감소 추세다. 6월 2일 기준 전국에서 영업 중인 탕후루 매장은 총 1574곳이다.

    탕후루 매장 감소세는 점점 가팔라지고 있다. 최근 두 달 사이 탕후루 매장 94곳이 폐업했는데, 이는 지난해 폐업한 탕후루 매장 수(77곳)보다 많다. 올해 4월 탕후루 매장 19곳이 새로 생겼지만 51곳이 문을 닫아 전국 탕후루 매장 수는 32개 줄었다. 5월에도 12곳이 문을 열었으나 43곳이 폐업하면서 탕후루 매장은 31개 감소했다.



    잘나가던 탕후루 인기가 시들해진 원인은 무엇일까. 가장 크게는 지난해 가을 불거진 과도한 설탕 섭취에 따른 어린이·청소년 건강 문제가 꼽힌다.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는 설탕 과다 섭취 논란으로 한 탕후루 프랜차이즈 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한 바 있다. 실제로 BC카드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4월까지 전국 탕후루 가맹점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탕후루 가맹점 매출액은 지난해 9월 최대치를 기록한 뒤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특히 지난해 11월 탕후루 가맹점 매출액은 전달 대비 28% 감소했는데, 이는 통계 집계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지난해 9월부터 탕후루 장사를 시작한 원 씨도 설탕 과다 섭취 논란을 체감했다고 전했다. 원 씨는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매출이 괜찮았다”며 “탕후루에 설탕이 많이 들어간다는 얘기가 언론에 나온 이후 아이들이 가족과 함께 가게 앞을 지나면서 탕후루를 먹고 싶다고 사달라 해도 부모가 안 된다며 말렸다”고 말했다. 중학교 3학년 김준희 양은 “올해는 지난해보다 탕후루를 덜 먹고 있다”면서 “SNS에 ‘탕후루를 계속 먹으면 혈관이 막힌다’ ‘치과의사 선생님이 조만간 강남에 건물을 살 것 같다’는 얘기가 많이 올라와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경애 한림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탕후루가 건강에 나쁘다는 얘기가 확산되면서 부모들이 탕후루 구입을 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탕후루 시장이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만큼 문을 닫는 탕후루 매장 수는 늘어날 전망이다. BC카드에 의하면 4월 탕후루 가맹점 매출액은 전달 대비 27% 감소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서울에서 탕후루 매장을 운영하는 30대 김모 씨는 “하루에 배달 주문이 3~4건밖에 안 들어온다”며 “BTS, 차은우, 아이브가 동시에 광고하지 않는 이상 탕후루는 끝났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씨 역시 탕후루 매장 폐업을 고려하고 있다.

    제2 탕후루 주의보

    특정 식품을 판매하는 매장이 폭발적으로 개업했다가 급속도로 폐업하는 현상은 처음이 아니다. 마라탕과 흑당 버블티 역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매장이 급증했지만 인기가 식으면서 문을 닫는 점포가 속출했다. 특히 적은 자본으로도 창업이 가능한 디저트업계에서 이런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열풍이 불면서 자영업자 사이에서는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네이버 자영업자 카페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5월 22일 “요구르트 아이스크림점을 창업할까 하는데 카스텔라나 탕후루처럼 반짝일지, 설빙이나 배스킨라빈스처럼 쭉 갈지 의문”이라는 게시물 내용이 올라왔다. 이 게시물에는 “제2 탕후루라고 본다” “탕후루 보고 느낀 점이 있다면 (창업에 신중해라)” 같은 댓글이 달렸다.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인허가 데이터개방 통계에 따르면 전국에서 영업 중인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전문점은 총 398곳으로, 이 가운데 37%에 달하는 146곳이 올해 문을 열었다. 지난해 1년 동안 개점한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전문점(62곳)의 2배 넘는 수가 올해 상반기에 개점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유행에 편승해 창업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종현 한림국제대학원대 융합서비스경영학과 교수는 “유행 업종 창업은 빠른 시간 안에 위기 상황에 직면할 수 있는 만큼 개업 시기부터 전략적 출구전략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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