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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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가치 제고 통 큰 결단” vs “실력 입증 새로운 도전에 직면”

경영학자 3인이 본 ‘한전 부지’ 인수 손익계산서

  • 조영실 객원기자 esperanza0738@gmail.com

    입력2014-10-13 10: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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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 가치 제고 통 큰 결단” vs “실력 입증 새로운 도전에 직면”

    9월 18일 서울 강남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인 삼성동 한국전력(한전) 부지가 현대자동차그룹에 낙찰됐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한전 부지에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를 건설해 ‘글로벌 빅5’ 자동차 기업으로 도약했던 양재동 시대를 접고 ‘빅3’를 향한 삼성동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다는 계획이다.

    ‘축구장 12개 크기인 약 8만m2(2만4000여 평) 땅, 감정가 3조3346억 원의 3배를 웃도는 10조5500억 원에 낙찰, 입찰 하루 만에 시가총액 8조5000억 원 증발….’

    이 모든 것은 9월 18일 벌어진 현대자동차그룹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한전) 부지 매입에 관한 이야기다. 현대차그룹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입찰 금액으로 서울 강남권의 마지막 남은 금싸라기 땅, 한전 부지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현대차그룹이 밝힌 인수 목적은 분명하다. 그동안 뿔뿔이 흩어져 있던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등 30여 개 계열사의 직원 1만8000여 명이 함께 근무할 수 있는 통합사옥을 짓는 한편,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와 자동차 테마 파크 등을 조성하겠다는 것. 그래서 이곳을 서울 랜드마크로 육성한다는 게 현대차그룹의 꿈이다.

    하지만 이는 현대차그룹이 그리는 미래일 뿐 이를 바라보는 시장 반응은 대체로 차가웠다. 10월 8일 현재 현대차그룹 주가는 3년 2개월 만에 18만 원 선 아래로 떨어졌으며, 부지 인수 과정에서의 의사결정 시스템 역시 논란이 됐다. 정몽구 회장의 구실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절실함이 반영된 매입가격



    과연 그들의 미래는 천 리 앞을 내다본 ‘신의 한 수’로 기록될 것인가, 아니면 과욕이 부른 ‘승자의 저주’로 끝날 것인가. 이를 두고 경영학자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천문학적 금액을 써낸 현대차그룹의 속셈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전략과 재무관리, 마케팅 분야의 실력파 경영학자 3인에게 그 해답을 구했다. 인터뷰에는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전략 전공), 정지웅 고려대 경영대 교수(재무관리), 박상준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마케팅)가 참가했다.

    ▼ 현대차그룹의 부지 매입 가격은 적정한가.

    “현대차 가치 제고 통 큰 결단” vs “실력 입증 새로운 도전에 직면”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

    김 : “입찰가격은 경쟁사 가격기준과 당사자가 생각하는 부지 가치에 따라 정해진다. 이를 결정하기 위해선 경쟁자들의 과거 행동분석을 토대로 그 이상의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이번과 유사한 과거 토지 입찰의 경우 감정가의 2.1~3.5배에서 입찰가격이 결정됐다. 또한 입찰가격은 절실함과 부지를 통해 얻고자 하는 가치의 크기, 대안 유무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이번 입찰가격은 감정가의 3배 정도로 현대차그룹이 생각하는 부지의 활용 용도와 절실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정 : “입찰 이후 현대차그룹의 주가는 10% 이상 하락했다. 기업가치라는 것은 미래에 기대하는 현금 창출력을 뜻하고, 이러한 기대는 시장가격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시장은 부지 매입가격이 과도하다고 평가한 것이다.”

    박 : “상식적으로 보면 이번 낙찰가는 손실이 틀림없다. 현대차그룹은 적어도 2조~3조 원은 싸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경영학적 관심은 적정 가격에 샀느냐 같은 정태적 주제가 아니다. 그건 경영학이 아니라 부동산학이다. 경영학에서는 가치를 보는 현대차그룹의 눈과 그 눈이 본 대로 행할 능력이 있는가, 그 사이에 그룹 전체의 시너지 역량이 어느 정도인가 같은 동태적 주제에 초점을 맞춘다. 그렇게 보면 손실이 아닐 수도 있다.”

    ▼ 한전 부지 인수와 관련해 10조5500억 원을 넘어서는 미래 가치가 과연 존재하는가.

    김 : “낙찰 부지에서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가 해당 기업이 그 부지를 소유해야 할 미션(mission·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단계별 전략)이 된다. 경영학이란 미션 관리 싸움이다. 대안이 없을수록 부지 가격은 비싸진다. 핵심은 이 공간이 현대차그룹의 양대 과제인 연구개발(R·D)의 경쟁력과 브랜드 가치 제고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다. 앞으로 삼성동 부지를 본사로 활용하면 현재 서울 양재동 본사는 R·D 인력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전 세계 자동차 수요의 36%를 한중일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현대차가 주도적으로 글로벌화를 위한 브랜드 가치 제고라는 목표로 그 공간을 활용해야 한다.”

    정 : “한전 부지 낙찰 뒤 주가가 하락한 것은 현대차그룹 임원이 생각하는 미래 가치를 시장이 몰랐다는 뜻이다. 시장이 항상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만약 그렇게 큰 미래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면 현대차그룹은 삼성과의 입찰경쟁에서 불리하지 않도록 사전에 주주들과 교감했어야 한다. 주주들이 확실하지 않은 미래의 ‘비금전적’ 가치를 위해 희생해야 할 이유는 없다.”

    박 : “왜 8조 원도, 9조 원도 아닌 10조 원일까. 이왕 입찰할 바에야 시장에 확실히 각인되게 한 것이다. 10조 원 미만의 한 자릿수로는 현대차그룹이 가진 한전 부지 개발 계획의 의미를 드라마틱하게 전달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 가격에 샀기 때문에 앞으로 ‘현대차 타운’이 완공될 때까지 10조 원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시장의 주목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다.”

    의사결정 과정 논란

    “현대차 가치 제고 통 큰 결단” vs “실력 입증 새로운 도전에 직면”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이번 결정을 두고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정몽구 회장의 의사결정 과정이다. 입찰에 참여한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기아자동차는 입찰 마감날인 9월 17일 오전 이사회를 열고 입찰 참여를 결정했다. 감정가의 3배, 주변 시세보다 2배 이상의 금액으로 입찰에 참여할 것을 결정했지만 이사회의 반대는 없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황제 경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이는 반면, 통 큰 결단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 이번 입찰 금액 결정이 정몽구 회장의 독단이란 설이 있다.

    김 : “실패 가능성이 큰 투자는 늘 양면성이 있다. 성공하면 투자, 실패하면 배임이 된다면 누가 투자할 것인가. 이것이 기업가 정신, 끊임없는 투자가 필요한 이유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부채비율은 30~50% 수준이다. 100%의 부채비율 범위 내에서라면 미래를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게 기업 측면에선 바람직하다.”

    정 : “이번 사안에서 한전 부지를 얼마에 샀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보다 얼마에 사겠다는 의사결정 과정이 합리적인 절차에 의한 것인지가 핵심이다. 그것이 주주들에 의해 적법하게 이뤄진 것인지, 아니면 소수 의사결정자(총수)에 의한 것인지가 중요하다. 이는 향후 시장에서의 기업평가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이 사안과 관련해 배임 혐의를 제기했던 경제개혁연대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에는 결함이 있지만 총수 일가가 부당한 사익을 추구한 충실의무 위반으로 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박 : “인간은 각자 다른 계산기를 갖고 있다. 일반적 인식으로는 손해가 되는 것을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다들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손해로 보는 사람도 있다. 입찰가격은 결국 국가기관인 한전으로 가기 때문에 ‘국가에 기여한 것’이라는 정몽구 회장의 말에 의미를 둬야 한다. 비싸게 샀지만 투자한 만큼 결과를 산출하자는 사내 심리적 시너지 효과는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다. 또한 사외 측면에선 건설이 진행되는 향후 5~10년 동안 ‘10조 보국(報國)’을 현대차그룹의 이미지로 포장할 수도 있다. 정 회장은 잔머리 대신 ‘큰 머리’를 쓴 것이다.”

    인수비용 뽑아낼 실력 있는가

    “현대차 가치 제고 통 큰 결단” vs “실력 입증 새로운 도전에 직면”

    박상준 국민대 교수

    ▼ 이번 부지 매입 결정에 대해 ‘커버스토리의 저주’로 보는 이들도 있다(‘커버스토리의 저주’란 도널드 설(Donald Sull)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가 제시한 개념으로,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비즈니스 잡지의 표지모델로 등장하면 몰락할 징조라는 것이다. 그중 위험을 예고하는 적신호의 하나로 ‘성공을 자축하기 위해 기념물을 건립한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그는 “성공한 경영자 가운데 거대한 본사 건물을 짓는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기업 퇴보의 시발점을 의미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 : “비즈니스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입지(location) 싸움이다. 미국 뉴욕의 임대료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싼 이유도 그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입지에 걸맞은 고부가가치의 설계도를 만들어가야 한다. 향후 한류 관광객 2000만 시대에는 MICE(전시박람회)산업이 크게 성장할 것이므로 본사로서의 기능뿐 아니라 이에 대한 그림도 그려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삼성동이 MICE산업의 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다.”

    정 : “이번 사건은 재무경영학에 나오는 전형적인 잉여현금흐름가설(Free Cash Flow Hypothesis)의 한 예다. 기업이 과도한 현금을 보유한 경우 경영자가 다양한 개인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의사결정을 한다는 이론이다. 연구개발과 차세대 성장동력 확보를 뒤로하고 부동산 매입에 집중한 현대차그룹의 결정은 옳지 않다.”

    박 : “통합 사옥 건립에 따른 공간 공유 시너지 효과나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를 통한 브랜드 이미지 제고 효과, 삼성동 현대차 타운의 미래 가치 등은 현대차그룹이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문제이므로 지금 계산하는 것은 별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적정 인수비용과 초과 인수비용을 상회할 만한 가치를 뽑아낼 실력이 현대차그룹에 있느냐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메이커를 넘어 부동산 디벨로퍼, 자동차 테마 파크 사업자로서의 실력을 증명해 보여야 하는 도전에 직면했다.”

    “현대차 가치 제고 통 큰 결단” vs “실력 입증 새로운 도전에 직면”

    정지웅 고려대 교수

    ▼ 향후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주가 전망은(현대차그룹 주가는 9월 18일 한전 부지 낙찰 이후 계속 떨어지고 있다. 낙찰 전날인 9월 17일 21만8000원에서 10월 8일 현재 17만8000원으로 한 달 새 19%가량 떨어졌다. 한전 부지 인수로 현대차그룹이 연구개발비와 배당 등을 축소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현대차그룹과 함께 입찰에 참여한 현대모비스, 기아자동차 주가도 낙찰 이후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 계열사 3곳의 시가총액은 낙찰 이후 현재까지 모두 14조 원가량 증발했다).

    김 : “현대차그룹의 너무 낮은 부채비율은 재무 레버리지(부채를 보유해 금융비용을 부담하는 것)를 낮게 가져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미래를 위해 좀 더 투자해야 한다는 지적인 것이다. 이번 투자가 향후 연구개발력이나 브랜드 가치 제고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주가는 반등할 것이다.”

    정 : “현대차그룹은 이번 사건으로 기업 가치가 크게 훼손됐다. 기업 지배구조와 투명성이 생각보다 훨씬 나쁘다는 것을 시장에서 알게 됐기 때문이다. 투명성이 낮은 기업은 미래 현금 흐름이 할인을 받아 기업 가치가 낮아진다. 기업 성과가 좋아지면 당연히 주가는 오를 테지만 투명성이 훼손됨으로써 잃은 기업 가치는 쉽게 회복하기 어렵다.”

    박 : “1차 주가 하락은 시장이 놀란 탓이 크고 세계 자동차 시황이 반영된 결과로 봐야 한다. 그 결과를 가지고 현대차그룹이 10조 원을 허투루 쓴 걸로 시장이 판단했다고 해석할 수는 없지만,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의 실력을 의심하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현대차그룹은 분명히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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