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월가에 불어닥친 재난은 똑똑한 인간들의 불장난에 대한 ‘성난 황소’의 복수라 할 수 있다. 영화 ‘월스트리트’(왼쪽), ‘성난 황소’의 한 장면.
키보드 몇 번 두드리고 거액 챙기는 연금술의 세계
세계 금융의 심장부인 미국 월스트리트의 상징 황소상도 순한 황소가 아니라 성난 황소의 모습에 가깝다. 금방 앞으로 뛰쳐나갈 듯 잔뜩 몸을 움츠린 황소상은 증권 장세가 영원히 활황이기를 바라듯 월가 앞에 버티고 서 있다.
그러나 월가가 파산 위기에 놓인 지금 황소상은 예전 그대로지만 그 모습은 왠지 처량해 보인다. 마치 한국의 광우병 사태 때처럼 탐욕과 죄악의 상징으로 전락한 것 같다. 그러나 광우병 사태 때도 그랬지만 그게 어디 황소의 잘못인가. 비난받아야 할 것은 월가가 황소를 배신했다는 사실이다. 월가는 황소의 미덕인 근면과 성실, 정직한 땀을 배신하고 외면했다. 그래서 인간을 도와 땅을 갈아 옥토로 만들고 수확을 거두게 하는 황소에게 벼락치기로 거액을 벌어들이는 투전판과 같은 지금의 월가는 어울리는 장소가 아닌 것이다.
1987년 만들어진 ‘월스트리트’라는 영화는 월가를 처음으로 다뤄 금융영화의 고전으로 꼽힌다. 20년 전 이 영화에서 그린 월가의 이면은 ‘기업사냥꾼’의 세계였다. 영화에 소개된 기업 사냥을 위한 비정상적인 거래 수법은 당시로선 생소했다. 그러나 20년이 흐른 지금 그때의 첨단 수법은 영화처럼 ‘고전’이 돼버렸다. 그 후로 월가에선 엄청난 기술 혁신이 이뤄졌다. 그 첨단 금융기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꿈의 기술이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전혀 과장이나 거짓이 아니었다. 현대판 연금술이나 다름없다. 대학을 갓 나온 새파란 젊은이들이 키보드 몇 번 두드려 거액을 벌어들이는 세계인 것이다.
이 환상적인 요술판에 과학자와 수학자들이 뛰어들었다. 항공우주국 대신 주식판으로 뛰어든 과학자들은 금융문제에 대한 ‘창조적’인 해결방법을 제시했다고 칭송받으며 연금술을 더욱 갈고 다듬었다.
그러나 중세의 연금술이 허망하게 끝나듯 월가의 현대판 연금술은 결국 파국을 맞고야 말았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수학천재들의 카지노 공략기인 영화 ‘21’은 MIT의 수학천재들이 라스베이거스 카지노판에 뛰어든 실화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이들의 행각을 위태로운 불장난으로 그린다. 그러나 이들이 카지노에 뛰어들지 않고 월가로 갔다 한들 뭐가 다를까. 월가의 재난은 똑똑한 인간들의 불장난에 대한 ‘성난 황소의 복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