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나 ‘르 몽드‘는 이제 우리 독자들 사이에서도 익숙한 이름이다. 우리 언론에 ‘외지에 따르면 ‘이란 이름으로 자주 인용되는 ‘귄위지‘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영화 광고에도 극찬의 말 뒤에 ‘뉴욕타임스‘ 같은 권위지에서 이름 없는 지방지까지 외국 언론들의 목록을 붙여 관객들을 현혹시킨다. ‘외지에 따르면‘이란 기사나 외국 언론의 평은 과연 정확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최근 김정란 진중권 홍세화 등 우리사회에 대해 바른 소리를 해온 몇 명의 비평가들이 펴낸 ‘아웃사이더를 위하여‘(편집주간 김규항) 창간호에 잘못된 외지 인용 사례들이 실려 있어 언론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그중 하나는 ‘프랑스 시사주간지 르 피가로 매거진‘에 실린 기사를 인용해 국내 한 일간지 파리 특파원이 쓴 기사로 ‘프랑스 좌파에 소속된 사냥꾼들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우익, 혹은 비주류 좌파 인사들을 악마로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는 내용이다. 그 기사는 또 좌파가 ‘대통령 부인 베르나데트 여사도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홍세화씨는 ‘아웃사이더를 위하여‘에 기고한 글에서 우선 ‘르 피가로 매거진‘이 ‘시사주간지‘ 가 아니라 주말 광고용으로 일간지 ‘르 피가로‘에 그냥 끼워주는 잡지라고 지적했다. 홍씨는 또 이른바 ‘좌파‘가 대통령 부인을 어떻게 공격했는지 원문을 옮겨놓았다. ‘장 폴 고티에나 라크루아 제품보다 기라로쉬, 크리스티앙 디오르 의상을 더 좋아함으로써 ‘누벨 옵세르바퇴르‘ 시사 잡지를 불쾌하게 한 죄, 핸드백을 들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가족제도를 옹호하고 TV를 불신하는 죄...‘
아무리 심각하게 보려고 해도 이것은 특파원의 말처럼 ‘새로운 좌우익의 이데올로기 논쟁‘은 아니다. 차라리 인터넷 패러디 신문 ‘딴지일보‘(98년 10월)에서 폭로했던 국내 모 일간지의 ”클린턴 힐러리에 맞아/美紙 ‘눈에 시퍼런 멍‘” 이라는 제하의 기사에 버금가는 해프닝이다. 이는 힐러리가 클린턴을 전화기로 때렸다는 미국의 타블로이드판 주간지 ‘위클리월드뉴스‘의 ‘기사‘를 국내 한 일간지가 인용 보도한 데서 빚어진 희극이었다. ‘위클리워드뉴스‘는 ‘외계인 클린턴 지지‘ ‘워싱턴 하늘에 사탄 출현‘같은 허무 맹랑한 기사만을 다루는 신문이다. 이런 ‘믿거나 말거나‘성의 기사를 ‘재미‘로라도 인용하려면 최소한 ‘위클리월드뉴스‘의 성격을 독자들에게 함께 전달했어야 했다. 그런 노력을 게을리하는 바람에 ‘미국 대통령도 부인한테 맞는다더라‘는 ‘신문 기사‘는 우리 나라에서 분명한 ‘사실‘로 화젯거리가 됐다. 이와 마찬가지로 ‘르 피가로‘가 우파인지 좌파인지, ‘르 피가로 매거진‘이 어떤 성격인지 알 수 없는 독자들로서는 특파원의 인용 기사를 사실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국내의 한 일간지는 사설에서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를 인용하면서 ‘김대중대통령은 인기주의자 (populist)‘라고 쓴적이 있다. 이는 ‘인민주의(신념)자‘를 오역한 데서 비롯된 결과였다. (딴지일보 98년 9월 참고).
99년 8월 국내의 한 신문은 워싱턴 포스트지를 인용하면서 김영삼전대통령이 김대중대통령을 비난한데 대해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이 김전대통령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고 썼다. 그러자 바로 YS측은 ‘워싱턴 포스트‘ 보도 운운하며 DJ비판의 정당성을 홍보했다. 그러나 ‘놀랄 정도로‘ 바로 앞에는 ‘상당수 국민이 김영삼전대통령의 이러한 행동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란 문장이 있었다. 국내 정치인들에 의해 외국 언론이 ‘악용‘된 사례다.
최근 ‘한국 신문의 외신 인용의 문제‘를 연구한 한국언론재단 윤창빈 정책분석팀 차장은 ”특히 북한 문제에 있어서 한국 언론이 외신을 과장 확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이런 식의 왜곡은 뉴욕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가 인용한 공화당 정치인의 발언이나 일개 연구기관의 자료가 국내 언론에 ‘외지에 따르면‘으로 소개되면서 자주 벌어진다. 일방의 주장이 외국 언론의 ‘결론‘으로 왜곡되는 것이다. 윤차장은 올해 1월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한반도 위기설‘이나 8월의 ‘핵무기 제조 공장 건설‘, 워싱턴 포스트의 ‘ 북한 주민 200만명 아사‘ 등의 사례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나 일부 측면을 국내 언론이 외지의 권위에 기대 확대 보도한 사례”로 꼽았다. 언론 연구가들은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비교적 공정한 시각을 유지하는 뉴욕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도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는 자주 ‘북한을 압박하려는 경향이 있다 ‘고 지적한다.
걸프전을 통해 과대평가됐다는 인상을 주는 CNN의 인용은 여과없는 ‘사실‘이라는 점 때문에 오히려 자주 진실을 왜곡한다. 영화 ‘왝더독‘은 바로 머리 대신 눈을 속이는 CNN의 폐해를 소재로 했다. ‘신문 속지 않고 읽는 법‘ 저자 김종찬씨는 ”CNN은 30개 유선 채널 중 하나일 뿐으로 일종의 스포츠 중계다. 그저 심심풀이나 대기업 홍보프로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또 ”외국 정론지는 다각도의 의견을 장문의 기사로 함께 싣는 형식이므로 그중 일부만 발췌해 살을 붙이다보면 왜곡되게 마련”이라고 경고한다.
정치인뿐 아니라 예술가들도 외지인용을 좋아한다. ‘뉴욕타임스‘ 등 권위지에 자신에 관한 기사가 실리면 대부분의 작가는 외지를 복사해 국내 언론에 알린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그것이 ‘리뷰‘가 아니라 단순한 ‘전시소식‘이라거나 ‘지방관‘에 실린 것이라며 ‘반박‘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국제화랑 큐레이터로 일했던 박경미씨는 ”뉴욕타임스 기자들에겐 압력이나 부탁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조용히, 골목길 무명 화가의 전시까지 가본다. 그것이 바로 권위”라고 말한다.
외국 영화 광고에 줄줄이 붙어 있는 ‘외지‘의 격찬도 신뢰할 만한 것이 못된다. 한두 줄의 호평은 가장 신랄한 혹평 속에서도 발견된다. 또한 디즈니와 방송사 ABC처럼 영화사와 언론이 결합된 거대 미디어그룹 10여개가 전세계 엔터네인먼트 산업과 미디어를 나눠 갖고 있으니 ‘자화자찬‘이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외국 언론은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는 유용한 거울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거울의 모양을 함께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인용된 언론의 성격, 작성날짜와 장소 등에 관한 정보가 없다면 우선 그 ‘진실성‘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김정란 진중권 홍세화 등 우리사회에 대해 바른 소리를 해온 몇 명의 비평가들이 펴낸 ‘아웃사이더를 위하여‘(편집주간 김규항) 창간호에 잘못된 외지 인용 사례들이 실려 있어 언론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그중 하나는 ‘프랑스 시사주간지 르 피가로 매거진‘에 실린 기사를 인용해 국내 한 일간지 파리 특파원이 쓴 기사로 ‘프랑스 좌파에 소속된 사냥꾼들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우익, 혹은 비주류 좌파 인사들을 악마로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는 내용이다. 그 기사는 또 좌파가 ‘대통령 부인 베르나데트 여사도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홍세화씨는 ‘아웃사이더를 위하여‘에 기고한 글에서 우선 ‘르 피가로 매거진‘이 ‘시사주간지‘ 가 아니라 주말 광고용으로 일간지 ‘르 피가로‘에 그냥 끼워주는 잡지라고 지적했다. 홍씨는 또 이른바 ‘좌파‘가 대통령 부인을 어떻게 공격했는지 원문을 옮겨놓았다. ‘장 폴 고티에나 라크루아 제품보다 기라로쉬, 크리스티앙 디오르 의상을 더 좋아함으로써 ‘누벨 옵세르바퇴르‘ 시사 잡지를 불쾌하게 한 죄, 핸드백을 들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가족제도를 옹호하고 TV를 불신하는 죄...‘
아무리 심각하게 보려고 해도 이것은 특파원의 말처럼 ‘새로운 좌우익의 이데올로기 논쟁‘은 아니다. 차라리 인터넷 패러디 신문 ‘딴지일보‘(98년 10월)에서 폭로했던 국내 모 일간지의 ”클린턴 힐러리에 맞아/美紙 ‘눈에 시퍼런 멍‘” 이라는 제하의 기사에 버금가는 해프닝이다. 이는 힐러리가 클린턴을 전화기로 때렸다는 미국의 타블로이드판 주간지 ‘위클리월드뉴스‘의 ‘기사‘를 국내 한 일간지가 인용 보도한 데서 빚어진 희극이었다. ‘위클리워드뉴스‘는 ‘외계인 클린턴 지지‘ ‘워싱턴 하늘에 사탄 출현‘같은 허무 맹랑한 기사만을 다루는 신문이다. 이런 ‘믿거나 말거나‘성의 기사를 ‘재미‘로라도 인용하려면 최소한 ‘위클리월드뉴스‘의 성격을 독자들에게 함께 전달했어야 했다. 그런 노력을 게을리하는 바람에 ‘미국 대통령도 부인한테 맞는다더라‘는 ‘신문 기사‘는 우리 나라에서 분명한 ‘사실‘로 화젯거리가 됐다. 이와 마찬가지로 ‘르 피가로‘가 우파인지 좌파인지, ‘르 피가로 매거진‘이 어떤 성격인지 알 수 없는 독자들로서는 특파원의 인용 기사를 사실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국내의 한 일간지는 사설에서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를 인용하면서 ‘김대중대통령은 인기주의자 (populist)‘라고 쓴적이 있다. 이는 ‘인민주의(신념)자‘를 오역한 데서 비롯된 결과였다. (딴지일보 98년 9월 참고).
99년 8월 국내의 한 신문은 워싱턴 포스트지를 인용하면서 김영삼전대통령이 김대중대통령을 비난한데 대해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이 김전대통령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고 썼다. 그러자 바로 YS측은 ‘워싱턴 포스트‘ 보도 운운하며 DJ비판의 정당성을 홍보했다. 그러나 ‘놀랄 정도로‘ 바로 앞에는 ‘상당수 국민이 김영삼전대통령의 이러한 행동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란 문장이 있었다. 국내 정치인들에 의해 외국 언론이 ‘악용‘된 사례다.
최근 ‘한국 신문의 외신 인용의 문제‘를 연구한 한국언론재단 윤창빈 정책분석팀 차장은 ”특히 북한 문제에 있어서 한국 언론이 외신을 과장 확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이런 식의 왜곡은 뉴욕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가 인용한 공화당 정치인의 발언이나 일개 연구기관의 자료가 국내 언론에 ‘외지에 따르면‘으로 소개되면서 자주 벌어진다. 일방의 주장이 외국 언론의 ‘결론‘으로 왜곡되는 것이다. 윤차장은 올해 1월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한반도 위기설‘이나 8월의 ‘핵무기 제조 공장 건설‘, 워싱턴 포스트의 ‘ 북한 주민 200만명 아사‘ 등의 사례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나 일부 측면을 국내 언론이 외지의 권위에 기대 확대 보도한 사례”로 꼽았다. 언론 연구가들은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비교적 공정한 시각을 유지하는 뉴욕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도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는 자주 ‘북한을 압박하려는 경향이 있다 ‘고 지적한다.
걸프전을 통해 과대평가됐다는 인상을 주는 CNN의 인용은 여과없는 ‘사실‘이라는 점 때문에 오히려 자주 진실을 왜곡한다. 영화 ‘왝더독‘은 바로 머리 대신 눈을 속이는 CNN의 폐해를 소재로 했다. ‘신문 속지 않고 읽는 법‘ 저자 김종찬씨는 ”CNN은 30개 유선 채널 중 하나일 뿐으로 일종의 스포츠 중계다. 그저 심심풀이나 대기업 홍보프로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또 ”외국 정론지는 다각도의 의견을 장문의 기사로 함께 싣는 형식이므로 그중 일부만 발췌해 살을 붙이다보면 왜곡되게 마련”이라고 경고한다.
정치인뿐 아니라 예술가들도 외지인용을 좋아한다. ‘뉴욕타임스‘ 등 권위지에 자신에 관한 기사가 실리면 대부분의 작가는 외지를 복사해 국내 언론에 알린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그것이 ‘리뷰‘가 아니라 단순한 ‘전시소식‘이라거나 ‘지방관‘에 실린 것이라며 ‘반박‘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국제화랑 큐레이터로 일했던 박경미씨는 ”뉴욕타임스 기자들에겐 압력이나 부탁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조용히, 골목길 무명 화가의 전시까지 가본다. 그것이 바로 권위”라고 말한다.
외국 영화 광고에 줄줄이 붙어 있는 ‘외지‘의 격찬도 신뢰할 만한 것이 못된다. 한두 줄의 호평은 가장 신랄한 혹평 속에서도 발견된다. 또한 디즈니와 방송사 ABC처럼 영화사와 언론이 결합된 거대 미디어그룹 10여개가 전세계 엔터네인먼트 산업과 미디어를 나눠 갖고 있으니 ‘자화자찬‘이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외국 언론은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는 유용한 거울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거울의 모양을 함께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인용된 언론의 성격, 작성날짜와 장소 등에 관한 정보가 없다면 우선 그 ‘진실성‘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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