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려온 고양이(Do the Dance)’를 타이틀곡으로 한 미니 3집 ‘밤(bomb)’을 발표한 아일릿. 빌리프랩 제공
“고민하지 말고 그냥 춤추자”
스트링 샘플이 디스코 질감을 내며 흐른다. 랩과 보컬이 들어가는 대목은 아주 깔끔하게 정돈된 사운드로 다소 재즈적인 진행을 보인다. 어려울 것까지는 없지만 딥하우스가 제공할 법한 종류의 세련미가 있다. 이후 곡은 조금씩 더 멜로디컬해진다. 후렴 뒤에는 ‘스페드업(Sped Up)’을 참고한 듯한 대목이 등장하는데, 최근 K팝에서 종종 눈에 띄는 흐름이다. 틱톡 등에서 자주 사용되는 스페드업은 곡 재생 속도를 높여 경쾌하고 코믹한 느낌을 낸다. 곡의 인상적인 가사에 속하는 “꿍실 냐옹” “둠칫 냐옹”이 등장하는 대목도 여기다.노래는 분명 데이트에 관한 것이고 뮤직비디오는 데이트 과정을 따라가는 듯 보인다. 옛날 로맨스 소년 만화에 흔히 나오는, 등하굣길에 만나 데이트 약속을 하고, 버스를 타서 ‘시내’로 나갔다가 쇼핑몰이나 유원지에서 저녁을 맞는 코스다. 하지만 데이트하는 사람의 심경 같은 건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아일릿과 남성들이 함께 등장하는 건 에스컬레이터에서 마주친 뒤 지나가는 장면 정도인데, 이때도 멤버들은 자기들끼리 춤추느라 바쁘다. 마침 노래는 어색함이나 어려움에 대한 해답으로 ‘춤추기’를 제안하고 있다. 사실 이것도 참 만화적인 이야기다.
이 정도 되니 의미심장한 상징 메시지나 세계관으로 뒤범벅돼온 K팝의 문법이 삐걱거리고, 질문들은 증발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고양이처럼 제멋대로인 동물을 ‘빌려올’ 수 있는가, 그럴 이유가 있나, 빌려온 고양이는 정말 어색해하는가 같은 질문들 말이다.
아일릿이 전작에서 표현해온 소녀상은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때로는 남성이 필요 없는 소녀들 같았고, 또는 그마저도 남성들이 상상하는 모습인가 싶기도 했다. ‘빌려온 고양이’는 그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들이 어떻게 해서 이런 모습이 됐는지는 생각할 것 없이, 그저 아기자기하고 기분 좋게 춤추기를 권하는 것이다. 거절하기에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제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