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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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증발이 가능한 시대의 음악 [김작가의 음담악담]

글렌 굴드의 3가지 버전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으며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20-05-20 11: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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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1959년 5월 영국 런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리허설 도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GettyImages]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1959년 5월 영국 런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리허설 도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GettyImages]

    글쓰기 수업을 개설했다. 일반적인 글쓰기는 아니고 음악 글쓰기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음악에 대해 쓰는 게 아니라 음악으로부터 글을 건져 올리려 했다. 음악을 듣고 떠오르는 이미지나 감정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글을 쓰는 수업이다.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바탕으로 산문을 쓰는 시간, 한 음악을 듣고 학생끼리 각자 떠오른 단어들을 조합하여 하나의 글로 만들어 보는 시간. 노래 가사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써보는 시간. 다양한 수업을 진행했다. 

    그 중 하나는 한 연주자가 인생의 서로 다른 시기에 녹음한 단일 곡을 바탕으로 각자의 버전에서 그 연주자의 캐릭터를 상상해보는 거였다. 이 수업의 '교재'로 쓰인 연주자는 글렌 굴드였고 음악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1955년, 1981년 그리고 2006년

    1955년 녹음된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앨범. 변주곡 숫자 30개에 맞춰 굴드의 사진 30장이 실렸다. [위키피디아]

    1955년 녹음된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앨범. 변주곡 숫자 30개에 맞춰 굴드의 사진 30장이 실렸다. [위키피디아]

    1932년생인 글렌 굴드는 1955년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취입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스물세 살의 데뷔작이었다. 1964년 연주 활동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콘서트 활동을 중지하고 오직 레코딩에만 몰두하다가 사망 1년 전인 1981년에 다시 한 번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했다. 이 앨범은 그의 사망 후 발표됐다.
     
    1981년의 레코딩은 거장의 비움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23세의 천재가 뿜어내는 현란한 테크닉과 비범한 곡 해석 따위 다 부질없다는 듯 말년의 굴드는 이렇다 할 기교도 부리지 않고 여유롭게 이를 연주했다. 학생들은 이 두 버전을 비교하며 괴짜라 불린 천재와 은둔한 거장, 한 사람의 두 가지 삶에 대한 다양한 상상을 풀어냈다. 그들의 글을 읽고난 뒤 제3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려줬다. 2006년 발매된 앨범이다. 

    옛날 음원이 발달된 음향 기술로 새롭게 포장되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모든 레코딩 소스를 전부 디지털로 되살려 최상의 음질로 재조합한 비틀스의 ‘Love’가 대표적이다. ‘태양의 서커스’ 공연용 음악으로 제작된 이 앨범은 마치 엊그제 비틀스가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것 같다. 비틀스뿐 아니라 구시대의 음원들이 속속 디지털 리마스터링의 힘으로 새 단장을 하고 다시 발매된다. 선명한 음질을 자랑하며. 테크놀로지의 힘은 그만큼 놀랍다. 이런 작업은 모두 '음원'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즉 아티스트가 남긴 결과물에 음향 기술로 계속 새 옷을 입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원본이 존재한다. 아무리 때때옷을 입히고 꽃단장을 해도 몸통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3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몸통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이유는 이렇다. 이 앨범은 굴드가 직접 연주한 게 아니다. 프로그램에 의해 연주된 피아노 소리를 녹음한 것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원리는 간단하다. 프로그램이 굴드의 1955년 레코딩을 분석한다. 그래서 당시의 레코딩 기술로 녹음된 음원을 배제하고 스튜디오에서 울리는 그의 연주만을 남긴다. 이 데이터를 토대로 작동되는 피아노가 오리지널 연주를 재현한다. 어떤 건반을 얼마나 길게 눌렀는지는 물론이고, 건반을 누르고 페달을 밟는 물리적 과정까지 고스란히 재현된다. 따라서 1955년 미국 뉴욕 CBS 스튜디오에서 울리던 굴드의 피아노가 2006년 캐나다 토론토의 CBC 스튜디오에서 원음 그대로 되살아난 것이다. 그 연주를 녹음한 게 이 앨범이다.



    시뮬라시옹 시대의 음악

    1981년 녹음된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앨범. [예스24]

    1981년 녹음된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앨범. [예스24]

    이 앨범은 듣는 사람에게 혼돈을 준다. 원음을 바탕으로 재탄생한 앨범이라지만 정작 CD 안에 담겨있는 건 기계에 의해 새롭게 연주된 음악이다. 굴드의 연주는 이 음악에 있어서 일종의 설계도 역할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앨범을 굴드의 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 피아노 앞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다. 건반과 페달이 혼자 위아래로 움직이며 소리를 낼 뿐이다. 그러나 그 소리는 정확히 1955년 굴드가 연주했던 바로 그 소리다. 따라서 이 음악은 굴드의 연주이자, 연주가 아닌 셈이다. 

    혼란은 가중된다. 통상, 예술은 사람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다. 미디어 아트가 발달한 지금도 결국 붓이 프로그램으로 바뀌었을 뿐, 사람의 손이 만든다. 우연성의 예술이든 해프닝이든 뭐든, 어쨌든 인간의 땀이나 하다못해 잔꾀가 들어간단 얘기다. 하지만 이 ‘골드베르크 연주곡’에는 사람이 없다. 데이터와 프로그램, 그리고 기계 장치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굴드가 연주한 바로 그 소리를 생생한 음질로 듣는다. 1955년 레코딩으로는 느낄 수 없었던 풍성한 울림과 공간감, 세밀한 음감의 변화까지 고스란히 느낀다. 즉, 예술작품이 주는 감동을 이 앨범은 재현한다. 그렇다면 이 앨범은 예술이기도 하고, 예술이 아니기도 하다. 

    말장난 같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현실이다. 테크놀로지가 보잘 것 없는 몸뚱이에 때때옷을 입히고 꽃단장을 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몸 그 자체를 새롭게 만드는 단계까지 이르렀음을 이 앨범을 시사한다. 프랑스 사상가 장 보드리야르가 말한 시뮬라크르(원본 없는 복제품)다. 그것도 원작의 위조와 모방이 아닌, 원작이 소멸된 자리에 독자적 현실로 존재하는 시뮬라크르다.

    예술가가 증발된 예술

    2006년 발매된 1951년 글렌 굴드 연주를 재현한 '골드베르크 변주곡' 앨범. [아마존닷컴]

    2006년 발매된 1951년 글렌 굴드 연주를 재현한 '골드베르크 변주곡' 앨범. [아마존닷컴]

    만약 굴드가 살아있었다면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연주’란 상황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마도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것이다. 그는 ‘20세기 예술가에게 필요한 건 익명성’이라는 철학에 투철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연주자로서 절정기였던 32세에 콘서트를 접고 스튜디오 작업만 펼쳤다. 당시로서는 첨단의 기술이던 ‘편집’도 적극 받아들여 여러 번의 반복 녹음에서 좋은 부분만 짜깁기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요컨대 그는 예술가를 증발시키고 음악 그 자체만을 남기고자 했다. 제3의 ‘골드베르크 연주곡’은 그래서 글렌 굴드 정신의 구현이라 부를 수 있다. 

    이런 배경 설명 없이, 학생들에게 이 앨범을 들려줬다. 어떤 학생의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아무 소음도 없는 방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라고. ‘은둔한 노인이 아침에 일어나 하얀 눈으로 덮인 평원을 걷는다. 그가 가는 발자국이 곧 길이 됐다.’ 눈이 생활 소음을 지운 날, 여유롭게 아침 산책을 하는 굴드를 떠올렸던 것일까. 학생의 문장을 보고, 나는 이 작업을 실행한 인공지능(AI)이 어쩐지 낭만적으로 다가섰다. 모든 음악에는 문장이 담겨 있다. 사람이 연주하지 않은 음악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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