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경의 미식세계

온몸에 뜨거운 기운이 벅차게 차오른다

물이 낳은 고기로 사람이 만든 별미, 어칼국수&어죽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18-12-31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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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로 된장을 풀어 끓이는 구수한 금산 어죽. [사진 제공·김민경]

    주로 된장을 풀어 끓이는 구수한 금산 어죽. [사진 제공·김민경]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을 타고 대전을 지나 좀 더 가다 보면 금강휴게소가 나온다. 어릴 적 부산에 사는 할머니를 뵈러 갈 때 여러 휴게소에 들르곤 했는데 금강휴게소는 늘 특별했다. 화장실 때문에 급하게 들렀다 가는 여느 휴게소와 달리 이곳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느긋하게 휴식을 만끽했다. 때를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점심은 꼭 금강휴게소에서 먹었다. 

    가족이 함께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일이 잦지 않은 만큼 금강휴게소에서 보내는 시간은 가족 모두에게 놓칠 수 없는 각별한 경험이었다. 잔잔한 강이 보이는 식당에서 따뜻한 밥을 먹고 강가를 산책했다. 강가를 걷다 가만히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고단한 고속도로에서의 시간도 함께 동동 흘러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농익은 구수함이 살아 있는 어칼국수

    고추장이 많이 들어가 칼칼한 어죽.

    고추장이 많이 들어가 칼칼한 어죽.

    고즈넉함으로 기억되는 금강휴게소가 요즘 연예인 맛집이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튼실한 강줄기가 흐르면 근처에 맛있는 음식이 없을 리 만무하다. 금강 근처에는 민물고기 매운탕이나 어죽, 어칼국수를 파는 식당이 많다.
     
    어칼국수 하면 경북 포항의 모리국수가 떠오른다. 모리국수는 생선과 해물을 넣어 걸쭉하게 끓여 먹는 음식이다. 탕을 먼저 먹고 국수 사리를 추가해 먹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칼국수를 먹으려고 생선 국물을 끓인다. 이는 어칼국수와 모리국수의 같은 점이다. 다른 점이라면 모리국수는 생선과 해물 건더기가 그대로 살아 있고, 어칼국수는 생선살이 국물에 곱게 녹아 걸쭉하게 퍼져 있다는 것이다. 바닷고기가 내는 시원한 감칠맛과 민물고기가 내는 농익은 구수함은 완전히 다르기에 두 음식은 비슷해 보이지만 맛은 천지 차이다. 

    어칼국수와 어죽의 밑국물 재료는 당연히 금강에서 잡은 민물고기다. 쏘가리, 메기, 잉어, 붕어, 빠가사리(동자개) 등 민물고기의 내장을 제거한 뒤 푹 고아 체에 밭쳐 뼈를 걸러낸다. 살이 녹아 걸쭉해진 육수에 고추장, 고춧가루 양념을 풀고 미나리, 쑥갓, 파, 감자, 호박 등 채소를 넣어 푹 끓인다. 국물을 낼 때 민물새우 한두 줌을 보태면 감칠맛과 시원함이 배가된다. 이 국물에 칼국수를 말면 어칼국수, 쌀을 넣어 끓이면 어죽이 된다. 간혹 어죽에 수제비를 몇 개 띄워 쫄깃함을 맛보라는 집도 있다. 

    걸쭉한 맛으로 즐기는 어칼국수.

    걸쭉한 맛으로 즐기는 어칼국수.

    어죽과 어칼국수를 먹을 때는 입맛에 맞게 매운 고추, 조핏가루(산초), 후춧가루, 들깻가루 등을 섞어 먹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국물 맛이 칼칼하지만 매운 고추를 약간 넣으면 개운한 맛이 한결 살아난다. 개인적으로 밀가루가 들어가는 어칼국수에는 조핏가루를, 어죽에는 후춧가루를 넣으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국물이 하도 걸쭉해 잘 식지 않기에 먹는 일이 만만치 않다. 정신을 집중하고 입을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등에서 금세 땀이 난다. 칼국수를 먹더라도 국물을 남기는 일은 없다. 어칼국수는 국물을 먹기 위한 음식이다. 그릇 바닥이 온전히 드러나야 식사가 끝난다. 뜨거운 기운과 좋은 영양이 몸 안에 가득 차는 기분이다. 게다가 생선 뼈와 살을 발라가며 먹는 수고로움 없이 싱싱한 민물고기를 온전히 맛볼 수 있으니 얼마나 편한가. 

    양념 맛이 좋은 도리뱅뱅이. [사진 제공·김민경]

    양념 맛이 좋은 도리뱅뱅이. [사진 제공·김민경]

    어죽이 푹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름도 귀여운 ‘도리뱅뱅이’를 맛보면 된다. 빙어, 피라미 등 손가락만 한 작은 민물고기에 양념을 발라 번철에 ‘뱅뱅’ 돌려 담고 기름을 자작하게 부어가며 초벌로 익힌다. 다 익으면 남은 기름을 따라 버리고 양념고추장을 한 번 더 발라 자글자글 구워 낸다. 어떤 집은 튀김옷을 얇게 입혀 바삭하게 튀긴 다음 양념을 묻혀 앞뒤로 굽고 번철에 뱅뱅 돌려 담아 뜨겁게 달궈 내기도 한다. 조리 방법은 식당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잘 익은 고기를 통째로 씹는 맛이 고소하고 바삭하며, 달착지근한 양념 맛도 좋아 자꾸만 손이 간다.

    맛과 향이 일품인 금산 인삼 어죽

    추어 튀김.

    추어 튀김.

    도리뱅뱅이 대신 추어 튀김이나 추어 만두를 선보이는 집도 있다. 자잘한 추어를 골라 튀김옷을 입혀 통째로 튀겨 낸다. 빙어나 피라미보다 살이 많아 통통하고 고소한 맛이 훨씬 진하다. 튀김옷에 밑간이 돼 있지만 매운 고추를 송송 썰어 넣은 양념간장에 찍어 먹는다. 기름 맛에 개운한 맛이 더해져 입맛을 돋운다. 

    어죽은 금산 어죽이 유명하다. 충남 금산의 상징인 인삼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금산은 일교차가 크고, 야트막하게 경사진 지형과 배수가 잘 되는 토양 등 인삼 재배에 좋은 환경을 갖고 있다. 1920년대부터 인삼시장이 열리기 시작해 지금은 국제인삼시장, 수삼시장, 인삼전통시장 등 전국 3대 약초시장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곳에서 전국 인삼의 70~80%가 거래된다. 인삼 하면 삼계탕이나 영양밥 등이 떠오르지만 어린 삼은 그대로 튀겨 먹고, 굵게 영근 삼은 술로 담가 먹거나 달여서 차로 마시기도 한다. 2018년 7월에는 금산전통인삼농업이 500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 기술력을 인정받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됐다. 

    인삼을 넣은 어죽은 무엇보다 향이 좋다. 또한 금산은 금강 상류에 위치해 물이 맑다. 물살이 거세 고기를 잡기는 어렵지만 잡히는 고기는 모두 싱싱하고 깨끗하다. 금산 어죽이 유명하기는 하나 금강을 따라 자리 잡은 도시에서는 어죽이나 어칼국수가 특별한 음식은 아니다. 인삼 어죽과 도리뱅뱅이가 맛있는 금산의 ‘저곡식당’, 어죽과 어칼국수, 그리고 추어 튀김을 잘하는 충남 공주의 ‘어거명가’에 가면 기대한 만큼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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