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0년대 유선형 디자인의 선두주자였던 레이먼드 로위(Raymond Loewy)는 제품 외관을 유선형으로 스타일링해 주목받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철도회사를 위해 디자인한 증기기관차 S1이 대표작 중 하나다. S1 디자인은 요즘 시대 기차라 해도 아쉬울 게 없을 만큼 날렵한 형태를 뽐낸다. 긴 기차의 가로선을 따라 직선으로 흐르는 선은 기차 앞머리에서 커브를 그리며 매끄러운 형태를 완성한다. 공기의 저항을 뚫고 나아가는 날렵한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선이다. 기능을 더하는 선의 모양 덕에 기존 성능보다 몇 배는 더 빠른 최신형 기차로 변신한 것이다. 이러한 선의 모양은 경제대공황으로 위축된 당시 사람들에게 차별화된 기능의 제품을 만나는 것 같은 시각적인 환상을 심어줬다.
어디로 갈 것인가, 어떤 속도로 갈 것인가

선의 역동성은 빠르게, 느리게, 이쪽으로, 저쪽으로 의도한 대로 사람 마음을 유도한다. 시선은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뇌가 눈의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하며 함께 작동한다. 눈은 시각 정보를 수집해 뇌로 전달하고, 뇌는 가설을 설정해 눈이 다른 부분을 보도록 명령한다. 뇌에서 일어나는 내적인 내용이 변화되기 전까지 내적 세계와 외적 세계의 순환 고리는 반복된다(로버트 L. 솔소의 ‘시각심리학’).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가 “회화 작품을 존재하도록 하는 것은 외적 형태가 아니라, 이들 형태 속에 살아 있는 힘”이라고 말했듯, 내적 세계에서 형성된 방향성이 외적 세계로 나타나 시선을 사로잡고 마음을 움직여 행동까지 이끌어낸다.
기하학에서 말하는 선이란 점이 움직인 흔적이다. 머무르는 성질의 점이 어딘가를 향해 움직이고자 하는 내적 에너지를 밖으로 표출하면 선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비행기가 지나간 뒤 하늘에 남은 선만 보고도 ‘빠르다’고 생각한다. 땅에서 보면 점같이 작은 비행기가 움직여 선을 형성하는 것처럼, 고유한 내적 에너지의 성격에 따라 속도와 방향이 결정된다.
쇼핑몰에서 느낀 어지러움은 천장의 곡선 속에 살아 있는 긴장, 즉 방향과 속도의 힘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갑자기 맞닥뜨린 선의 속도와 방향이 내적 세계와 어긋나면 혼란스러운 것처럼 말이다.
어디로 갈 것인가, 어떤 속도로 갈 것인가, 내면의 선을 그리는 권한은 오직 자신에게 있다. 두둥실 뜬 밤하늘 달을 볼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바삐 달린 하루를 마무리하는 선의 끝, 고요한 점으로 돌아가는 시간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신연우는 디자인, 영화, 사진, 광고 등 시각코드 사례의 인문학적 통찰을 통해 일상의 장면을 돌아보고 마음을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는 강의와 글쓰기 및 창작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저서로 ‘그냥 좋은 장면은 없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