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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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천상의 화원’ 과연 신선이 노닐 만하구나

곰배령 가는 길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0-07-12 1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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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비로운 ‘천상의 화원’ 과연 신선이 노닐 만하구나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곰배령. 생긴 모양이 곰이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누운 모습과 닮았다 해서 그리 이름이 지어졌을까? ‘곰무’라는 토속 농기구를 닮았다 해서 그렇게 불렸다는 설도 전해진다. 어떤 연유로 인제의 점봉산 동쪽 봉우리에 곰배령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알 수 없지만, ‘천상의 화원’이라 일컬어질 만큼 아름다운 곳이란 점은 그곳에 발 디딘 사람 모두 공감한다.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될 만큼 태곳적 자연의 신비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2009년 7월, 22년 만에 개방된 뒤 여러 언론에서 소개해 많이 알려졌지만 그곳을 찾아가기란 쉽지 않다. 하루 2번 다니는 대중교통 시간을 맞추기 어려우니 따로 차를 가져가야 하고, 기분 내킨다고 무작정 찾아갔다가는 되돌아와야 한다. 인제국유림관리소에 늦어도 하루 전에는 팩스로 신청해야만 입산이 가능한데, 일일 인원은 100명으로 제한한다. 단체 관광객도 받지 않고 입장도 정해진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1일 인원 100명으로 제한 미지의 세계

    7월 2일 곰배령을 찾았다. 이틀 전 신청했는데 장마 소식 덕분에 자리에 여유가 있었다. 곰배령 초소에서 명단 확인을 거치고 노란색 조끼를 입은 뒤에야 입장이 가능하다. 길은 안내인이 인도를 한다. 따로 걷고 싶은 사람은 무리에서 빠져나와 걸어도 되지만 곰배령에 있는 수많은 야생화와 나물, 나무의 이름을 모른 채 지나가고 싶지 않다면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기자는 안내인 한순애(44) 씨의 도움을 받았다.

    초소에서 곰배령에 자리 잡은 유일한 마을이자 1차 목적지인 강선마을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울창한 숲에 들어선 사람들이 좋다고 탄성을 내지르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산새들은 저마다 소리를 내며 우는데 신갈나무, 서어나무, 피나무 숲이 워낙 울창해 어디에 있는지 찾기 쉽지 않다. 숲에 가려 햇빛이 들지 않으니 숲 터널은 어둑어둑하고 안개도 자욱해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같다. 마을에 전기를 대주는 전봇대만 없다면 영화에서 보던 원시림과 구분이 안 된다. 초소에서 조금 걸으면 만나는 약수물로 목을 적시는 것이 좋다. 곰배령까지 더 이상 약수터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곰배령은 기후 변화가 심한 곳이다. 영동, 영서 지방의 경계라 산 아래쪽이 맑아도 정상에 오르면 눈이나 비가 내리는 경우가 많다. 7월에는 많은 꽃이 피어 약동하는 생명력을 만끽하기 좋다. 꿩의다리, 미나리아재비, 초롱꽃, 쥐오줌풀 등 안내인의 설명에 열심히 메모하며 하나씩 특징을 구별하려 했으나 종류가 워낙 많아 쉽지 않았다. 한씨도 “안내를 하려고 공부 많이 한다”며 웃었다. 곰배령에 있는 동식물이 워낙 다양해 공부를 해도 끝이 없다.

    숲길을 따라 걷는데 하얀 캔버스가 눈에 들어왔다. 온통 초록색 숲 속에서 만나는 캔버스가 낯설어 다가가보니 안내판이 있다. 예술가 김아타 씨의 ‘The Project-Drawing of Nature’란 작품이다. ‘인간의 간섭 없이 캔버스가 스스로 자연의 변화와 흔적을 채집하는 프로젝트’로 ‘비와 눈과 바람과 자연의 향기가 캔버스에 스며들 것’이라고 한다. 곰배령에 6월 17일 설치돼 2년 뒤에 캔버스를 걷는다고 하는데 자연이 어떤 그림을 그릴지 무척 궁금하다.

    곰배령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저마다 매력이 있다. 봄에는 겨울나무 사이 양지에 핀 작고 여린 꽃이 매력적이고, 여름에는 왕성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가을에는 단풍 숲길이 절경이고 겨울에는 험하지 않아 눈 쌓인 숲길을 만끽할 수 있다. 여름 곰배령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은 폭포. 작은 폭포가 진동계곡을 따라 군데군데 있는데 청량한 물소리를 낸다. 폭포도, 계곡물도, 야생화도, 나무도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다. 그렇다고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놓친 풍경은 돌아 나올 때 보면 된다.

    신비로운 ‘천상의 화원’ 과연 신선이 노닐 만하구나

    곰배령은 강선계곡을 벗삼아 오른다.

    약초와 나물 지천 ‘거대한 식량창고’

    이윽고 강선마을이 보였다. 신선이 내려와 살 정도로 아름다운 마을이라 강선이란 이름이 붙었다. 강선마을 첫 집은 염기영 할아버지 부부가 산다. 할아버지가 키우는 강아지 똘똘이, 호동이가 뛰어내려와 길손을 반겼다. 사람을 좋아하는 강아지들은 탐방객들에게 다가와 쓰다듬어 달라고 난리였다. 곰배령에서 만난 동물은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강선마을에서 풀어 키운 오골계도 사람 옆을 지나고, 산짐승인 다람쥐도 가까이 다가와서 사람들을 바라본다. 하지만 멧돼지는 예외다. 곰배령 오르는 길 곳곳에 흙이 마구 파헤쳐진 멧돼지 흔적이 있지만 멧돼지가 잘 나타나지는 않는다. 어쩌면 탐방객에게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마을에서 정상까지는 1시간이 좀 더 걸린다. 마을이 끝나는 자리에는 계곡물 옆으로 215년 된 쪽버들나무가 서 있다. 돌징검다리에 앉아 세수를 한 뒤 숲길을 본격적으로 걸을 준비를 했다. 울타리를 지나면 곰배령 가는 좁은 숲길이 시작된다. 이제부터가 ‘진짜’ 곰배령길이다.

    숲의 매력을 오롯이 간직한 이 길이 누군가에게는 ‘거대한 식량창고’로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 약초, 나물이 많기 때문이다. 염기영 할아버지도 “오른쪽·왼쪽 바지주머니, 가방에까지 나물을 뜯어가는 사람들 때문에 속상하다”고 말했다. 안내인이 있어도 막기 쉽지 않다. 말릴 새도 없이 순식간에 따버리기도 하고, 흩어진 탐방객을 일일이 단속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지난해에는 곰배령길 곳곳에 널린 박새를 산마늘로 착각해 생으로 먹은 사람이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다. 자칫 잘못 버섯이나 나물을 뜯었다가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곰배령길의 걷기 난이도는 등산과 산책의 중간이지만 가볍게 오를 수 있는 길은 아니다. 먼저 올랐다가 내려오는 사람에게 “얼마나 남았느냐”고 묻는 탐방객이 종종 있는 걸 보면 만만한 길은 아닌 듯하다. 안내인들은 저마다의 스토리텔링으로 탐방객들의 이목을 끌어 곰배령길 오르는 발걸음을 가볍게 만든다. 곰배령 좁은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작은 폭포가 하나 나오는데 한씨는 나무꾼과 선녀 폭포라 소개했다. 부부, 연인 단위로 찾는 사람들에게 오르막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선물이다. 여자는 선녀란 비유에 기분이 좋고, 남자는 사랑하는 사람이 선녀라니 마다 할 리 없다. 폭포 주변을 곰배령 옛사람들은 ‘배판’이라 부르기도 했다. 현재 좁은 계곡물을 보면 전혀 상상할 수 없지만 몇천 년 전에는 배가 다녔다는 전설이 있다.

    곰배령에 갔다가 오는 탐방객들에게 “어때요” 물으니 “정말 좋아요, 꽃들이 예뻐요, 행복해요”란 대답이 합창이 돼 전해온다. 내려오는 사람들은 여유가 있지만 오르는 사람들은 마지막 ‘깔딱고개’를 넘어야 한다. 체력이 달리는 사람들은 여러 번 나눠 쉬며 오르는데 간혹 곰배령을 눈앞에 두고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깔딱고개가 힘들다 해도 옛날에 다리도 없는 지게를 지고 곰배령을 오르내리며 쉴 때조차 선 채로 한숨을 돌려 선질꾼이라 불렸던 보부상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힘이 날 것이다. 토박이 김상배 씨는 “인제와 양양을 오가던 선질꾼들이 이곳을 지났다. 약초, 당귀, 콩을 인제에서 가져다 양양에 내려놓고 소금, 해산물을 다시 인제로 가져갔다. 무거운 봇짐을 메고 산길을 오르내렸던 선질꾼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고 말했다. 순간 등에 멘 배낭이 가볍게 느껴지며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된 뒤 고즈넉한 숲의 정취만 남았지만, 한때는 이곳에도 선질꾼과 주막 안주인 사이의 뜨거운 로맨스가 피어나고, 위폐를 만들던 주전골의 무시무시한 산적들 이야기가 나돌았다.

    기운이 나 힘차게 오르는데, 죽어 밑동만 남은 주목나무가 보였다. 앞서 걸어가던 일행은 별 관심 없이 지나쳤다. 기자도 무심코 지나치는데 안내인이 붙잡으며 주목나무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주목나무는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산다는 나무로서 나무껍질이 붉고, 속살도 붉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 모양은 전나무와 비슷하다. 남은 밑동에 낀 이끼가 시간의 더께처럼 앉았다. 나무의 나이를 가늠해보니 아득했다. 곰배령에 배가 다니던 그때 있던 나무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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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곰배령 정상엔 드넓은 초원 펼쳐져

    어두웠던 숲길 사이로 햇빛이 비친다 했더니 어느새 곰배령 정상에 다다랐다. 언제 숲길이 있었느냐는 듯 넓은 초원이 펼쳐졌다. 초원 곳곳에는 초여름 야생화, 점봉산을 배경 삼아 사진 찍는 사람들이 보였다. 올라오며 느낀 시장기를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낌없이 주는 자연을 배운 까닭인지 이것저것 서로 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뻥 뚫린 기분을 주체하지 못한 한 아주머니는 노래 한 자락 부르고, 창피하다며 말리는 일행도 흥이 나 절로 웃고….

    고개를 들면 점봉산이 바로 보인다. 하지만 오를 순 없다. 출입금지 표시와 함께 산림대장군, 산림여장군 장승이 서 있다. 점봉산 오르는 길은 2026년까지 통제된다. 몰래 출입금지 구역을 넘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랬다가는 큰일이다. 겉으로 보기엔 길이 잘 닦인 것 같지만 조난당하기 십상이다. 이미 등산로들이 제 모습을 잃어 토박이도 찾기 힘든 길이 됐다.

    되돌아 내려오는 길은 무척 짧다. 올라갈 때는 힘들어 미처 보지 못했던 야생화, 풀벌레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리막을 가는 발걸음이 자연스레 빨라지니 아쉬움에 숲의 정취를 붙잡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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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p.

    ☞ 교통편

    승용차 ① 서울→올림픽대교→미사리 방향→팔당대교→6번 국도→양평 용두리에서 44번 국도→홍천→철정삼거리→인제 방향 직진→31번 국도 현리(15분)→현리 시내 방태교→진동계곡 이정표 따라 우회전→곰배령 초입

    ② 내비게이션 이용 시 ‘진동분교’

    대중교통 서울 동서울터미널, 상봉터미널→인제터미널→현리행 버스 이용, 현리 도착→설피밭행 버스 이용, 설피밭(곰배령) 도착. 설피밭 버스가 하루 2번밖에 없어 불편해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 코스 곰배령 출입 초소→강선마을→곰배령 왕복 약 10km

    ☞ 곰배령 탐방안내

    참가비 무료

    운영기간 12월 16일~1월 31일, 4월 16일~10월 31일

    운영일시 4월 16일~10월 31일 수·목·금 1일 2회(오전 9, 10시), 주말 1일 3회(오전 8, 9, 11시) 12월 16일~1월 31일 수·목·금 1일 1회(오전 9시), 주말 1일 2회(오전 9, 10시)

    탐방인원 1일 100명

    탐방 신청 입산 전 오후 6시까지 인제국유림관리소로 신청자의 주소, 이름,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입산날짜를 적어 팩스(033-461-0450)로 보냄. 전화 문의 033-463-8166

    ☞ 주변 식당 및 숙소 곰배령 초소 주변 펜션 이용, 주차장에는 곰취 비누 등 기념품도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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