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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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리브라는 안 되고 스테이블코인은 되는 이유

스테이블코인 허용은 ‘기술’ 아닌 ‘정치’ 문제

  • 김지현 테크라이터

    입력2025-12-2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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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시대를 맞아 누가 화폐를 만들고 통제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 GETTYIMAGES

    디지털 시대를 맞아 누가 화폐를 만들고 통제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 GETTYIMAGES

    2019년 페이스북(현 메타)이 글로벌 디지털 통화 ‘리브라(Libra)’ 프로젝트를 추진하자 거센 반발이 일었다. 이 프로젝트는 달러, 유로, 파운드, 엔 등 주요 법정통화를 섞은 ‘통화 바스켓(basket)’을 기반으로 리브라를 만들고 페이스북·우버·비자 등 28개 기업이 함께 운영한다는 구상이었다. 24억 명에 이르는 사용자를 보유한 페이스북이 사실상 국제통화를 발행하는 구조였던 만큼 미국과 유럽 정부는 리브라가 통화 주권을 위협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리브라 프로젝트는 각국의 집중 규제를 견디지 못하고 2022년 종료됐다.

    그런데 2024년 이후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USDT(테더)와 USDC(USD코인)는 약 200조 원 규모로 성장했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싱가포르는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 지급 수단으로 편입하고 있다. 페이팔, 비자, 스트라이프 같은 결제서비스 제공 기업도 스테이블코인을 공식 결제망에 통합했다. 왜 리브라는 규제되고 오늘날 스테이블코인은 허용될까.

    정부 감독 우회하려다 집중 규제받은 ‘리브라’

    먼저 리브라는 ‘사기업이 만든 기축통화’라는 점이 문제였다. 리브라는 현 스테이블코인과 달리 특정 국가 화폐에 일대일로 연동되는 방식이 아니었다. 여러 통화와 단기국채를 섞은 바스켓을 기반으로 설계된 탓에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에 가까운 성격을 가진 새로운 국제통화였다. 따라서 통화정책 영향력이 민간 기업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위험성이 부각됐다. 각국 정부는 자금세탁 위험이나 소비자 보호 문제보다 이것을 더 걱정했다. 

    반면 현재 허용되는 스테이블코인은 정부에 유리한 구조로 설계돼 있다. USDT나 USDC는 준비금을 대부분 미국 단기국채나 현금성 자산으로 보유한다. 따라서 디지털 경제가 확대될수록 달러 표시 자산의 수요가 늘어나 미국 금융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 리브라와 USDT·USDC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하나는 사기업의 통화 권력이고, 다른 하나는 달러 패권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수단이다.

    각국 정부가 리브라와 달리 스테이블코인을 ‘규제할 수 있는 금융자산’으로 본다는 점도 큰 차이다. EU는 2024년 가상자산시장(MiCA) 법안을 시행해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으로 전면 편입했다. 일본은 신용기관이 법정통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미국도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 논의를 공식화하고 달러 기반 디지털 결제 생태계를 확장하려 하고 있다. 각국 정부가 스테이블코인을 관리할 규제 장치를 만들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리브라는 정부의 감독 체계를 우회하려 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제도권으로 편입되고 있는 스테이블코인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메타, 구글, 애플, 아마존 등 거대 플랫폼 기업은 지금이라도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려 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 이들 기업은 언제든지 페이팔처럼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할 능력이 있다. 만약 애플이 ‘애플 코인’을 만들어 애플페이, 앱스토어 등에 적용한다면 이는 iOS를 쓰는 15억 대 기기에서 즉시 사용할 수 있는 글로벌 결제 수단이 된다. 메타는 35억 명에 이르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왓츠앱 사용자를 잠재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 그만큼 신용카드사나 은행이 관리하는 기존 결제망을 빠르게 압도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각국 정부는 플랫폼 기업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플랫폼 기업이 자체 코인을 발행하는 순간 국가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거대한 금융 생태계가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제 데이터가 금융당국이 아닌 플랫폼 기업으로 이동하고, 소비자의 잔액이 은행 예금이 아닌 플랫폼 코인으로 묶여 있게 되면 통화정책 효과는 약해지고 금융 감독의 통제 가능 범위도 줄어든다. 미국 정부는 달러를 강화하는 스테이블코인은 허용하면서 규제를 피하는 플랫폼 기업의 코인은 다시 한 번 강하게 규제하려 할 것이다. 리브라의 실패는 ‘기술’이 아닌 ‘정치’ 문제였다.

    네이버-두나무 합병, 디지털 통화 프로젝트 신호탄 

    플랫폼 기업의 통화 실험을 둘러싼 긴장이 항상 통제와 규제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네이버파이낸셜이 국내 최대 블록체인 기업 두나무를 인수하면서 국내에서도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통화 프로젝트가 현실적인 단계에 진입했다. 두나무의 블록체인·가상자산 시스템과 네이버페이의 방대한 간편결제 생태계의 결합은 단순한 서비스 확장의 개념이 아니다. ‘결제-자산-블록체인-투자’가 모두 이어지는 통합 디지털 금융 플랫폼의 새로운 출현을 의미한다.

    이 결합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플랫폼 기업은 ‘사전 충전’ ‘폐쇄형 포인트’ ‘구독 기반 소비’ 등 단순히 결제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준이 아니라, 화폐 시스템에 버금가는 생태계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에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또는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토큰이 등장하면 사용자는 기존 은행 계좌나 카드 결제를 거치지 않고도 플랫폼 내부에서 결제·송금·투자·정산을 모두 처리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가능한 상황이다.

    지금 전개되는 플랫폼 기업의 스테이블코인 실험은 국가의 통화 주권과 플랫폼의 금융 권력이 다시 충돌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리브라는 실패했지만 그것이 제시한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디지털 시대 화폐는 누가 만들고 누가 통제할 것인가. 이제 남은 것은 정치적 선택이다. 이 선택은 시민과 사용자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결정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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