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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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즈볼라, 수장 나스랄라 폭사에도 땅굴에서 이스라엘에 결사항전

북한 도움으로 산악지대에 견고한 지하터널 구축… 지휘통제실·미사일 갖춘 땅속 군사기지

  • 이장훈 국제문제 분석가 truth21c@empas.com

    입력2024-10-0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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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바논이라는 국가 이름은 고대 히브리어 ‘하얗다’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국토 대부분이 해발 2000~3000m의 산악지대에 위치해있고 산봉우리에 하얀 눈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중동 지역에서 사막이 없는 유일한 국가인 레바논에는 국토를 남북으로 가르는 길이 240㎞의 레바논 산맥과 안티레바논 산맥이 있다. 레바논에는 국기에도 그려져 있는 ‘백향목’으로 불리는 삼나무가 많이 자란다. 삼나무는 해발 2000m 이상에서만 자라는 침엽수로 단단한 재질과 은은한 향이 벌레를 막아줘 고대부터 최고의 건축 자재란 말을 들어왔다. 이스라엘의 솔로몬 국왕도 레바논에서 삼나무를 수입해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을 지었다고 한다. 구약성경에는 레바논의 산악지대에 삼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다는 구절이 있다.

    수백㎞ 거미줄 같은 터널 네트워크 구축

    9월 29일(현지 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르트 남부 교외가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초토화됐다. [뉴시스]

    9월 29일(현지 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르트 남부 교외가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초토화됐다. [뉴시스]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최고지도자 하산 나스랄라. [뉴시스]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최고지도자 하산 나스랄라. [뉴시스]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에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산악지대에 구축한 거대한 지하터널, 즉 땅굴 덕분에 끈질기게 버티고 있다. 헤즈볼라는 북한과 이란의 도움으로 구축한 터널 등에 의존해 주요 전력을 보전하고 있다. 헤즈볼라는 2006년 이스라엘과 한차례 전쟁을 치른 이후 총연장 수백㎞의 거미줄 같은 터널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터널 중 일부는 중장비를 운반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하며 압도적 화력을 퍼붓는 이스라엘군의 폭격도 견딜 수 있다. 헤즈볼라는 9월 로켓 발사기와 무장대원들을 실은 트럭이 터널 내부를 달리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헤즈볼라는 그동안 15만 발에 달하는 로켓과 미사일을 터널에 비축해왔다. 이스라엘군은 최근 ‘북쪽의 화살’이라고 명명한 레바논 남부 지역의 헤즈볼라 군사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폭격으로 수만 발의 로켓과 미사일 및 미사일 발사대, 드론 등을 파괴했다고 밝혔지만, 헤즈볼라의 고성능 무기 대부분은 터널에 그대로 보관돼 있다. 헤즈볼라는 450∼500㎏의 탄두를 실을 수 있는 이란제 파테흐-110 지대지 탄도 미사일 등을 비롯해 사거리 250~300㎞인 미사일 1500기, 이스라엘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있는 수천 기의 탄도 미사일을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헤즈볼라의 군사력은 테러단체 수준이 아니라 정규 군대와 같다. 헤즈볼라는 정규 병력과 예비 병력을 합쳐서 6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는 추정했다.

    헤즈볼라가 구축해둔 터널은 이스라엘군이 그동안 가자지구에서 파괴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터널보다 크고 정교하고 견고하다. 안드레아스 크레이그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교수는 “헤즈볼라의 터널은 하마스가 가자지구에 건설한 것보다 훨씬 튼튼하고 강력하다”며 “하마스의 터널은 모래흙이 많은 연약지반을 파서 만들어진 것인 반면 헤즈볼라의 터널은 바위를 뚫고 산악 지형에 건설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싱크탱크 알마연구․교육센터(알마센터)는 2021년 ‘헤즈볼라:터널들의 땅’이라는 보고서에서 헤즈볼라가 북한의 지원으로 레바논 남부에 오펜시브(공격) 및 인프라(기반시설) 터널이라는 두 유형의 터널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오펜시브 터널들은 북한의 땅굴과 유사한 군사용으로 사용됐으며. ATV(경량 고기동 차량)와 오토바이, 소형 차량을 수송할 수 있다. 가령 레바논의 지중해 도시 시돈 인근에서 6km 떨어진 젠스나야부터 인근 산맥을 타고 남동부 마슈가라까지는 45㎞의 ‘공격용 터널’이 연결돼 있는데, 파테흐-110 지대지 미사일을 장착한 트럭이 이 터널을 빠져 나와 미사일을 발사한 뒤 다시 터널 속으로 들어가 다른 곳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알마 센터에 따르면 이런 터널들은 북한의 조선광업개발무역공사(KOMID)가 헤즈볼라와 1300만 달러의 계약을 맺고 공사한 것으로, 실제 공사는 북한의 기술지도 하에 민간 건설사로 위장한 헤즈볼라 산하 기업들이 했다고 한다. 공사의 감독은 헤즈볼라에 재정과 무기 지원을 하는 이란의 혁명수비대가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KOMID는 북한의 탄도미사일과 재래식 무기의 주요 수출업체로, 유엔 안보리의 제재 명단에 올라가 있다. 이스라엘군은 2018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한 달여에 걸쳐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 구축된 헤즈볼라 터널을 파괴하기 위한 ‘북방의 방패’ 작전을 벌인 적이 있다. 당시 이스라엘군은 최소 헤즈볼라의 터널 6개를 발견해 파괴했었다.

    참수작전 펼치는 이스라엘

     2021년 12월 16일(현지 시간) 이스라엘 군인이 레바논과 이스라엘을 가로지르는 지하 터널 속 계단을 오르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가 이 터널을 뚫었다고 밝혔다. [뉴시스]

    2021년 12월 16일(현지 시간) 이스라엘 군인이 레바논과 이스라엘을 가로지르는 지하 터널 속 계단을 오르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가 이 터널을 뚫었다고 밝혔다. [뉴시스]

    헤즈볼라는 중앙 본부가 위치한 베이루트와 시리아 국경 인근 베카 계곡의 보급 기지를 레바논 남부와 연결하는 인프라 터널들을 36곳이나 구축했다. 알마센터는 “이 터널들에는 지휘통제실, 무기·보급창고, 야전 진료소 뿐 아니라 모든 유형의 미사일을 발사하는 데 사용하는 특정 지정 수직 통로들이 갖춰져 있다”며 “수직 통로는 로켓, 지대지 미사일, 대전차 미사일, 대공 미사일과 같은 무기를 발사할 수 있는데, 숨겨져 있고 위장돼 있어 지상에서는 탐지할 수 없다”고 밝혔다.

    보아즈 샤피라 알마센터 선임연구원은 “헤즈볼라를 돕는 북한 회사들이 여러 곳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KOMID”라면서 “북한 전문가들이 레바논에 들어와서 터널 굴착을 돕고 노하우를 전수했으며, 헤즈볼라와 이란 혁명수비대 지휘관들이 북한에 가서 공부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샤피라 연구원은 “터널들은 레바논에서 시리아로도 연결돼 있어 무기 밀수에 사용되고 있다”며 “이란의 무기들이 시리아에서 터널들을 통해 레바논으로 옮겨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샤피라 연구원은 “헤즈볼라는 레바논 전역에 걸쳐 수백 ㎞에 달하는 터널들을 파놓았다”면서 “헤즈볼라는 지난 20년 넘게 매일 40㎝씩 땅을 팠다”고 덧붙였다.
    헤즈볼라 전문가인 카르밋 발렌시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INSS) 연구원은 “이스라엘군은 이미 가자지구 터널에서 하마스의 독립적인 전투 부대들을 제거하기 위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왔다”며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에서 지상전을 벌일 경우 헤즈볼라의 터널 때문에 똑같이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전역의 헤즈볼라 거점을 융단 폭격하는 동시에 최고지도자인 하산 나스발라를 비롯해 최고위급 인사를 잇달아 제거하는 등 ‘참수작전’을 벌여왔다. 실제로 이스라엘군은 9월 27일(현지 시간) 새로운 질서(New Order)’라는 작전명으로 베이루트 남부 교외 다히예에 있는 주거용 건물의 지하 18m 벙커인 헤즈볼라 지휘 본부를 공습했다. 당시 나스랄라를 비롯해 헤즈볼라의 남부사령관인 알리 카라키, 압바스 닐포루샨 이란 혁명수비대(IRGC)쿠드스군의 레바논·시리아 지역 사령관이 폭사했다. 이스라엘군은 전투기들을 동원해 2000파운드(907㎏)급 BLU-109 벙커버스터 등 폭탄 100여 발을 이곳에 퍼부었다. 나스랄라는 32년간 헤즈볼라의 최고지도자로 군림하면서 헤즈볼라를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이슬람 민병(民兵) 세력’으로 만들어낸 인물이란 말을 들어왔다. 특히 이란을 대리하고 있는 ‘저항의 축’ 세력들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지도자였다.

    나스랄라가 사망하자 헤즈볼라는 물론 저항의 축 세력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다짐했다. 특히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레바논과 자랑스러운 헤즈볼라 지원에 나서는 것은 모든 무슬림의 의무”라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헤즈볼라에 대한 전면적인 지원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반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나스랄라는 이란이라는 ‘악의 축’의 중심이자 핵심 엔진이었다”면서 “아야톨라 정권에 말한다. 누구든 우리를 때리면 우리는 그들을 때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이란 및 저항의 축 세력들은 앞으로 더욱 치열하게 무력 대결을 벌일 것이 분명하다.

    “헤즈볼라 무너지지 않을 것”

    주목할 점은 나스랄라를 비롯해 헤즈볼라 지휘부를 제거함으로써 가장 눈엣가시인 헤즈볼라를 무력화하려는 이스라엘의 의도가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헤즈볼라 특유의 유연한 지휘체계상 누가 죽더라도 순식간에 공석이 메워지기 때문이다. 나스랄라의 후임으로는 사촌인 하셈 사피에딘이 선출됐을 뿐만 아니라 표적공습으로 숨진 헤즈볼라의 2인자인 라드완 특수작전 부대의 이브라힘 아킬 사령관의 후임도 즉각 임명됐다. 영국 카디프대의 아말 사아드 교수는 “나스랄라 사망이 헤즈볼라 구성원과 지지자들의 사기를 엄청나게 떨어뜨리는 일”이라면서도 “헤즈볼라는 이런 종류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조직으로, 회복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리나 카티브 연구원도 “나스랄라의 죽음이 조직 사기에 큰 타격을 주겠지만 헤즈볼라가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헤즈볼라는 1982년 이후 이란의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대리 그룹 가운데 하나였다. 미국 싱크탱크인 워싱턴 연구소의 파진 나디미 연구원도 “이란은 이미 붕괴한 헤즈볼라의 지도부 구축 작업을 돕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헤즈볼라는 견고하게 구축해 놓은 터널에서 버티고 이란의 지원을 받으면서 이스라엘과의 지하드(성전)를 계속 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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