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눈동자 속엔
당신 눈동자 속엔내가 떠나야 될나의 바다가 있다들여다볼수록 깊어진다들여다볼수록 넓어진다푸르르 꿈꾸는 바닷물결밀고 써는 부대낌들하얗게 재우는 모진 바람 속을갈매기 한 마리날고 있다당신 눈동자 속엔내가 건너야 될나의 수평선이 또 하나어…
201307012013년 06월 28일산벚나무가 지켜보다
그때, 한 벚꽃이 손등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날아갔다네가 그토록 애달프게 품어온 그리움이 어쩌면 幻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너는 산길에 주저앉고 말았다떨어진 꽃잎들이 나뭇잎 위에서 천천히 말라가고 있었다네 애달픔도 …
201306242013년 06월 21일그리움
오래 멀리 떨어져 사는 게 차라리 다행이다그만큼 넓은 바다와 하늘이 우리 사이에서 출렁여왔다물결이 밀어오고 바람이 실어오는 기억의 누더기들을 주워한 조각 한 조각 꿰매고 또 꿰매면서 다시 만드는 기억 속에서도너의 모습은 변화하고 있…
201306172013년 06월 14일樂貧(낙빈)
만질 수 있는 가난이 좋다.빗방울과 산사나무 열매의 붉은빛으로빚은 가난,불가피하게 당신이 가난이라면내가 빈 쌀독의 안쪽에 고요히 들어앉은공허라도 좋다.묵은 울음들을 쟁인 몸의 가난과허리에 흉터가 되어버린 가난에 대해서는할 말이 없다…
201306102013년 06월 07일꽃밥
꽃을 피워 밥을 합니다아궁이에 불 지피는 할머니마른 나무 목단, 작약이 핍니다부지깽이에 할머니 눈 속에 홍매화 복사꽃 피었다 집니다어느 마른 몸들이 밀어내는 힘이 저리도 뜨거울까요만개한 꽃잎에 밥이 끓습니다밥물이 넘쳐 또 이팝꽃 핍…
201306032013년 05월 31일박꽃
그날 밤은 보름달이었다.건넛집 지붕에는 흰 박꽃이수없이 펼쳐져 피어 있었다.한밤의 달빛이 푸른 아우라로박꽃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박꽃이 저렇게 아름답구나.- 네.아버지 방 툇마루에 앉아서 나눈 한마디.얼마나 또 오래 딴생각을 …
201305202013년 05월 20일흰올빼미
흰올빼미는 눈올빼미 또는 북극올빼미라고도 불린다. 머리를 270도가량 돌릴 수 있는데 머리가 잘 안 돌아갈 때 나는 이 올빼미를 생각하곤 한다. 북극의 사나운 눈보라를 헤치며 날아다니는 백야의 유령 같은 새, 눈 오는 날 당신도 눈…
201305132013년 05월 10일길 위에 인생
여기야 여기이쯤잠시 쉬었다 가자춘설 난분분한데천수만 상공 붐비는저, 철새 떼시동 끈 배 되어일렁이는 물살에 기대이 한밤누가 여독을 푸는가신천지 찾아 떠도는길 위에 인생내 밟고 온 삶 바라보는 요즘 ‘여기가 어디지’라며 걸어온 길을 …
201305062013년 05월 03일유랑
나, 걸었지모래 우에 발자국 남기며길은 멀고도 먼 바다목말라 퍼먹을게 없어 기억을 퍼먹으며뒤를 돌아보았지누군가의 목소리가 날 부를까이미 지워진 발자국되돌아갈 수 없었지길 끝에는 새로운 길이 있다고부스러기처럼 씨앗처럼 모래 흩날리는되…
201304292013년 04월 29일일상사
가슴뼈를 빠갠다 심장을 멈춘다 펌프로 피를 강제 순환시킨다 대동맥을 자른다 인공 혈관으로 끼운다 심장을 다시 뛰게 한다무서움으로 수술 이전에 나는 이미 초죽음이 되어 있었다수술실에는 초록색 수술복을 입은 10여 명의 젊은 간호사들이…
201304222013년 04월 19일러시안 블루
고양이가 새벽부터 반복적으로 울어댄다야옹야옹야옹지상을 뜨고 싶은 모음들의 강반복적으로 울어야만그리움의 끝에 가 닿을 수 있다는 명제가고양이 울음에서 성립한다어느 날 한식구가 된 진회색 러시안 블루처음엔 러시아 이름 미하일로비치의 애…
201304152013년 04월 12일봄날은 간다
고즈넉한 산사山寺암자 툇마루에 쏟아지는 햇살 아래꾸벅꾸벅 졸고 있는 동자승童子僧어디선가 산꿩이 울면잠자던 계절은 기지개를 켜고산천은 온통 초록으로 치장하는데푸른 하늘엔신선神仙의 하품 같은 두둥실 구름 한 점임이여!봄날은 그렇게 가더…
201304082013년 04월 05일일곱 살 적 인연
저수지 둑방 길을 달리다가 꽈리를 틀고 앉아 있던 뱀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만 달리던 힘으로 콱! 밟고 나는 미끄러져 넘어졌지요. 맨발로 뱀을 밟던 순간, 물컹하고 미끄러지던 그 감촉이 아직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그는 용이 되어 …
201304012013년 03월 29일청춘계급
우리는 조르주 무스타키의 를 들었다우리는 피터 폴 앤 메리의 를 들었다우리는 폴 버터필드의 를 들었다누가 노래하는가?청춘계급!청춘은 참전용사에게 훈장이다. 하늘과 하늘을 이어주던 무지개다. 듣는 세대가 보는 세대를 위하여 노래한다.…
201303252013년 03월 22일비정한 길
길에 진액을 다 빼앗긴 저 바싹 마른 노인길이 노인을 밀어내는지 노인은 걷지도 못하고 길 위에서 촘촘 튄다어찌 보면 몸을 흔들며 자신의 몸속에 든 길을 길 위에 털어놓는 것 같다자신이 걸어온 길인, 몸의 발자국 숨을 멈추고서야 자신…
201303182013년 03월 15일3월
이제는 달라져야겠다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방에 화분을 새로 들여놓는다 이제는 달라져야겠다겨울이 대문 열고 나가자 바람이 따라 나가네 에이 문 좀 닫고 나가지그래도 달라져야겠다3월엔 뭔가 달라져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도, 창문 밖으로 보이는…
201303112013년 03월 08일반성 608
어릴 적의 어느 여름날우연히 잡은 풍뎅이의 껍질엔못으로 긁힌 듯한깊은 상처의 아문 자국이 있었다징그러워서나는 그 풍뎅이를 놓아 주었다.나는 이제 만신창이가 된 인간그리하여 주主는나를 놓아주신다.여행을 하고 돌아와 반신욕을 하면서 우…
201303042013년 03월 04일獨樂堂
獨樂堂 對月樓(독락당 대월루)는 벼랑꼭대기에 있지만옛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내려오는 길을 부셔버린 이만약 내려오는 길이 없다면, 세상 어딘들 올라갈 수 있을까. 정상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201302252013년 02월 22일화살
새끼 새 한 마리가 우듬지 끝에서 재주를 넘다가그만 벼랑 아래로 굴러떨어졌다먼 길을 가던 엄마 새가 온 하늘을 가르며쏜살같이 급강하한다세계가 적요하다우듬지와 뿌리 간 거리가 온 우주의 거리다. 화살이 날아가는 수평 공간을 수직으로 …
201302182013년 02월 15일수덕사 거문고 한 채
백반 가루 붉은색 주머니 하나 기저귀처럼 사타구니에 차고 있는 옹골찬 오동나무 수덕사(修德寺) 거문고 한 채 아직도 싱싱하다 아직도 상하지 않고 울고 앉았다 그때 그대로다 눈길 헤치고 그 밤에 보러 간 고려 공민왕의 거문고 다정불심…
201302042013년 02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