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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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평동에서 떠나는 600년 시간 여행

재개발 공사 중 조선시대 집터, 골목길 발굴…보존 해법 찾아야

  •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jerome363@uos.ac.kr

    입력2015-04-06 13: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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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공평동에서 떠나는 600년 시간 여행

    서울 종로타워 뒤편 공평지구 정비사업 현장에서 발굴된 조선시대 유적.

    눈에 보이는 서울이 서울의 전부가 아니다. 600년 도읍지 서울 땅 아래에는 2000년 넘는 길고 깊은 도시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혀 있다. 서울의 과거를 보고 싶지 않은가. 경복궁, 창덕궁 같은 궁궐만이 아니라 오래전 서울 사람들이 살았던 집터와 옛길, 마을들 말이다. 타임머신을 타지 않아도 된다. 잠깐 시간을 내 종로구 공평동에 가보면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매년 ‘제야의 종’ 타종 행사가 열리는 종각 길 건너편에는 지붕을 두 팔로 들고 서 있는 모양의 종로타워가 있다. 그 뒤로 돌아가면 공평지구 정비사업 현장이 나온다. 재개발을 위해 건물을 철거하고 발굴조사 중인데, 바로 여기 땅 밑에서 거대한 유적이 발견됐다. 공사장 주위에 둘러놓은 울타리 군데군데 창이 뚫려 있어 누구든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지표 4m 안에 묻힌 서울의 속살

    유적은 아주 다채롭다. 옛사람들이 쓰던 청자와 백자뿐 아니라 소뼈로 추정되는 동물 뼈도 보인다. 그리 넓지 않은 2~3m 폭의 골목길 흔적이 보이고 좌우로 돌담을 이어 쌓은, 폭 5m가 넘는 큰길도 있다. 조선 전기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한옥 집터도 여러 개 발굴됐다. 이 흔적은 아주 생생해 옛집의 형태를 상상해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건물 배치를 보여주는 주춧돌과 나무기둥부터 마당 밑 배수시설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심지어 불에 타 주저앉은, 대청마루의 새까맣게 탄 나무들까지 볼 수 있다. 저렇게 집이 불타버린 건 임진왜란 때였을까, 아니면 병자호란 때였을까. 어느 혼란의 와중에 불에 타고 무너져 내린 뒤 그대로 땅속에 묻혀 수백 년 만에야 모습을 드러낸 옛 서울의 유적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서울 도심부에서는 어디든 땅을 파면 옛 서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지하 1m 정도까지는 광복 후와 일제강점기, 그리고 19세기 무렵의 유적이 차지한다. 지하 2m까지 더 내려가면 17세기 유적이 나오고, 그 아래에는 임진왜란 때 불탔던 땅의 흔적이 새까만 층을 이룬다. 지하 3~4m까지 더 내려가면 15세기와 14세기 유물을 찾을 수 있다. 조선 초부터 지금까지의 역사가 지표면에서 지하 4m 안팎에 층층이 묻혀 있다는 얘기다.



    지하에 묻혀 있던 옛 서울의 유적이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3년 역시 종로구 청진동에서 대규모 유적이 발굴됐고, 서울시청사 건립 공사 때도 군기시(軍器寺·조선시대 병기 제조 등을 관장한 관청) 유적이 발굴됐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공사 때 역시 거대한 규모의 지하유적이 드러났다. 한양도성 성곽과 그 아래 물이 흘러가도록 만든 이간수문 등이 아치 맨 위 돌을 빼고는 온전한 모습으로 발굴됐다. 성곽 안쪽에서는 훈련도감 부속시설인 하도감의 유적이 발견됐다. 기와포장길, 우물터, 연못, 화약제조장 등 옛 군사시설의 규모와 배치를 보여주는 귀한 유적이다. 서울 도심부 곳곳에 지난 역사를 보여주는 유적들이 묻혀 있음을 알게 되는 건 감동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이 진품 유적들이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DDP 공사 당시 동대문운동장 지하에서 발굴된 진품 유적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했는가. 하도감터 유적은 여기저기 빈 땅에 흩어 놓아버렸고, 이간수문과 옛 성돌 위에는 새 돌을 두부 자르듯 잘라 올렸다. 새 돌 무게에 눌려 옛 돌에 금이 가고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외국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명품 건물을 지으려고 우리의 소중한 유적을 함부로 대하고 훼손해도 되는 것일까.

    유적은 원래 위치에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기본이다. 공평지구 발굴 유적이라도 원 위치와 원래 높이에 보존해야 한다. 여러 시기를 보여주는 유적층을 가능한 한 다 보존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게 하면 이곳은 1980년대 재개발된 공평빌딩의 지하구조물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조선 전기까지 유적들을 한곳에서 보면서 서울의 길고 깊은 도시 역사를 생생하게 체험하는 시간 여행의 명소가 될 것이다.

    서울의 보물, 세계의 유산

    서울 공평동에서 떠나는 600년 시간 여행

    서울 종로타워 뒤편 공평지구 정비사업 현장에서 발굴된 조선시대 주택들의 흔적.

    물론 관련 비용과 관리 문제 등이 과제로 남는다. 유적 보존과 전시를 위한 기술적 해법도 마련해야 한다. 다행히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민들이 공감하고 동의한다면 공평지구 전체를 매입해 보존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지 전체가 아니라 유적이 발굴된 지표면에서 지하 4m까지만 서울시가 매입해 보존하는 방안이 있고, 지하유적의 보존과 전시를 건물주에게 맡기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시민들이 정성과 지혜를 모으면 길은 얼마든 찾을 수 있다.

    꼭 공평동이 아니더라도 서울은 유적의 보고다. 이 땅 곳곳에 차곡차곡 층층이 오랜 역사의 흔적이 묻혀 있다. 그러나 이미 대규모 재개발이 이뤄져 지하까지 깊이 판 곳들은 유적도 몽땅 사라졌을 것이다. 땅속에 묻혀 있는 서울의 역사를 보존하려면 이제라도 지하개발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그리고 발굴로 드러난 유적들은 제자리에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지혜롭게 활용해야 한다.

    서울시는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내년 초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제출하면 가을 현장실사를 거쳐 2016년 초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한양도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면 서울은 세계인의 유산으로 사랑받게 될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성곽 자체만 세계문화유산이고, 성을 쌓아 보호하려 했던 이 도시는 제외된다는 점이다. 이제부터라도 서울의 지하유적들을 체계적으로 보존해 지하유적들까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면 역사도시 서울의 가치가 좀 더 온전히 알려질 것이다.

    서울의 정체성은 새것보다 옛것에 있다. 서울의 오랜 역사 유적들이 곧 서울의 경쟁력이다. 공평지구에 들러 옛 서울의 생생한 유적을 둘러보자. 그리고 함께 고민해보자. 귀한 서울의 보물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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