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월×김해원의 앨범 ‘비밀’.
시상식을 앞두고 후보작들이 발표됐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대중음악상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후보작 중 특히 주목할 것은 올해 최다 후보에 오른 김사월×김해원의 앨범 ‘비밀’이다. 독자 중에 그들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올해의 음반, 올해의 노래, 올해의 신인, 최우수 포크-음반, 최우수 포크-노래 등 총 5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이 이 앨범의 의미를 보여주는 단초다.
김사월과 김해원은 각자 자신의 음악을 해오던 싱어송라이터다. 김사월의 목소리를 알고 있던 김해원이 피처링을 부탁하고자 연락을 취했다. 의기투합한 두 음악인의 작업은 앨범으로까지 이어졌고, 말 그대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낸다. 최근 한국 음악에서는 찾기 힘든 어른의 에로티시즘을 피워낸 것이다.
에로티시즘이라는 단어에서 걸그룹의 그것을 연상하는 이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걸그룹 시장이 레드오션이 되면서 시작된 노출과 섹시 어필의 무한경쟁 말이다. 김사월×김해원은 그것과는 궤를 달리한다. 걸그룹의 섹시즘을 먼저 이야기해보자. 그들의 경쟁은 노출에 기반을 둔다. 2000년도 초반 이효리 신드롬 이후 나타났던, 여가수들의 노출 경쟁과 같은 흐름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방송에 의존하는 한국의 음악 홍보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도전보다 익숙함에 의존한다. 어떤 작곡가가 히트곡을 연쇄적으로 내놓으면 그 작곡가에게 의존하는 패턴이 반복된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비슷비슷한 노래가 차트를 도배한다. SM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기획사를 제외한 아이돌그룹들의 노래가 거기서 거기인 이유다.
그나마 그들의 노래도 받지 못하는 군소 기획사 소속 아이돌은 선택의 여지가 지극히 적다. 그래서 벗는다.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라 이겨 놓고 싸워야 하는 현재의 음악 지형도에서 비슷비슷한 음악을 갖고 승부할 수 있는 지점은 육체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티스트가 아닌 엔터테이너들의 한계이기도 하다.
김사월×김해원의 음악은 그런 ‘노출의 시각화’가 아니다. 이 두 남녀는 말하자면, 음악으로 섹스를 한다. 김사월이 어쿠스틱 기타를, 김해원이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한다. 둘은 노래를 주고받는다. 격정 따윈 없다. 지극히 절제된 목소리로 같은 멜로디를 주고받는다. 때로는 상대 멜로디에 하모니를 더한다. 이는 둘 다 영화를 전공했기에 표현으로서의 연기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들이 주고받는 가사에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밀’부터 ‘사막’에 이르는 7곡 남짓한 노래는 한결같이 서로를 바라보고 객관화하는, 관계의 서사다. 인류의 가장 본질적이자 가장 큰 고민에 대한 은유들이다. 멀리는 세르주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 가까이는 더 엑스엑스(The XX)가 음악적으로 펼쳐냈던 바로 그 분위기다. 끈적한 안개와 달큰한 숨결의 이야기들이다. 바야흐로 성년의 세계에 진입한 남녀의 노래다. 요컨대 어른스러운 소통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노래들이란 얘기다. 머뭇거림을 안다. 숨결을 읽을 줄 안다. 눈을 마주칠 줄 안다.
아이돌 진영에서는 맹목적 유혹을, 싱어송라이터들은 눈을 깐 독백을, 그게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지금의 음악계에서 김사월×김해원은 참된 에로티시즘을 피워 올린다.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그들의 선전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