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브레인의 데뷔 앨범 ‘청년폭도맹진가’.
행사의 꽃은 서울레코드페어 기념 한정 음반이다. 한국 대중음악사를 빛냈던 음반들을 선정해 LP로 한정 재발매하는 것이다. 그동안 조동익의 ‘동경’, 이상은의 ‘공무도하가’ 등이 서울레코드페어를 통해 LP로 애호가들의 품에 안겼다. 올해 한정 음반은 더 특별했다. 총 5장의 음반이 LP로 찍혔다. 노브레인의 ‘청년폭도맹진가’, 디제이 소울스케이프의 ‘180g Beats’,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 일리네어 레코즈의 ‘11:11’, 김목인의 ‘음악가 자신의 노래’ 등이다.
한국 인디 역사에 큰 방점을 찍은 이들 음반 중에서도 노브레인의 ‘청년폭도맹진가’는 유독 특별하다. 2000년 발매됐으나 아직까지 음악과 사회의 관계라는 화두에 대해 뜨겁게 대답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2장의 앨범을 끝으로 밴드에서 탈퇴한 기타리스트 차승우가 대부분의 곡을 쓴 이 앨범은 1990년 중반 발화해 2000년대 초반 비등점을 찍은 서울 홍대 앞 인디신의 가장 빛나는 불꽃이다. 곡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하나의 콘셉트로 모인 음반이라는 사실은 이 음반이 록 역사를 가르는 모든 명반의 필수 덕목을 갖췄음을 뜻한다.
이 무렵까지만 해도 펑크에 대한 기존 음악계의 인식은 좋지 않았다. 연주도 못하고 노래도 못하며 작곡 실력도 형편없는 ‘아마추어의 음악’이었다. 그러나 ‘청년폭도맹진가’에서 노브레인은 그런 선입견을 단숨에 부숴버렸다. ‘날이 저문다’의 위악적 외침부터 ‘청춘은 불꽃이어라’의 구수한 스윙에 이르기까지, 노래의 방향이 요구하는 지점을 다채로운 목소리로 소화해내는 이성우는 홍대 펑크의 아이콘이 될 만한 자격을 충분히 입증했다. 지미 헨드릭스를 카피하며 음악을 시작했던 차승우는 발군의 기타 실력을 선보인다. 20대 초반다운 혈기와 20대 초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관록이 동시에 빛난다.
이뿐 아니다. ‘청년폭도맹진가’는 한국 인디신에서는 최초로, 그리고 민중가요 진영 바깥에서 처음으로 배태된, 메시지와 음악이 일체가 된 작품이다. 어느 민중가요보다 직설적이고 서슬 퍼런 저항정신이 피를 튀긴다. ‘98년 서울’은 초기 인디신에 모여들었던 먹물들에 대한 조롱을 담고 있다. 하루아침에 살던 집이 철거당한 차승우의 고교 친구를 위해 만들었던 ‘이 땅 어디엔들’은 음악과 메시지가 만나 이뤄지는 감동의 결정판이다.
그 성취는 ‘세계 최고의 데뷔 앨범’(‘M Beat’ 2000년 12월호)을 비롯한 온갖 음악지의 격찬으로 이어졌다. 2010년대 들어 여러 매체에서 진행한 2000년대 대중음악 명반 리스트에서도 이 음반은 상위를 빼앗긴 적이 없다.
하지만 이 앨범의 참된 가치는 평론가들의 찬사에 머물지 않는다. 1990년대 중반 발아해 후반 발전의 가속페달을 밟았던 홍대 앞의 에너지, 외환위기 이후 불안감에 휩싸인 세대의 불안과 분노, 새로운 ‘멋’을 좇아 펑크신에 모여든 소년소녀의 열망, 누구의 가르침도 없이 스스로 음악을 연마한 이들의 또렷하고 날 선 정체성, 그 모든 것이 모여 ‘청년폭도맹진가’에 담겼다. 한 시대의 구석 어디엔가 모여 있던 그 모든 불온한 기운과 굳센 정신의 총화다. 그것이야말로 발매한 지 14년이 지났음에도 이 앨범을 들을 때마다 벅찬 동시대성이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