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 풍경처럼 아름답고 이국적인 원대리 자작나무숲.
바삐 달아나는 가을을 뒤쫓아 강원도 내륙의 첩첩산중으로 향했다. 인제군 인제읍 원대리의 자작나무숲으로 가는 길은 가을빛이 현란했다. 하늘을 찌를 듯 쭉쭉 뻗은 자작나무 잎은 맑은 가을 햇살 아래 현란한 황금빛을 발산한다. 키 큰 자작나무 아래엔 키 작은 옻나무와 생강나무의 붉고 샛노란 단풍이 울긋불긋하다. 길가 풀숲에서 하늘거리는 구절초도 가을 낭만과 운치를 한결 북돋운다.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원대리 산 75-22번지 원대봉(684m) 자락에 들어서 있다. 깊은 산중인데도 찾아가는 길은 비교적 수월하다. 경사가 완만한 산허리를 굽이굽이 돌아가는 임도다. 도중에 삭막한 콘크리트 포장구간도 적지 않지만, 별로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다. 추색(秋色) 완연한 근경(近景)과 시원스러운 전망의 원경(遠景)이 적절하게 반복하는 덕택이다.
‘숲의 귀족’ 자작나무 한반도에서 자생
초소가 설치된 숲 초입에서 3.5km쯤 떨어진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에 도착하기까지는 1시간가량 소요된다. 이곳 자작나무숲은 산림청 인제국유림관리소(033-460-8036)가 1974~95년 조성했다. 총 138ha(약 41만 평)의 산비탈에 자작나무 69만 그루가 빼곡하게 들어찼다. 그중 25ha(약 7만5000평)가량이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이란 이름을 달고 인제군 관내 유치원생의 숲 유치원으로 개방됐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각종 언론매체의 보도와 입소문에 힘입어 경향 각지에서 일반 탐방객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오색 단풍에 둘러싸인 이단폭포. 방태산 적가리골의 최고 절경으로 손꼽힌다(왼쪽). 방태산 자연휴양림 제2야영장의 데크를 가득 채운 텐트.
하얀 수피(樹皮)가 독특한 자작나무숲은 ‘숲의 귀족’으로 불린다. 기름기 있는 분가루 같은 것이 껍질 표면에 묻어 있어 하얀색을 띤다. 갈색의 안쪽 껍질은 종이처럼 얇게 벗겨진다. 자작나무는 불에 아주 잘 타는 나무이기도 하다. 불을 붙이면 금세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고 해서 자작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옛날 사람들은 불이 잘 붙는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 촛불처럼 사용했다. 자작나무는 한자로 ‘樺(화)’ 자를 쓰는데, 간혹 나무 木(목)변을 뺀 ‘華(빛날 화)’ 자를 대신 쓰기도 한다. 그러므로 결혼을 뜻하는 ‘화촉(華燭)을 밝힌다’는 표현과 축의금 봉투에 쓰는 ‘축 화혼(祝華婚)’이라는 말도 한때 자작나무를 촛불 대신 사용한 데서 유래했다.
자작나무 껍질은 습기에 매우 강한 성질을 지녔다. 게다가 얇게 벗겨지기 때문에 종이가 없거나 귀하던 시절에는 종이 대용으로 썼다. 경북 경주시 황남동의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장니(국보 제207호)도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장식화다. 또한 자작나무 껍질을 태운 숯은 그림 그리는 물감이나 가죽을 염색하는 안료로 썼다. 그래서 옛날에는 그림도구나 물감, 염료 등을 파는 가게를 화피전(樺皮廛)이라 불렀다. 재질이 단단하고 습기에 강한 자작나무는 가구용 목재로 많이 사용된다. 한방에서 백화피(白樺皮)라 부르는 껍질은 이뇨, 진통, 해열 등의 효과가 있어 약재로도 유용하다.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먼발치에서도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아득한 옛날부터 우리 민족과 친숙한 나무인데도, 하얀 나무껍질의 자작나무가 줄지어 늘어선 풍광은 매우 이국적이다. 어디선가 숲의 정령이 불쑥 나타날 것만 같다. 그 풍광을 처음 마주한 사람은 하나같이 탄성을 연발한다. 순식간에 수천km 공간을 뛰어넘어 러시아 바이칼호 주변의 광대한 자작나무숲에 들어선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모세혈관처럼 뻗은 골짜기
원대리 임도 주변 산비탈에 줄지어 늘어선 자작나무와 낙엽송.
원대리 자작나무숲 입구에서 방태산 자연휴양림까지 거리는 약 32km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깨끗한 하천으로 유명한 내린천 물길과 ‘최후의 원시림’ 진동계곡에서 발원한 방대천 물길을 거슬러 오른다. ‘소 발자국에 괸 물도 먹는다’는 가을이라 내린천과 방대천의 물빛은 한층 맑고 푸르다.
인제 방태산(1444m)은 구룡덕봉(1388m)과 함께 인제 기린면과 상남면의 경계를 이루는 고봉이다. 대체로 산봉우리가 높고 숲이 울창한 산은 골짜기가 깊으며 계류도 풍부하다. 방태산도 마찬가지다. 특히 북쪽 기슭에는 적가리골, 대골, 골안골, 지당골 등 크고 작은 골짜기가 마치 인체 모세혈관처럼 뻗어 있다. 그중에서도 적가리골은 방대산 자락에 형성된 여러 골짜기의 맏형 격이다.
적가리골은 항아리 속처럼 생겼다. 구룡덕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적가리골의 지형지세는 마치 동그란 항아리의 속처럼 아늑하고 은밀해 보인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6·25전쟁 직후까지 이곳에 살았던 주민 70여 가구 대부분은 ‘정감록’ 등과 같은 옛 비결의 예언을 믿고 멀리 함경도 등지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한편으로 산줄기는 둥그렇고, 그 안쪽 골짜기는 움푹하게 꺼져 있어 ‘까마득한 옛적에 대형 운석이 떨어진 자리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단폭포와 숲 체험 탐방코스
만추의 낙엽송 숲길. 방태산 자연휴양림의 숲 체험 탐방코스에서 지나는 길이다.
제1야영장과 제2야영장 중간쯤에 적가리골 최고의 절경으로 꼽히는 이단폭포가 있다. 높이가 각각 10m, 3m쯤 되는 폭포 두 개에서 비단결 같은 물줄기가 쉼 없이 쏟아져 내린다. 폭포 주변에는 단풍나무를 비롯한 각종 활엽수가 울창하게 둘러쳐 있어 가을날 풍광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제2야영장 위쪽에는 길이가 2.5km쯤 되는 숲 체험 탐방코스가 개설돼 있다. 활엽수림, 조릿대숲, 낙엽송숲, 소나무숲 등 다양한 형태의 인공림과 천연림을 지나는 탐방코스다. 길이 비교적 평탄하고 뚜렷해 어린아이와 함께 둘러보기 좋다. 이 코스만 천천히 걸어봐도 풍광 좋고 울창한 방태산의 진면목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여행정보
원대막국수의 막국수와 편육
원대리 자작나무숲을 포함한 전국 국유림은 11월 1일부터 12월 15일까지 산불방지를 위해 출입이 통제된다.
방태산 자연휴양림을 비롯한 국립자연휴양림의 야영데크와 숙박시설은 사용일 기준으로 6주 전날 오전 9시부터 인터넷(www.huyang.go.kr) 예약이 가능하다. 하지만 국립자연휴양림 야영장은 대부분 10월 말까지만 운영한다. 단 삼척 검봉산, 보령 오서산, 단양 황정산, 남해 편백, 서산 용현, 가평 유명산, 서천 희리산, 봉화 청옥산 등의 국립자연휴양림 야영장은 11월 말까지 운영한다.
● 숙식
원대리 자작나무숲에서 임도를 따라 1.5km가량 더 들어가면 옛 회동마을에 아이올라펜션(033-463-5334)이 있다. 인적 드문 첩첩산중의 외딴 펜션이지만, 비교적 시설이 괜찮고 음식 솜씨도 좋아 하룻밤 머물기에 안성맞춤이다. 방태산 자연휴양림 입구에는 시애틀펜션(033-463-7775), 솔잎향기펜션(033-463-0340), 방태산황토펜션(033-463-5488) 등의 펜션과 민박집이 많다.
원대리 자작나무숲 근처에 위치한 원대막국수(033-462-1515)는 막국수와 곰취 장아찌에 싸먹는 편육이 맛있는 집이다. 방태산 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에 지나는 기린면 현리의 고향집(033-461-7391)은 인근 군부대 장성도 즐겨 찾는 두부요리 전문점이다. 방태산 자연휴양림 인근의 방동막국수(033-461-0419)도 막국수, 편육, 감자전 등을 내놓는 맛집이다.
● 가는 길
서울양양고속도로 동홍천나들목(44번 국도, 속초 방면)→인제 남전교를 건너기 직전 원대리 방면으로 우회전→원대리 자작나무숲 입구→원대삼거리(31번 국도, 우회전)→기린면 소재지(현리)→진방삼거리(진동리 방면으로 좌회전)→방태산 자연휴양림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