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라고 말할 때는 통상 두 가지 경우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인간이 너무 막돼먹었다’는 뜻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어찌 사람의 능력이 저럴 수 있을까?’라는 경탄의 의미일 텐데, 필자가 이 책의 저자 이중톈(易中天)의 저작들을 접하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1947년생, 우리 나이로 63세. 학자로서는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님에도 그의 학문은 문학, 예술, 미학, 심리학, 인류학, 역사학, 사회학, 물리학 등에 깊고도 넓게 펼쳐 있다. 하지만 그는 구름 위에 앉아 준론(峻論)으로 붓을 들고 고담(高談)으로 똥을 싸는 꽉 막힌 부류의 ‘고고학자(孤高學者)’는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통섭(通涉)’이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붙인다면 그야말로 딱 들어맞는 전형을 보여주는 사람이 그다.
학자가 학문을 함에 있어 지식을 쌓아올려 깊이를 더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세상과 교류하지 못하고 지식의 울림이 사회에 공명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외눈박이 지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인문학의 영역에선 이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로 다가온다. 대개의 인문학자 혹은 철학자들이 사유하는 ‘존재’조차 그들만의 난해한 암호나 기호로 그리는 바람에 학문이 나아갈수록 사회는 인문학과 소통하지 못하고 고립돼 자멸하고 만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학자들이 대중과 호흡하며 인문학을 문지방에 올려놓는 시도를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중톈의 중국 내 입지는 유럽의 움베르토 에코, 한국의 이어령과 도올, 그리고 정민과 이진경을 합해놓은 것과 비슷하다. 그는 처음 중국인들에게 마치 도올처럼 혜성과 같이 등장했고, 이어령처럼 인정받았으며, 정민처럼 썼고, 이진경처럼 가르쳤다. 2005년 중국 국영방송 CCTV의 ‘백가강단’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와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장면은 도올이 KBS에서 ‘논어’를 강의하던 것과 비슷한 신드롬이었으나 그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2006년 같은 프로그램에서 ‘삼국지’를 강의한 다음에는 그는 일약 중국에서 가장 저명한 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특히 그의 ‘삼국지 강의’는 중국에 ‘삼국지’ 열풍을 재점화했고, 때마침 경제성장에 고무된 중국인들의 뿌리 찾기 열기와 맞물려 곳곳에서 고전 강독의 유행까지 불러일으켰다.
그렇지만 그의 강의는 ‘놀랍게도’ 그리 대중적이지 않다. 특히 ‘삼국지 강의’는 찰나의 한 줄을 놓치면 다시 앞으로 돌아가야 할 만큼 만만치 않다. 진수의 ‘삼국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뿐 아니라 배송지의 ‘주석’에까지 일일이 주해를 달고 고증한 결과물에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총동원해 각 등장인물의 심리학적 동인까지 세밀하게 분석했다. 그래서 그의 ‘삼국지 강의’는 은근하고 묵직하다.
그의 또 다른 작품 ‘미학 강의’는 그동안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던 통섭적 지식의 성과물이며, ‘중국인에 대한 단상’이나 ‘제국의 슬픔’ 등을 통해서는 역사와 사회학이 만나면 현재에 대해 어떤 인식이 가능한지를 보여줬다. 사실 그의 저작에서 최고봉을 이루는 지점은 ‘삼국지’가 아니라 ‘미학’이다. 원래 중국은 공산혁명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객관미학’과 ‘주관미학’의 투쟁이 있어왔기에, 미학에 대한 논의가 진지하고 광범위한 나라 중 하나다. 그런데 그는 앞서 거론한 ‘미학 강의’를 통해 대중적이면서도 전문적인 미학과 미학사를 들려준다. 최소한 필자의 독서반경 수준에서는 이 정도의 미학 입문을 읽은 기억이 없다.
다만 한 가지, 그의 책을 읽을 때 아쉬운 점은 ‘삼국지 강의’는 최소한 ‘삼국지’를 두어 번은 읽은 독자에게 허락된 책이고, ‘미학 강의’는 아리스토텔레스나 바움가르텐, 칸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곰브리치나 젠슨, 그리고 주자학과 양명학의 개요는 접한 뒤 들어야 체화하기 쉽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밖의 다른 저작들은 일반 독자에게 수월하게 읽히고, 특히 중국을 알고 싶은 외국인에게는 딱 맞는 눈높이에서 중국을 들려준다는 점에서 한 사람의 인문학자가 그 사회에 미치는 ‘진동’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http:blog.naver.com/donodonsu
1947년생, 우리 나이로 63세. 학자로서는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님에도 그의 학문은 문학, 예술, 미학, 심리학, 인류학, 역사학, 사회학, 물리학 등에 깊고도 넓게 펼쳐 있다. 하지만 그는 구름 위에 앉아 준론(峻論)으로 붓을 들고 고담(高談)으로 똥을 싸는 꽉 막힌 부류의 ‘고고학자(孤高學者)’는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통섭(通涉)’이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붙인다면 그야말로 딱 들어맞는 전형을 보여주는 사람이 그다.
학자가 학문을 함에 있어 지식을 쌓아올려 깊이를 더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세상과 교류하지 못하고 지식의 울림이 사회에 공명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외눈박이 지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인문학의 영역에선 이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로 다가온다. 대개의 인문학자 혹은 철학자들이 사유하는 ‘존재’조차 그들만의 난해한 암호나 기호로 그리는 바람에 학문이 나아갈수록 사회는 인문학과 소통하지 못하고 고립돼 자멸하고 만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학자들이 대중과 호흡하며 인문학을 문지방에 올려놓는 시도를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중톈의 중국 내 입지는 유럽의 움베르토 에코, 한국의 이어령과 도올, 그리고 정민과 이진경을 합해놓은 것과 비슷하다. 그는 처음 중국인들에게 마치 도올처럼 혜성과 같이 등장했고, 이어령처럼 인정받았으며, 정민처럼 썼고, 이진경처럼 가르쳤다. 2005년 중국 국영방송 CCTV의 ‘백가강단’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와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장면은 도올이 KBS에서 ‘논어’를 강의하던 것과 비슷한 신드롬이었으나 그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2006년 같은 프로그램에서 ‘삼국지’를 강의한 다음에는 그는 일약 중국에서 가장 저명한 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특히 그의 ‘삼국지 강의’는 중국에 ‘삼국지’ 열풍을 재점화했고, 때마침 경제성장에 고무된 중국인들의 뿌리 찾기 열기와 맞물려 곳곳에서 고전 강독의 유행까지 불러일으켰다.
그렇지만 그의 강의는 ‘놀랍게도’ 그리 대중적이지 않다. 특히 ‘삼국지 강의’는 찰나의 한 줄을 놓치면 다시 앞으로 돌아가야 할 만큼 만만치 않다. 진수의 ‘삼국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뿐 아니라 배송지의 ‘주석’에까지 일일이 주해를 달고 고증한 결과물에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총동원해 각 등장인물의 심리학적 동인까지 세밀하게 분석했다. 그래서 그의 ‘삼국지 강의’는 은근하고 묵직하다.
그의 또 다른 작품 ‘미학 강의’는 그동안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던 통섭적 지식의 성과물이며, ‘중국인에 대한 단상’이나 ‘제국의 슬픔’ 등을 통해서는 역사와 사회학이 만나면 현재에 대해 어떤 인식이 가능한지를 보여줬다. 사실 그의 저작에서 최고봉을 이루는 지점은 ‘삼국지’가 아니라 ‘미학’이다. 원래 중국은 공산혁명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객관미학’과 ‘주관미학’의 투쟁이 있어왔기에, 미학에 대한 논의가 진지하고 광범위한 나라 중 하나다. 그런데 그는 앞서 거론한 ‘미학 강의’를 통해 대중적이면서도 전문적인 미학과 미학사를 들려준다. 최소한 필자의 독서반경 수준에서는 이 정도의 미학 입문을 읽은 기억이 없다.
<b>박경철</b>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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