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신입생 때 술자리에서 과 친구에게 “고향이 경상도라 전라도 사람은 싫어하겠구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충격이었다. 3학년 때는 담당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다 고향이 ‘대구’라는 이유로 서먹해진 적이 있었다. 1·4후퇴 때 대구로 피란 갔는데 당시 사람들이 모질게 대했던 모양이다. 그는 그 이후부터 대구 사람들을 싫어한다고 했다.
나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면 어색하고 부담스럽다. 그들의 편견을 바꿔보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옆집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큰 아파트에 사는 친구와 친하게 지내라고 이른다. 손자의 친구가 집에 놀러 오면 부모의 직업을 묻고 사는 곳이 어디인지 확인한다. 그런 질문을 하는 까닭이 뭘까. 알지 못하면 계속 궁금해지는 그 속마음 또한 ‘편견’ 아닐까. 평수 넓은 아파트에 살면 ‘돈이 좀 있는 집안’이라는 생각이 들고, 아버지 직업이 교수면 ‘똑똑한 친구 덕에 우리 아이 공부에도 도움이 되겠거니’ 생각하게 된다. 나 홀로 의사보다 부부 의사, 지방대 교수보다 서울 명문대 교수가 아이들 사이에도 대접을 받는다. 작은아이가 학교에서 직업을 조사해 발표하는 수업을 마친 뒤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자기 아버지 직업은 ‘회사원’이라 ‘의사’ ‘판사’ 아버지를 둔 친구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자기는 커서 남들이 알아주는 전문직을 택하겠다고 했다.

재미있는 것은 재산에 관심이 많은 아이일수록 부모가 돈 이야기를 즐기는 편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의 대화에서 부모의 편견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보며 어른으로서 부끄러웠다. 아이에게 이런저런 잣대로 사람을 나누고 가려 사귀게 한 것은 아닐까. 편견의 대물림을 통해 우리 아이가 좋은 친구들을 놓쳐버리는 것은 아닌지 주변을 살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