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3일 양평 용문산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동물원과 함께 가는 가을소풍’ 콘서트에서 노래하는 그룹 ‘동물원’.
그런데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이 추운 공연장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 손에 방석, 다른 한 손에 맥주나 커피를 든 이 사람들은 ‘동물원과 함께 가는 가을소풍’ 콘서트를 보러 온 관객들이다.
대중가수 콘서트라면 으레 10대나 20대가 관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 콘서트에는 가족 관객들이 압도적이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의 팔을 끌고 온 40대 엄마, 돌이 갓 지난 듯한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온 젊은 부부…. 6시 시작 예정이던 공연이 조금 지체되었지만 관객들은 별로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한쪽에서는 주최측이 관객에게 나누어주는 커피와 맥주를 받으려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관객·가수 하나 돼 공연 만끽
1500여명의 관객들이 야외공연장에 대강 자리를 잡고 앉자 그룹 ‘동물원’의 노래 ‘우리가 세상에 길들기 시작한 후부터’가 시작되었다. 고 김광석과 김창기 등이 중심이 되어 1988년 만든 대학생 그룹 ‘동물원’은 그동안 멤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가지면서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 즈음에 위치했던 그룹. 그러나 박기영 유준열 배영길의 3인조로 압축된 이들의 노래는 한층 정교해진 세션에 실려 기존의 아마추어리즘을 벗고 한껏 노련미를 풍겼다.
“안녕하세요, 동물원입니다. 옷들은 따뜻하게 입고 오셨나요? 이 콘서트 제목이 ‘동물원과 함께 가는 가을소풍’인데요. 이렇게 나와 있으니까 마치 저희가 정말 가을소풍 와서 반 대항 노래자랑에 대표로 나서 앞에 나와 노래 부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멤버들의 오프닝 멘트에 관객들이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양평 용문산 야외공연장은 산 가운데 공연장이 절묘하게 들어앉아 있는 구조다. 야외무대를 바라보면 무대 너머의 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공연이 20분쯤 진행되었을 때 그 산의 왼편으로 반달이 떠올랐다. 달과 함께 푸른 가을의 어둠이 투명하게 내려왔다.
잠이 든 네 살배기 딸을 점퍼로 감싸 안은 채 콘서트를 보고 있던 직장인 배연성씨(32)는 “진짜 소풍을 온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편하고 가벼워서 좋네요. 굳이 콘서트에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도 마음에 들고요. 30대라면 대부분 ‘동물원’ 노래에 얽힌 특별한 추억이 있잖아요. 대학 다닐 때 술 취하면 으레 부르던 노래들이니까요. 한동안 소식이 안 들려서 해체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시 활동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반갑습니다.” 배씨의 아내 김진희씨(32) 역시 “저녁밥도 맛있게 먹었고, 기억에 남을 밤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배씨 부부는 ‘동물원’이 히트곡 ‘거리에서’와 ‘널 사랑하겠어’를 부르자 함께 박수 치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동물원과 함께 가는 가을소풍’은 ‘1일 휴가 콘서트’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공연이다. 주최측은 서울 잠실에서 양평을 오가는 교통편과 저녁식사, 그리고 커피와 맥주를 제공한다. 참가자들은 공연시간에 맞추어 양평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후 일찍 양평에 도착해 용문산의 자연을 즐기다가 저녁을 먹고 음료수를 즐기며 공연을 보게 된다. 이 ‘1일 휴가 콘서트’는 지난해 가을 처음 시도되어 전석 매진을 기록했고 올해 역시 10월3, 4일에 열린 3회 공연이 모두 매진되었다. 저녁 6시 공연은 가족들이, 그리고 밤 10시 공연은 연인들이 관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동물원과 함께 가는 가을소풍’을 기획한 ‘쎌 인터내셔널’의 송은정 기획실장은 “주5일 근무제의 영향으로 휴가성 콘서트가 인기를 끄는 추세다. 이중에서도 가장 호응이 좋은 공연은 야외에서 하는 가족 대상 콘서트다. 어른들은 음악을 듣고, 아이들은 자연에서 뛰놀며 함께 즐길 수 있기 때문”이라며 ‘동물원’ 콘서트의 인기 비결을 전했다.
저녁 8시를 지나 공연이 끝날 때쯤 산속에는 이미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렸다. 지금보다 좀더 뜨거운 가슴을, 좀더 떨리는 영혼을 가지고 있을 때 불렀던 노래들을 오랜만에 들어서일까. 시린 손을 커피 한 잔으로 데우면서 공연장을 내려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유난히 흐뭇해 보였다.